다문화 속의 교회, 역사내의 여성차별의 현상 (제 6 장), 뉴욕 1995

성서적 교회 생성을 향한 변형연습  (제 6 장)

역사내의 여성차별의 현상

            Martin Luther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 본래의 의 또는 최초의 의(ORIGINAL RIGHTEOUSNESS)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형상을 가진 아담은 하나님을 알았고, 완전히 경건되고 인간화된 성(性)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화된 성의 개념이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변하고 말았다. 즉 창조주 고유의 개념인 평등적 번성의 성(REPRODUCTION SEX)이 비 인간화된 세속적 성(SECULAR SEX) 혹은 비경건적인 성 즉 산업적 성(COMMERCIAL SEX)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런 의식의 변화와 이런 의식을 잘못 사용하려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두개의 성 가운데에는 소위 종속주의가 생기게 되었고, 이런 종속의식은 급기야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잡은 불완전한 인간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하나의 인격을 억압하는 모순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결국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선두(INITIATIVE)를 잡은 남성은 그들 만의 문화와 그들 만의 사상을 창조해 내었고, 여성들을 노예화 혹은 상품화 시켰으며 또한 인위적으로 만든 가부장적 이념 사회에 예속시켜 버렸다. 따라서 이런 예속이념 사회에서 파생된 전형적인 피해 소산인 가정 폭력과 윤락은 분명 우리의 현실 문제이며 우리 자신의 문제 임에 틀림없다.

            결국 현실은 소외된 민중(οκλοζ, AMHAARETZ)을 향하여 우리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사회와의 막힌 장벽을 헐어 버리고 서로의 만남을 통하여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종교가 올바르게 세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하였다. 이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며, 이에 대한 어떠한 구조적 모순이 우리들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그리고 이러한 모순 속에서 선교적 프로젝트를 어떻게 세울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바른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화 작업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며 과제이다.

1. 가부장적 개념의 정의

            가부장적(家父長的)이란 개념은 여성해방 운동가들에 있어서는 가장 적대시되는 개념이다. 이는 헬라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직역하면, “아버지만의 지배”를 뜻한다. 그러나 이 개념이 여성해방론자들의 고유의 창조적 개념은 아니다. 그 전에도 이러한 개념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이개념을 포함되어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Adrienne Rich 1 는 가부장제를 보다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데,

“가부장제란 남성의 권력을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가부장적이란 남성이 – 힘이나 직접적인 압력을 사용함으로써 혹은 의식이나 전통, 법률, 습관, 예절, 교육 등을 통해 – 여성의 할 일이 무엇이며, 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남성 아래에 흡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적 정치체제이다.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은 휘장 안에서 살 수도 있고, 트럭을 몰 수도 있다. 아니면 원주민 마을의 진흙담집에 살면서 이른 아침마다 남편에게 커피를 대접 할 수도 있고, 대학 졸업식 행렬에 참가할 수도 있다. 여성은 나이나 지위나 상황이 어떻하든 또한 자신에게 허락된 경제적 계급이나 선호도가 어떠하든 여성은 남성의 지배에 살게된다. 가부장제하에서의 여성은 남성의 승인을 얻는데 필요한 댓가를 치룰 때 만,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특권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라고 정의 했다.

            Kate Millett 2 는 보다더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권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전적으로 남성의 수중에 달려있다”는 것을 가부장적 사상이라고 정의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성이 여성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사회는 전부 가부장적 사회(Patriarchy Society)라고 볼 수 있다. 3

            사회주의 해방론자들이 동의하는 가부장제의 특징들을 보면,4 (1) 가부장제라는 범주는 남성지배, 여성종속의 사회관계의 총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2) 가부장제는 일반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사회와 생산양식 속에서 존재해 온 것으로 인식된다. (3) 가부장제는 위계의 체계이며 그 속에서 여성에 대한 지배를 획득하고 재생산할 수 있도록 남성에게 권력과 통제력이 부여된다. (4) 가부장제는 계급을 초월하여 남성들간의 연대를 만들어 내고 동시에 그것에 의해 유지된다.    (5) 가부장제와 생산양식 간의 (또는 가부장적 관계와 계급 관계간의) 관계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들마다 각기 약간씩 다르게 설정된다. 이 말에 대한 반대적 개념으로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마르크스적 여성주의, 급진적 여성주의등이 있으나 이것 역시 개념화할 염려가 있다. 진정한 여성주의자는 인본주의적 사고 보다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신 중심적(THEOCENTRIC)의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본래의 창조 섭리는 동등성이 부여된 인간화에 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부장적 이념이란 하나의 성(性)이 다른 하나의 성보다 상대적으로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만의 문화를 고수 하려는 이념적 보수주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차별로 비롯되는 인간 공동체의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녀 공동 의식화가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1)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여 왔는가? (3) 우리가 세상을 보듯이 왜 우리가 세상을 보는가? 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추구에서 출발한다.

            다음과 같은 H. Richard Niebuhr의 말은 우리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하겠다. “자신을 아는 지식은 다문화적 요구속에 자신의 결속을 추구하는 우리가 사회적이고, 의존적 자신들이라는 것을 인식함에 의존한다.”

2. 성차별에 대한 개혁의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차별주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서, 여성을 향한 정의, 평등, 그리고 자유를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충분한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하고 문외한(門外漢, THE OUTSIDER)으로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억압 받는 여성들로 하여금 이러한 억압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에 참여토록 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 일반 사회의 통념을 받아 같은 여성들을 배척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의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외한이면서도 내부인(內部人, THE INSIDER)라는 복합성을 띄우게 된다. 이러한 문외한-내부인 (THE OUTSIDER-INSIDER)의 특이한 복합적인 메세지가 여성들에게 억압을 정당화하도록 만들고 만다. 왜냐하면 문외한은 일반 사회통념이 억압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외한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 역사, 그리고 문화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로 새롭게 통념을 형성해서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게 하려는 의지가 있다.

            이렇듯 문화에 대한 새로운 설명시도는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Peter Berger는 지적하기를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전통은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후원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5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의 사회 구조는 단지 인간의 조작에 불과함을 인정하고 억압의 구조임을 밝히며 정의와 평화의 세계의 탄생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임하기도 한다. 그래서 Berger는 말하기를 이는 세계유지의 힘(A WORLD-MAINTAINING FORCE)과 세계개혁의 힘(A WORLD- SHAKING FORCE)이라고 종교를 일컽고 있다. 종교가 세계유지의 힘이란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세상을 변함없이 유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이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는 자신을 속이는(SELF-DECEPTION) 구조가 세계개혁의 힘이 되는 것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정해진 길’이라는 맹종의 위험에 빠지는 길을 마련하고 있음을 주지해야한다. 여성의 인간화는 남성의 인간화가 되며, 인간자체의 해방이되는 것으로 개혁의 힘과 유지의 힘이 규형을 이루게 됨을 발한다. 그러나 균형이 깨진 상태를 모를 때에는 개혁의 힘이 그 역할 감당의 시작을 해야한다.

3. 평등을 향한 여성의 어려움

            여기서 사회가 통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다음은 Roger G. Betsworth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6 미국사회에서 여성을 통념적으로 다음 세가지로 본다: (1) 내조자(內助者, HELPMEET), (2) 열등한 신분(WOMEN’S SPHERE), (3) 공상가 (ROMANCER). 이 세가지 모두가 “선량한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 즉 남성지배 사회내에서 자신의 이득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 이야기들이다. 모두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SUBJUGATION)을 정당화하고 있다. 착한 여성은 내조자라야 하며, 여성의 차별적 지위를 지켜야하고, 남성의 욕구에 따라 낭만적 성적 상대자가 되여 충족 시킬 때에 일컫는 용어가 된다.

            1) 내조자로서 여성을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청교도적인 신앙 (THE PURITAN)이 지배할 때며 이 당시의 여성이란 “내조자”로 통하던 사회였다. 식민지 경제사회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동역자라는 말이다. 내조자라는 말은 흔히 “아담의 갈비뼈”라는 말을 의미했다. 청교도들의 결혼식장에서 목사는 흔히 설교를 다음과 같이 한다. “우리의 갈비뼈는 지배자가 되도록 안수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월을 선언하도록 머리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동등하게 살게하시려고 옆구리에서 꺼내셨습니다.” 선량한 남자는 아내를 그의 짐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나 내조자로 여겼다. 그리고 선량한 여성은 그의 남편을 항상 모든 것에 그녀의 머리로서 거룩히 존경했다.7

            여기서 내조자에게 “평등”이란 일의 동등이지 지위의 동등이 아니다. 여인들은 젖을 짜고, 시장을 보고, 옷감을 만들고, 바느질과 재봉질을 하고, 곡물을 보관하고, 물물교환을 해야했다. 가정은 경제생산을 위해서 중심지였다. 보통 아이들을 평균 여덟을 낳고, 아이들에 대한 사람됨의 훈련과 교육 그리고 경건 생활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더우기 경찰들이 과부나 고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할 경우, 사회에서 존경 받는 가정으로 보내면 그들도 돌보아야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여성에 교회의 생명을 유지는 살림살이를 기대했다. 아픈 사람들 찾아주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초상집을 후원하는 등, 여성은 교회와 진정한 가족으로 묶여 있었다. 이렇듯이 공공의 선과 경제성장의 동반자요 더 나아가서 결혼의 친구로서의 책임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표를 할 수 없었고 공공 장소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고 교회에서 가르치거나 설교를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식민지 시대의 여성들은 자신들을 “종속자”(SUBORDINTION)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의 갈라디아인들에게 말한 평등에 대한 주제를 시도했다. 디도서에 나타난 여성의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말했고, 고린도인들 가운데서의 여성 예언자들처럼 구약의 여성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이것은 청교도적인 여성 이해와 성서의 진정한 해석 사이에 끼여 있는 사실들이다.

            H. Richard Niebuhr은 그의 저서, The Meaning of Revelation 에서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기억속에 있는 우리의 현재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현재를 이해하는 것은 한 인간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다시 삶을 건축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8 한국의 과거 역사속에 숨겨진 여성차별의 사례들과 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본 연구에 이바지되리라 본다.

            ‘여자와 소인은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철리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는 아들을 낳아 주고 살림을 한다는 두 개의 쓸모 이외에는 가축이나 다를 것이 없이 다루어 졌었다. 여자는 사고력이나 판단력이 있어도 안되고 감성이나 지성이 있어도 안 되었다. 심지어 보고 듣고 숨쉬는 감각마저도 마비된 상태의 여자를 훌륭한 여자로 알기까지 하였다. 옛날 시집갈 때 신부들은 눈에 꿀을 발랐다. 눈꺼풀이 맞붙어 앞을 볼 수 없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목화솜으로 귀를 틀어 막고 입에는 대추씨 한 알을 넣어 어금니로 물고 있게 하였다. 듣지도 말고 또 말하지도 웃지도 말라는 무생물화의 습속인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 초기 때만 해도 여자는 생구(生口)라는 야릇한 말로 불리우기까지 하였다. 이규태는 생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사보고하고 있다.

            “생구란 말은 소나 말처럼 매매되는 생물로서의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적격의 명사랄 것이다. 동물→생구→인간으로 개화해 온 휴머니즘의 과도적 중간 상황인 것이다. 중국에서 생구란 말은 소, 말, 양 같은 가축을 뜻하였다. 그 후 차츰 가축 가운데도 쓸모가 많은 소와 말에 국한되었다가 노동력의 가치만으로 매매되는 천한 인간까지 포함되어 사람, 말, 소를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쓰였다. 그 후, <위서> 고구려전에 기록 된 생구, 같은 책 왜전에 기록된 생구,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에 적혀 있는 생구, 그리고<삼국사기> 신라 진흥왕조의 화랑 사다함이 ‘그 생구를 받아 놓아 줌으로써 양인(良人)이 되게 했다’는 기록등은 생구란 뜻이 ‘사람, 소, 말’에서 소와 말이 탈락하고 ‘매매되는 천한 사람’이란 뜻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가 있다.” 9

즉 여자도 그같은 유용한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막힌 인식인 것이다. 사실 그 후의 우리나라 역사는 생구로서의 여자의 인식에서 조금도 발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소나 말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것이 우스웠듯이 여자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것도 그만큼 우스웠을 것이다. 여자는 무식하고 감각이 없는, 그리하여 부리면 부리는 대로 움직이는 한 마리 양순한 소로서 만이 가장 큰 가치를 누렸었다. 가부장제도는 제도나 윤리나 도의 같은 바깥 작용으로 여자를 소로 만드는 한편 여자 자신이 가정의 우리 속에서 스스로가 소가 되게끔 안으로 부터의 작용도 병행시켰다. 바꿔말하면, 우리 옛날 여성들은 가정의 소나 노예가 되기 위한 학생이였다. 계집아이 열 살 안으로 언문을 익히게 하여 삼강행실을 가르치고 이로써 여자가 옳게 사는 길임을 알리며 가을과 겨울에는 물레를 돌리고 봄과 여름에는 뽕누에를 쳐 베를 짜 입도록 가르쳐야 한다. 계집아이 열 살에 이르면 안방에 두어 바깥 나들이를 못하게 하고 또 바깥 손님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이 열네댓 살에 이르면 비녀 반지 패물 파는 노파와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 부모 형제가 같이 앉은 자리가 아니면 가까운 친척일지라도 이성의 사나이와는 같은 방에 있지 못하게 하고 삼촌이나 조카일지라도 자리를 피하도록 해야 한다. 제사를 지낼 때 부인들은 병풍으로 남자들로 부터 가리고 신위를 향해 사배(四拜)를 하거나 그저 제청 쪽으로 난 안방문을 조금만 열어 놓고 사배를 해야 한다. 이상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홍만선(1664-1715)이 쓴 산림경제란 책 속에 씌어 있는 여자 교육론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초등교육이고 중류 이상 가문에서는 언문력을 기초로 하여 약간의 고등교육을 시킨다. 이것은 수신교육과 독서교육, 그리고 생활교육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나 이 역시 여자를 가정에 묶어매며 남성의 노예화하는 수신교육일 뿐이다.10

            짐승 이후요 인간 이전의 과도적 인간을 생구라 불렀던 것이다. 한국의 소녀사는 어느 만큼은 생구사이다. 소녀는 여자의 일생에서 매매하는데 가장 값이 비싼 재물이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사고 팔리는 경우가 많다. 첫째, 생칩이라 하여 서양의 속죄양처럼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는 제물로서, 신단에서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팔려간다. 뱃 사람들의 풍속으로 위태로운 여울목이나 심한 풍운에 생칩한다는 기록은 많다. 둘째, 순장(殉葬)이라 하여 옛 귀인들이 죽었을 때 산 소녀들을 사서 함께 묻는 풍속도 있었다. 부여에서는 한 귀인이 죽어 묻는데 1백명의 생사람의 소녀를 묻었다는 기록이 있다. 셋째, 소녀는 관직을 사는 좋은 돈이기도 했다. 노비문권(奴婢文券)으로 벼슬을 흥정하기도 했다. 넷째, 죄를 면하기 위해 딸을 바치기도 했다. 한말 풍운기에 유명했던 배정자도 아버지가 지은 죄를 면하기 위해 밀양의 관기안(官妓案)에 팔렸던 가엾은 소녀였다. 다섯째, 소녀를 세금으로 바치는 인신 조세 제도도 있었다.

            북관지방에서는 딸을 낳으면 사내아이 보다 좋아하였다. 사내아이는 어릴 때 부터 병역인 군적(軍籍)에 올라 군포(軍布)를 물어야 하고, 자란 뒤에는 변방의 군역이나 부역에 동원되어 집일을 돌볼 수 없는데 비해, 계집아이는 웬만큼 길러 놓으면 남쪽 상인들이 와서 몸값을 주고 사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느 집에 남쪽 손님이 들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 인신 상인을 만난 것을 축복해 주었다.

            조선 숙종 때 학자인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란 책 가운데 여자교육론은 여성 수신론으로 그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칠거지악’이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거나, 나쁜 병에 걸리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음탕한 짓을 하거나, 투정을 하거나, 말이 많거나, 아들이 없으면 시집간 여자는 시집에서 쫓겨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부도(婦道)의 가르침이다. 요즈음 이혼 사유로는 이중 도둑질한 것과 음탕한 짓을 한 것 두가지 밖에 없다. 그 중 투정은 여자의 본능이요 특권인데 가장 영향력이 큰 가르침의 책이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여자 교과서, 계녀서 (戒女書)에는, “여자의 1백 년 앙망이 오직 지아비라 여자가 지아비 섬기는 중에 투기 아니함이 으뜸 행실이니 1백 명의 첩을 두어도 본 체 만체하고, 첩을 아무리 사랑하여도 성내지 말고 공경하여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부녀자에게 읽기를 강요하고 또 어머니들이 가르친 교과서의 대부분은 이러한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에 계녀서 말고 내훈(內訓)이라는게 있었다. 이 책은 덕종의 비(妃) 소혜왕후가 이전부터

있었던 열녀전(烈女傳)과 여교명감(女敎明鑑), 소학(小學) 등에서 몇 대목을 따다 한글로 적은 것이다. 열녀전은 시부모나 남편이 앓으면 왼손 무명지를 짤라 그 피를 먹이고 나쁜 병이 걸리면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이고 또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열녀들 이야기고, 여교명감은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 삼강오륜 등을 적은 것이며, 소학은 여자란 10년 동안 밖에 나가서는 안된다. 옷홰에 남자 옷과 같이 걸어 놓아도 안 되고 삼촌되는 남자에게도 안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류의 남녀유별을 정해 놓은 책이다. 성종 12년에는 한글로 ‘삼강행실’, ‘열녀도’를 찍어 각도의 부녀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읽게 하였다. 중종 18년에는 앞서 말한 소학을 한글로 번역해서 널리 폈다. 인조 때에는 오륜가를 지어 부녀자들 틈에 유행시켰고, 숙종 7년에는 경민편(警民編)이라 하여 부녀자들의 행실을 다잡는 책을 부녀자들로 하여금 강제로 익히도록 했다.11

            숭의여학교는 평양 신양리에 있는 이길함 목사의 사택인 ㄱ자형 기와집에서 처음으로 10명의 여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다. 한국의 여학교가 생겼다. 남감리 교회가 한국에 들어와 처음 세운 학교가 배화학교였다. 1898년 5월 1일에, 이 학교는 선교사인 리드 박사 부인이 두명의 여학생과 세 명의 남학생을 데리고 가정교사식으로 학교를 시작하였다. 1908년 개성 해나무골, 김정혜 여사의 자택에서 시작된 정화학교는 일곱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역시 같은 해 4월 28일에 개교한 동덕학교도 서울 소안동에 있던 초가지붕의 사랑채에 방 한 칸을 빌어 여섯명의 여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여학생인 이화학당(1886)의 김부인은 영어만 배웠고, 두번째의 복순이는 성경만 배웠다. 1924년 이화학당에 중등과가 생기기까지에 교과과정이란, 첫학생이 나타난지 3년 후인 1889년에야 언문의 읽기 쓰기 작문 편지쓰기를 가르쳤고 생리학을 가르쳤다. 그 후 2년 후에 성악과 오르간을 가르쳤고, 1890년에 최초로 가사를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개화기의 학교가 여성 인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기성사회의 통념을 어린 여학생들에 세습시키는 교육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권순구씨가 지은 여자 행실록, 그리고 예날 내방에서 가르친 행실을 모아 교과의 하나로 삼기도 했다. 여자 행실록의 내용을 보면:

                        (1) 시아버지 시어머니 섬기는 일,

                        (2) 시동생 시누이와 화순할 일,

                        (3) 투기와 시기를 버릴 일,

                        (4) 가난함을 편안히 알 일,

                        (5) 전처의 아들을 사랑하는 일,

                        (6) 절개를 지키는 일,

                        (7)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 등이다.12

            가장 먼저 기록됐던 마가복음은 남자 제자들의 실패를 기록하면서 여 제자들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공관 복음서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여성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이였고 남자 제자들은 이를 처음에 부정하였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에에서 여성 제자들로 함께 하셨다. 바울의 서신들은 초대교회 전도운동에 여성 지도자에 대하여 자주 언급 했다.

            Fiorenza가 지적하기를 초대교회운동이 여성들에게 분명 매력이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마가복음 10:43-44에서 “너희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 3:28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가부장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초대교회의 구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을 해석함이 바로 자기속임(SELF-DECEPTION)이였음이 분명하다.

            2) 여성의 신분을 열등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동등할 수가 없다.

                        버리떼기 (여성의 이름) 13

                        우리나라 말에 ‘아들’은 자녀의 통칭으로 쓰인다. 통칭이면서 사내아이를 뜻한다. 이것은 불란서 말 ‘HOMME’가 인간의 통칭이면서 남자를 뜻하는 것과 같다. 즉 사람이면 남자요, 자녀면 사내이다. 여자나 계집아이는 니체가 말했듯이 군더더기요,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희생이다.

                        시흥 수암산 한 기슭에 ‘피흘니 고개’라는 한 마루턱이 있다. 1910년대에 채집된 한 관습 조사에 의하면 갓 낳은 아이가 딸이었을 때 산고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산모를 업어다가 이 피흘니 고개의 성황 옆에 버려두는 버리떼기 풍습이 있었다 한다. 이 잔학한 풍습은 산모 자신이 자신을 버리는 자울적인 버리떼기 풍습으로 변해왔다 한다. 딸임을 알았을 때 산모는 산고를 무릎쓰고 야밤중에 비틀대며 이 피흘니 고개로 기어간다. 그리고 그 성황의 돌무더기에 지친 몸을 기대고 밤새도록 손을 비비며 치성을 드린다 했다. 그런 타울적인 버리떼기나 자율적인 처참한 심야의 탈주로써 다음에 낳을 아이를 아들로 보장받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피흘니 고개는 임진왜란 때 격전지로 많은 젊은 사나이들이 피흘리고 죽어 그 넋들이 환생할 육체를 못 찾아 헤메고 있으며 이 심야의 성황 치성으로 그 한 사나이의 넋이 산문을 통해 기어들 것으로 안데서 나온 풍속이라 한다.14

            남해안 지방에서는 ‘버리떼기(捨姬)’라 하여 딸을 낳으면 아들 많은 집 앞에 그 갓난애를 버렸다가 미리 약속된 다남의 여인으로 하여금 주워오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렇게 버려졌던 여성의 이름은 그저 버리떼기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었던 것이다. 저주받고 태어난 한국의 여자가 받는 가장 최초의 비정적 시련을 이에서 엿볼 수가 있다.

            명동성당 오른편 숲속에 70여년전 고아원이 하나 있었다. 이 고아원은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881년에 천주교 뮈텔 주교가 지은 것으로, 한국 최초의 고아원이다. 이 고아원은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그 이듬해에 카미르 수녀가 맡아 40여년 동안 4천명의 고아를 길러냈던 곳이다. ‘이곳에는 여자 아이 밖에 없습니다. 사내 아이들을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사내아이로서 고아는 희귀합니다. 버린 아이들을 맡아 기른다는 것을 알고 밤중에 어머니들이 와서 이 둔덕에 아이들을 버리고 가는데 모두가 계집아이들 뿐입니다. 많을 때는 하루에 넷도 버리며 1년 평균 1백명을 넘습니다.’ – 라고 카미르 수녀는 그이 회고기록중에서 고백하고 있다.15

            한국 개화기의 선구자 중에 한 인물로 남궁억 선생을 꼽을 수가 있다. 그의 의해서 본격적인 가정학 교과서가 1914년에 여학생들을 위하여 1백 페이지 한국식으로 제본되여 발간됐다. 그러나 그 목차를 보면 남녀차별식의 교육을 강조한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 차례를 보면, 제 1 장 시부모 섬기는 법, 제 2 장 남편 섬기는 법, 으로 시작하고 있다.16

            여성의 신분은 단지 남자의 성공하는 이야기에 순응(ADAPTATION)에 불과하다. 개인의 동등한 가치를 강조하는 민주주의 신앙의 확산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 가부장제도의 청교도적 개념을 침식시켜나가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여성도 여성의 성품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순결, 경건, 사랑과 열정(고난)들이 있다. 이러한 덕목이 바로 여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자가 전쟁과 일과 정치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성공하면 이러한 여성의 덕목이 빛을 보게된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 독립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자녀들과의 관계의 성격으로 판단되여 진다. 이것을 “빵을 주는 자로서의 모습(IMAGE OF BREAD GIVER)”으로 보고 있다. 여성의 최고의 행복은 한 남자의 부인이요, 그 남편의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이다. 여성은 인격체가 결코 아니다. 여성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1856년 여성 인권 집회에서 Susan B. Anthony는 다음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1)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 결정됨에 따르는 양심의 피해자로 여성을 만드는 신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 진정한 덕목과 위신과 고상함이 모두 벗겨져 버린 여성의 관습에 대하여 어떻게 참을 수있을까?

            결혼이란 남성이 만든 기구라면 세습적으로 부인에게는 불공평한 것이다. 따라서 결혼이란 양쪽에 똑같이 혜택이 가도록 하고 동등한 삶으로 인도하도록 양쪽이 동등히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 그러나 동등”이라는 말로 여성을 지배한다. “분리 그러나 동등”이라는 여성의 지위는 분리되여 있으나 결코 동등할 수 없다. 왜냐면 여성지위에 대한 사상이 남성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또한 남성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이다.

            3) 여성을 공상가 즉 낭만적인 성에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동등할 수가 없다.

            신 세대 여성을 사회학자들은 세련되고, 신뢰할 수 있고, 유능한 여성이라고 재형성하고 있다. 여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낭만적인 성의 이미지와 연결되여야 한다고 봤다. 완전한 여인은 남편과 더불어 골프와 게임과 PTA 그리고 동네 Little League에 열심히 참여하고, Master Bedroom의 안락한 부부만의 공간을 유지하면 된다. 아내로 동료로 성생활의 동반자로서의 완전한 여성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는 외로움과 고립이 있다. 그들의 정체를 스스로 정하거나 제한 했을 때 결코 성장할 수가 없다. 이러한 여성들의 정체성은 타인 즉 남편이나 자녀들에 의해서 정해지거나 제한 된 것이다. 여성의 정체성은 여기서 바로 여성의 생물학적인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이 창조해주신 인간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 개인은 각자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해야만 한다.

            낙태문제에 대하여 Beverly Wildung Harrison이 1983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종의 재생산하는 힘을 누가 다스릴 것 인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남자가 이 권력을 행사했다. 오늘에 상황에서 여성이 깨닫고 남성이 깨닫지 못한 것은, 성숙한 도덕 행위가 바로 낙태문제(ABORTION PROBLEM)가 아니고 오히려 해산(CHILDBEARING)에 있는 것이다.

            H. Richard Niebuhr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자신은 사회적이다; 사회적 자신의 근본적 형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댄 공동체로, 제한 없는 헌신결단들이 규칙이되고, 자신의 모든 모양이 상호연결된 구룹 속에 회원들에 의해서 형성이 되여야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의 인격자로서의 여성(IMAGE OF WOMAN-AS- PERSON)은 아직도 문외한으로서의 여성(THE END OF WOMAN-AS-OUTSIDER)으로 이용하는 목적이 된다.    

            1930년대 까지만 해도 여학생은 가정이나 사회의 좋은 요소로써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결국 여학생은 문외한(THE OUTSIDER)였다. 그 당시 보편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학교출신의 불평 4개조’ 17 가 바로 여학생을 가정과 사회에서 따돌린 원인이었다. 첫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퇴물이라는 것이다. 둘째, 사치만 늘고 생활의 규모가 없어 소비성만이 늘어나는데에 대한 불평이다. 셋째, 건방지다는 불평이다. 넷째, 여학생 출신은 아이를 낳기 싫어한다는데 대한 불평이다. 이 당시의 여학생들 사이에는 곧잘 ‘잡아뽑아주면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감잣대는 아니다’란 말이 유행했었다. 이 말은 마치 감자캐기처럼 뿌리에 매어달려 나오는 그런 다산(多産)의 도구가 되기 삻다는 인간 선언이였다. 그 무렵 남자 고등보통학교 졸업반에게 설문을 하여 그 결과를 종합한 기사를 보면, 결혼관에 있어 여학교 출신 배우자를 원하는 건 전체의 18%밖에 안됐다. 나머지 82%는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부모가 원치 않고, 또 가정불화가 심할 것 같다는 등의 시련을 감당할 길 없어서 배우자 선택에서 여학교 출신은 배제한다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4개 불평’이 주원인이며, 그 중 아이를 낳기 싫어한다는 대목에서 가장 배우자로서 배제되는 원인이 컸다고 보겠다. 1920-30년대 의 여학생의 불행과 수난은 이같이 해서 싹텄다. 여학생 생활에서 익힌 신지식과 인간의식, 개화의식을 짓누르고 묵은 습관과 도덕에 인종(忍從)해 사는 것도 수난이요, 불행이며, 또 그 인종을 배제하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신 생활을 기도했다가는 그 더욱 수난이 컸고 아울러 불행도 컸다. 그 탈출구를 찾는 ‘풍선속의 팽창된 공기’처럼 파열은 바로 인형의 집에서 뛰쳐나가는 Nora 같은 무턱댄 가출 (그렇지 않으면 당시에는 기생이나 창녀로 전락 뿐)과 가혹한 경우에는 자살로 나타났다. 1928년도 한국여성의 자살 통계의 학력별 비울을 보면 전 여성의 23%가 여학교 출신이었다. 그 무렵 여학교 출신의 전 여성 인구 비율은 1천명에 하나꼴도 않되는데 자살 기도자수는 거의 네 여자 가운데 하나가 여학교 출신이였다. 그것은 가정이나 사회의 통념과 여학교 출신자의 의식의 밀도가 아프게 부딪치는 여성사의 슬픈 과도기를 말해주고 있다.

            단세포 동물은 성(性)이 없다. 분열로써 생식한다. 즉 씨를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을 한다. 그런데 생물학자 잔 로스탕 교수는 짚신 벌레 같은 담수(淡水)에 사는 단세포 동물들간에 접합이라는 애정 행위를 발견했다. 두마리의 단세포 동물이 하나로 결합, 서로 세포의 조직을 교환하여 일종의 정화(淨化) 작용을 한 후에 옛 모습대로 다시 분리한다. 이 접합 현상은 번식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며 원래 성이 없기 때문에 이를 성적인 행위로도 볼 수 없다 하였다. 이 단세포의 결합은 분명 성적 결합이 아닌 사랑의 결합으로, 성적 결합에 앞선 보다 크고 보편적인 힘으로써의 생물계에 있어 애욕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과학적 근거로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번식 기능으로서의 성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실존인 것이다. 한국 여성은 남편에게 뿐아니라 자기 자식에게 마져도 사랑의 표정을 금기당하고 살아야 했던 사랑금기, 그리고 아들을 낳아준다는 생식 기능 이외의 성금기를 생의 바른 길로 삼아야 했고, 이 금기투성이의 생을 부덕(婦德)이니 미덕이니하여 칭찬했다.

            인류의 역사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의한 소외의 억압으로 점철되어왔고, 남녀 사이의 사랑의 표현인 성조차도 끊임없이 왜곡되어 왔으며, 많은 여성 특히 피점령국의 여성들이나 소수민으로 이중문화가족을 이룬 여성들이 성적 침탈과 폭력의 수난을 받아왔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당한 여성들을 상품화하는 매춘산업에 종사하는 한인 여성들에게와 그 근저를 이루고 있는 여성의 문제를 방관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여성차별의 극심한 심화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4. 일제하의 정신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매춘행위가 이루어진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였다. 1916년 경무총감부령 ‘유곽업 창기 취체규정’을 공포하여 곳곳에 유곽을 설치한 후 합법적으로 매춘을 인정하는 공창제도가 들어서게 되었다.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한국에서는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민족문화를 퇴색시키려 제도화시킨 공창제도의 폐지를 위하여 격렬한 운동이 전개되었으나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이처럼 일본제국주의는 한국 여성의 매춘화에 깊숙히 관여해 왔다.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후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한국 미혼여성의 비극은 극에 달했다. 1938년 초부터 가을까지 조선내 어용뚜쟁이를 앞세워 조선 여성들을 온갖 감언이설로 속여 중국대륙의 일본군 육욕의 노예가 되게 하였는데, 그 숫자는 3만 내지 4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1941년부터는 위안부 차출에 따른 수효가 각 마을 마다 배당되기에 이르렀다. 1941년 소만 국경에 배치된 관동군 예하에는 조선총독부의 위협과 속임에 의해 1만명의 조선여성이 위안부로 끌려왔다. 이후 일제가 정신대 이름으로 끌고간 조선여성은 약 20만명으로 추계되는데, 이중 5만 내지 7만 명의 여성이 위안부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일본은 1941년 12월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후 약 6개월 간 계속되는 승리 속에 말레이 반도 및 버마에 까지 진격했으나, 1942년 후반부터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패퇴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 때 남방전선에 투입된 모든 일본군 부대에서는 위안부가 관리되고 있었다. 다만 1942년 경부터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강제 지원시켰고, 1944년 8월에는 이른바 ‘여자정신근로령’ 발동 이후 법적 강권으로 징용되었다.18

            ‘종군위안부’의 저자는 전남 목포에서 군대 세탁부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여성의 증언을 소개했는데, 공습 때에는 방공호에서까지 성치탈행위가 벌어졌으며, 뉴기니아섬 서쪽 뉴브리텐섬의 라바울에 설치된 고고뽀 위안소에서는 한 사람의 위안부가 하루에 90여명의 일본군을 상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일본군의 패퇴(敗退)과정에서 이들을 버려 질병과 기아로 굶어죽게 했고, 포로가 되여도 오히려 일본군에 의해서 몰살되었다고 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일본군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정신대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말살해 버렸고 죄악의 당사자들과 더불어 피해자들 역시 사실 공개를 거부하여 정확한 실상조사 파악이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역사적 심판이 없었으므로 오늘날도 제국주의자들에게 다양한 성침탈을 다시 경제적 정신대(挺身隊)인 ‘기생관광’을 한국에서 자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5. 여성 스스로의 학대

            여성 스스로의 학대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취급할 때 나타나는 고부간의 문제이다. 고부간의 문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문제라고 보는 것이 사회통념이다. 그러나 모두가 고부간의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은 아니나, 어느 가정에는 그 정도가 극심하여 문제의 결과로 가정이 며느리가 좇겨나가거나 시어머니가 살림을 다른 아들의 집으로 옮겨 낸 경우가 비일 비재하였다. 고부간의 문제는 가정 내에서 여성이 여성을 학대했던 한국 근대 역사속의 남아있는 그림자이며 인간 심리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그림자로서 인간관계 정체성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져 훈련되여야만 할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안에서 남성에 종속된 사회 통념에 의해서 교육된 여성들 가운데 특히 양반사회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며느리 교육을 시어머니가 단독으로 하면서 학대는 극심했고,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증오는 언제나 증가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증오를 더욱세게 다음 며느리를 향해서 보응하는 것으로 세습되여 왔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투사하는 며느리의 증오의 분량을 가늠하는 잣대로써 아궁이 불 때는 부지깽이를 본다. 부지깽이가 빨리 타서 닳을 수록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품은 증오의 분량이 크다는 것을 안다. 즉 부지깽이의 길이는 고부간의 불화에 반비례한다. 그러기에 양가집 처자들은 시집가기 전에 부지깽이를 태우지 않도록 엄하게 가르침 받는 것이 관습이 되어 왔었다.”19

            따라서 한인 여성의 의식속에 심기워져 있는 고부간의 학대 문제는 여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이는 며느리라는 한 여성의 인권이 유교적 전통의 ‘출가외인’과 ‘장유유서’라는 개념과 맛물려 희생당해 왔던 것이다. 이는 여성 스스로의 의식화로 해결이 되여져야한다고 본다. 여성의 의식화는 가정마다의 남성이 여성 인권에 대한 기본 이해와 협조 없이는 불가하다는 전제가 있다. 따라서 남성의 의식화도 필수적으로 선행되여야한다고 본다.

[Notes]

1. Adrienne Rich, Woman Born: Motherhood as Experience and Institution (New York: W.W. Norton, 1976), pp. 57-58.

2. Kate Millett, Sexual Politics (New York: A Von Books, 1971), p. 25.

3. Hester Eisenstein, Contemporary Feminist Thought, 한정자역, 현대여성해방사상 (서울:이대출판사, 1986), p. 42.

4. Linda Burnham, Miriam Louie, A Marxist critique of Socialist Feminism, 김혜경, 김애령역, 여성해방 이론의 쟁점, (서울:태암사, 1989), pp. 151-152.

5. Peter L. Berger, The Sacred Canopy, Garden City, N.Y.: Doubleday & Co., Anchor Books, 1969. pp.3-51.

6. Roger G. Betsworth, Social Ethics – an Examination of American Moral Traditions, Louisville, Kentucky: John Knox Press, 1990.

7. Rosemary Skinner Keller, “New England Women: Ideology and Experience in First- Generation Puritanism (1630-1650),” in Ruether ans Keller, eds., Women and Religion in America, vol. 2, pp. 132-192; Mary P. Ryan, Womanhood in America, p. 4.

8. Archie Smith, Jr., The Relational Self, Ethics & Therapy from a Black Church Perspective. (Nashville: Abingdon, 1982), p. 79.

9. 이규태, 한국 여성의 의식구조, 제 2권 여성해방과 개화기 (서울: 신원문화사, 1993), p. 60.; 생구란 말은 그 옛날 중국에서 소, 말, 양 같은 사람에게 유용한 짐승을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었고,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 왔을 때는 그같은 짐승과 여자까지를 통틀어 뜻하는 말로 쓰여진 것이다.

10. Ibid., 제1권 생구인가 사람인가, pp. 69-70.

11. Ibid., pp. 71-72.

12. Ibid., pp. 85-88.

13. Ibid., 제2권 여성해방과 개화기, pp. 30-31, 14-15.

14. Ibid., pp. 14-18.

15. Ibid., p. 17.

16. Ibid., 제 1 권 생구인가 사람인가, p. 116.

17. Ibid., 제 1 권 생구인가 사람인가, pp. 131-134.

18. 일제하의 여자정신대, EYC여성관계자료, 1982.

19. 이규태, Ibid., p.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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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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