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書的 敎會 生成을 향한 變形 演習 (制 7 章 )
교회내에서의 성 차별과 공동체 회복
1. 성차별에 대한 교회역할
기독교는 조선조 이래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신음하던 한국 여성들에게 있어서 일정 부분 해방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앞에서 문일평이 지적했듯이 기독교의 전래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타파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는 해방적 측면 못지않게 사회전반에 흡수되어 있는 가부장작 지배질서를 한국교회에 굴속시킨 비판적 측면도 있다. 이렇게 한국 기독교가 여성을 위한 참해방의 종교가 되지 못한데는 근본주의 신학에 입각, 축자영감설과 성서 절대무오성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가르친 선교사들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이다. 이들 선교사들은 남여 평등을 외치고 여성의 교육권을 주장했지만 여성을 보는 인식은 전통적인 서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 인식구조 그대로였다. 이화학당의 동라이 학장은 여성교육의 목적을 ‘현모양처’에 둠으로서1 여성의 역할을 가정에만 머물게 하는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또 스크랜튼 여사는 철저한 한국적 교육을 시킨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예의범절 등을 규제하였다.2 사실상 한쪽에서 여성의 해방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반대편에서는 서구 기독교의 성차별적 요소3 와 한국의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가 맞물리고 있었다. 이러한 풍토에서 한국교회에서는 성차별적 요소가 점점 강화되었다. 오히려 사회의 성차별 정책에 교회는 70-80%의 교인인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예속의식’을 의식화하는데 큰목을 담당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2.교회내의 성 차별
한국교회는 지금도 그렇지만 초기부터 여성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남자 목사들의 수는 극히 제한된 수 였기 때문에 많은 여전도사들이 교회 부흥과 전도에 큰 공헌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도사의 봉급은 1922년 당시 남자 목사의 100원에 비해 20원 내외였다.4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여전도사들이 가사일과 전도사업을 같이 하는 것에 불만, 전도부인의 자격을 가능한 한 독신 미혼 여성으로 장려하였다.5 이와같은 불평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감리교의 경우 1930년에 차별근항없이 여목사제도가 허락되었으나 1972년에 와서는 결혼한 여목사의 담임권을 뺏는 성차별조항이 삽입되었다가 1990년에 이조항이 폐지되었다. 1933년 장로교 총회에서 여성들은 여장로와 여목사제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부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기장의 경우는 1956년 여장로 안수, 1974년에 여목사제도가 허락되었다. 현재 58개 교단에서 7개 교단이 여목사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나마 여목사의 역할이 보조적 차원에 머물고 있으며 교인들의 남자목사 선호 경향과 가부장적 교회구조 때문에 온전한 여목사의 목회가 힘든 실정이다. 또 많은 경우 여목사 내지 여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해서 키워놓으면 그 교회가 남자교역자에게 넘어가 버리는 일이 종종일어나고 있다. 또한 사례금도 오래 일한 여전도사와 신학교를 갓 졸업한 남전도사 사이에 별차이가 없고 목사와는 4분의 1에서 5분의 1까지 차이가6 나는 경우가 있으며 심방전도사라는 특수제도를 두어 여교역자의 수준을 떨어뜨리면서 저임금의 산실로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해 온 가부장적 지배구조를 복음의 진리라는 이름으로 존속시켜 여성들을 정책기구에서 배제해 나갈 뿐 아니라 여성의 역할을 봉사일변도로 구성하고 있다. 여성에게 부과되는 것은 희생과 봉사로서 교회행사의 뒤치닥거리를 맡는 것이 신앙의 미덕으로 강요되고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 여성들의 온전한 삶을 위한 여성신학이 전개되자 ‘빨갱이보다 더 지독한 신학’이라고 몰아 부치고 있다. 1990년도 모교단 총회 배포된 여성안수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것은 신사참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성 안수를 추진하는 자들을 신신학자들을 단죄했듯이 교회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 성명서는 단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억압되어 있는가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특히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기독교가 여성을 억압하고 가부장적 지배질서를 기독교 진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여 조장한 배경에는 선교사들이 전한 서구 기독교의 성차별 사상과 한국 유교와의 결탁이 그 근거가 됨이 드러난다.
한국역사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 현상의 원인론으로 특이한 것은 여성차별은 외세와 더불어 시작되고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해방 문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주체성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독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늘까지 이어온 교회 안에서의 여성 차별은 유교의 가부장적 전통과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제휴한 데서 비롯한다. 즉 한국교회의 혼합주의가 여성억압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 내에서 여성과 남성과의 평등화는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하나의 길이 된다.
교회 안에서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다며는, 교리수호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억압받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여성에게 복음일 수 없다. 복음은 해방복음이어야 한다. 해방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교리는 반복음적이다. 교리는 해방의 복음을 전하는 역사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와 결탁된 가부장적 사상, 인간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지배구조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것이 빚어내는 일과 싸워야 한다. 또한 교회안에 자리잡고 있는 가부장적 상황을 인식하고 남녀가 평등한 공동체가 됨으로 그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의 남녀불평등의 질곡을 해방하는 산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생성공동체로서의 교회 역할 기대
과연 한인교회는 이민 사회에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의 의미와 모습을 마련해주었고, 도덕서의 기초를 제공해 주었는가? 기초를 제공해 주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결과는 바로 교회의 공동체성의 상실이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이익사회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은 선택의 일이 아니요 교회의 필수적인 사명이라 하겠다. 공동체성의 회복은 교회의 도덕성과 영성의 회복이 가능할 때 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겠다. 불행하게도 한인교회는 지금까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는 것을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1) 교회의 무책임한 이기주의
첫째 특히 한인교회는 사회의 해체와 도덕성의 위기에 직면해서도 구태의연하게 개인구원 문제와 교회 성장 문제에만 집착해 왔다. 개인 구원이나 교회성장이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관심과 노력을 그것들에만 쏟는다면 이미 이민 한인교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만 사는 우리만의 의 공동체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교회 밖의 사회 문제에는 무관심해져 버린 교회는 자체내의 부조리와 부도덕에도 무관심해져 버리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모순과 부조리 , 부정과 불의로 차 있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편안히 구원이 보장을 받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구원방주로 피신하는 것으로 자족하는 것을 이상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음은 매우 위험한 성서해석이요 신학이요 신앙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등종교(SHAMANISM)일수록 도덕과 윤리의 개념과 적용이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개념은 전혀없고 다만 개인의 병 나음과 서낭당 신의 축복으로 아들을 낳고, 신령님의 축복으로 사업이 일어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주고 등등으로 이여진다. 세상의 비윤리의 문제 즉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없게 만드는 이기적인 요소를 제거할 책임을 망각하고, 또한 그 능력을 상실해버린 교회의 모습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세상으로부터의 교회의 소외된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침묵 형태(MODE OF MUTENESS)는 지나친 주관주의(SUBJECTIVISM)에 빠지는 유혹에 걸려든다.7 따라서 나 만(ONLY ME, US)을 주장하는 이기주의(SELFISHNESS) 성향이 짙어지고, 끝내는 극대화된 자신(EXAGERATED SELF)속에 갇혀 종국에는 철저한 소외(疎外)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 앞의 진실한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물량적으로 하나님 처럼 되여보려던 바벨탑의 백성이 될 것이다.
둘째 이민교회는 너무도 고상한 하늘 신앙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 만이 강조되고 신앙인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나님과의 관계 만이 신앙의 척도로 여겨졌다. 너무 높은 곳에만 의지하고, 생각을 거룩한 것에만 두는 가운데 이 세상은 너무도 살벌해지고 너무도 썩어져 가고 있다.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신앙, 이웃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수직적 신앙, 이것이 오늘날 이민 한인교회의 도덕성 붕괴와 공동체성 위기에 대하여 방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가정을 희생하고, 직장과 사업을 희생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가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을 해하는 것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게 되는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인들에게 기도하는 법, 성경읽는 법, 묵상하는 법, 예배하는 방법, 헌금하는 방법, 교회출석 해야하는 이유등을 신앙의 척도로 가르쳐 왔던 반면,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하여 사랑과 신뢰의 실천적 삶의 자세를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 교회는 그 고상함과 거룩함이 결국 이민사회 속에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교회 현실의 단면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는 사회문제로 인해서 교인과 교회가 희생을 당할 때 나타나는 분노에서 알 수 있다. 분노를 하되 결국 자신의 죄로 돌리고 자기비판(SELF-CRITICISM)을 함으로 교회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감정을 보상감정 즉 하나님 앞에 기도 함으로 풀고 만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겨준 책임을 다시 하나님께 돌리는 무책임이요 권리 포기인 것이다. 분노를 다시 하나님께 맏기는 보상심리는 교회의 또 다른 침묵 형태(MODE OF MUTENESS)로서 철저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극단의 객관주의(OBJECTIVISM)에 빠진 것을 말한다.8 이러한 교회는 오지 하나님 제일 주의(ONLY GOD)의 무조건 복종(SUBMISSIVENESS) 유혹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 하나님 극대화(EXAGERTED GOD)로 인해서 자기 분열을 일으키고 끝내는 자신이 무시당한 것 때문에 종국에는 극도의 분노(忿怒)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경우의 공통점은 극심한 소외이든 근심한 분노든 그 중심에 모두 대화의 상실 즉 말을 잃은 모습이다. 삶이 침묵으로 인도된다. 삶이 마르고 죽음에 이른다. 하나님과 교제는 대화가 이기주의 나 무조건 복종으로 인해서 대화가 손상 당했을 때에는 이루어 질 수가 없다. 진실한 대화는 교통을 성립시키고 일치의 교제를 만들어 화해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St. Bernard of Clairvax9 의 사랑의 4 단계를 이해하면 극단적인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리라 본다. (1) 자신을 위한 자신의 사랑, (2)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3)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4)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사랑. 사랑의 제 4 단계에 이르는 것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거친 후여서 나의 사랑은 더 이상 개인 자신이 아니고 모든 인간과 자연을 통합한 나가되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기주의적 신앙을 떠날 수있는 길은 하나님 제일주의로되 그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사랑은 내 이웃을 향한 관심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영생을 위해서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의 재산을 팔아서 없는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예수의 제시는 부자 청년이 가난한자가 되는 것이 아니요 부자 청년이 간난한 자도 부자의 한 형제요 확대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공동체 형성을 제시한 것이다.
2) 이민 교회의 세속적 물질주의와 거대주의 모순
실제 현실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토록 거룩성, 고상함, 여성을 강조하는 교회 역시 이 세상의 세속적 가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물질주의 가치관이 교회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성공과 출세의 척도를 물질로 삼고, 교인들의 신앙 정도를 물질(소유 상태와 현금 정도)로 평가하고, 신앙의 축복이 물질이란 용어로 환원되고 있는 교회 분위기가 얼마나 많이 확산되고 있는가? 또한 이 세상적인 성공 제일주의, 과소비와 사치 풍조가 교회 안에 만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재벌왕국을 닮아 개 교회 왕국이 되어가고 있는 교회가 늘고 있으며, 정치적 파벌 싸움 못지 않게 종교적 파벌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도 현실이 아닌가? 독립교회를 자처하는 교회가 늘지 않는가? 연합사업에 힘을 합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대 사회를 향한 교회의 연합사업은 얼마나 되며, 이를 향한 교회의 태도는 어떠한가? 개체교회의 물량적인 혹은 개체교회의 교인의 기호에 맛는 사업 혹은 개체교회의 부흥을 위한 일 이외에 얼마나 더불어 사는 훈련을 교회 자체에서 훈련하고 있는가? 더나아가서 사회내에서 교회가 연합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토록 영적인 가치, 정신적인 가치를 말로는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물질적 가치, 세속적 가치, 그리고 체제 혹은 개인의 가치에 만 집착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서 마냥 악화되어 가고 있는 이 세상의 공동체성 붕괴를 교회내에서도 목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3) 교회 만이 공동체 회복을 위한 보루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보여 주기 위하여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제는 실천 해야한다. 훈련해야한다. 참된 신앙은 신앙적 사회인, 사회적 신앙인 이어야 함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에 남성의 의식하, 여성자신의 의식화로 사회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통념을 바꾸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청지기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변형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않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 그것은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이다. 그것은 세속적 생활과 단절되어 있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삶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들 가운데서 실천될 수 있는 삶인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은 공동체를 살리는 일이고 도덕과 윤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는 일이다.
4. 성차별에 대항하는 생성동동체
많은 현대의 여성 운동가들에게는 가정내의 남성의 폭행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이 사랑과 양육이라는 여성의 특유의 가치로 삼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들의 자질들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소심하고 허약하게 만드는 여성의 사회화 과정에서 나오는 잘못된 의식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억압을 받아 수동적인 ‘보호를 받는 여성’이 되여 있는 현재 사회의 질서 속에서는 결코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평등의 관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을 보호한다는 차별적인 사회구조는 가정에서 남성의 폭력을 묵인하고 용납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을 위한 첫 단계는 이러한 공포의 족쇄와 자기비하의 의식을 던져버리는 일이다. 여성 운동가들은 설사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체구가 빈약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남성들의 제멋대로된 공격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해왔다.
남성들 간에도 신체적인 조건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에서의 차별이 없지 않은가? 여성의 신체적인 조건이 인간대우의 차별 조건이 되어서는 않되는 것이다. 여성도 군사훈련을 받는다면 그 자신을 수 많은 여러 상황들 속에서 방어하도록 준비할 수 있다. 공격전선에서 남성이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여성병사가 여성 특유의 희생적 자세로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다른 병사들에게 사기를 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John of the Ark인 것이다. 오늘에 와서는 스위스나 이스라엘 여성들의 국가방어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러한 훈련을 받은 여성들이 얻는 최고의 소들은 자기존중 의식이다. 그들은 공격의 가능성 앞에서 더 이상 무려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현재 이끌어 가는 바로 이같은 방식안에서 자기들이 더 이상 쉽게 먹어 치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남성세계를 향해 알리게 된다.
비록 여성운동가들이 남성의 폭행을 막아 볼수 있는 새로운 자기 존중의식을 얻고자 하더라도, 남성의 공격적 폭력과의 경쟁을 향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려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 자아의 새로운 모형을 찾고 있는데, 그것은 타인의 침략적인 비인간화와 공포로 인한 묵인 및 개인적 혹은 집단적 폭력의 지원 모두를 초월할 수도 있을 그런 것이다. 어떤 여성운동가들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비폭력 그 자체의 이상을 채워주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수동적 태도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부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긍정하기에 이르는 폭력과 불의에 대한 용감한 저항으로서이다.
진정한 비폭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 위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남을 향한 폭력행사는 결코 자기 존재가치의 표현일 수가 없으며, 타인을 향한 적개심으로 곧 변화되어 버리는 자기 허약성의 압박감 위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가장 격렬한 남성들이 그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하여 가장 깊은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다. 비폭력 훈련은 정신적 혹은 인격적 발전과 자기에의 능력부여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 능력이 부여된 자기는 그 자신의 타락이나 다른 사람이 타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누르는 자는 반 그리스도인(ANTI-CHTIST)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모든 누르는 자의 압제에서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시려는 분(누가복음 4:18)이시기 때문이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논리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은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도 포함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사회 속에서 그리고 교회 속에서 성차별의 문화에 감염된 이들을 하루 속히 치유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억압하는 아버지, 남편, 동료, 성직자에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평화를 위하여, 조국통일을 위하여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여성차별을 대항해서 싸우는 일이 평화를 이루는 일과 새로운 결합을 촉진 가능케 한다. 여성운동은 근본적으로 지배와 복종이라는 힘의 원리를 거부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한편의 승리는 반드시 다른 평의 패배가 되어서 끊임없는 전쟁의 근거를 마련하는 승리와 패배의 개념을 거부한다. 여성운동은 남녀간의 개인관계 속에서의 경쟁으로부터, 국제간의 경쟁에 이르는 모든 힘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구조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또 다른 평등의 힘을 추구한다. 공동체 속의 동등자격을 주는 일은 근본적인 생명 상호 관계성 즉 남성과 여성, 우월감과 열등감, 모든 인종들, 인간과 자연, 물과 공기 등의 모든 관계에 대한 인식위에 기초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지 못하면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원칙으로 선다. 전쟁도발은 한편 이 지구 그 자체의 파멸인 모두의 패망을 가져오는 파괴성향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여성운동은 인간 생존의 근거와 지구 자체의 생존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해야할 것이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기를 바라는 자아의식에로의 전환은 전통적인 남성들 뿐 만 아니라 전통적인 여성들까지도 개혁시킬 것이 틀림없다.
생성공동체를 향한 변형연습은 따라서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을 하는 것이라 본다. 대화의 장을 만들고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시작할 때 신체적으로는 과거와 같은 공동체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운 생명(관계)를 생성해내는 공동체가 이미 되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변형연습으로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될 수가 없다. 이미 급진적인 성격이 기독교라면 오래전 부터 이를 공급해왔던 것이다. 진정한 자아와 공동체의 또 다른 소망에 뿌리를 내림을 말한다. 이 소망은 우리가 한 하나님과 하나의 지구와 한 부모의 후손들이며, 하나의 상호 의존적인 생활 공동체의 부분임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우리는 인간을 가난하게 하고, 타락시키거나, 좇아냄으로써, 몇몇의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부와 특권을 만들어 가는 모든 사회제도들을 반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제도들이 여성을 억압하거나 지배하는 것들이든 또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안보를 향한 헛된 추구로 핵에 의한 파멸을 추구하는 제도들이든 그것은 마찬 가지다. 이와같은 또 다른 소망 위에서 만 남성과 여성은 합하여 이 지구를 생성할 수 있다고 본다.
5. 생명 공동체의 실례 하나
하나의 예로는 화해와 나눔의 도리를 실행하는 ‘떼제 공동체’이다.10 떼제 공동체는 1940년 스위스로 부터 동부 프랑스 리용에서 110 Km 떨어진 한 작은 언덕, 가난하고 버려진 마을의 언덕, ‘떼제’에 들어 온 한 젊은이, 개신교의 목사의 아들인 ‘로제’에 의해서 시작이 되였다. 이제는 25개국의 9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공동체의 기본을 이룬다. 이중에는 천주교,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등의 교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신앙배경은 다르나 떼제 형제와 뜻을 같이해서 ‘일치적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것’을 서약하고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즉 물질적인 것이든 소질이든 모두 함께 나누며 형제애적인 사랑으로 하나가 되여있다. 초대교회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2:42-47)
그들은 아침 정오와 저녁으로 하루 세번씩 함께 기도하며, 각자의 일터에서 생계를 위해 일한다. 연구하는 사람, 저술을 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다양한 형태의 영성적 상담과 지도등을 수행하는 사람도 있다. 이스라엘의 ‘기브츠’ 공동체나 한국의 ‘사랑의 공동체’와 다른 것이 독신 남자로 살아 간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보겠다.
적은 차이들을 보면, 대부분의 떼제 형제들은 떼제에 살지만, 세계 각지의 작은 공동체에서 수개월 혹은 여러해 동안 머무는 형제들도 있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형제들도 결국은 하나의 공동체의 일원이다. 그들은 가난과 고통의 현장에 동참하기 위해서 세계 각지의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 뿐이다. 이는 또한 세계의 교회들을 격려하는 일로 연결이 되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본 받으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떼제는 기도하기 위하여 찾는 곳이다. 떼제 마을은 오늘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떼제의 교회는 이제 화해의 교회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떼제 공동체에 몇 주간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보내여지고 있고, 몇 주 후에는 유럽의 교회로 가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는 떼제에서 언제나 특별한 환영을 받는다. 떼제의 초창기였던 제 2 차 세계대전 중에 로제 수사는 나치에서 피해온 유대인과 도망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후에도 그는 전쟁 중에 가족과 헤어지게 된 아이들을 받아들여 떼제에서 성장시켰다. 프랑스로 온 유럽 국가들의 실직한 노동자들,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의 가족도 역시 환영을 받았다. 10여년전 베트남에서 탈출한 ‘보트피플’ 중 명몇 사람들도 그 마을에 정착했다. 적어도 일년에 한 차례씩, 로제 수사 자신도 하이티나 캘커타의 극빈자 촌, 혹은 이티오피아나 몰리타나의 기아에 허덕이는 현장에 가서 산다고 한다.
떼제 공동체의 특징을 간추려보면, (1) 공동체는 오직 신뢰 안에서 만 가능하며, 신뢰하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용서가 공동체를 의미한다. (2) 그리스도적인 삶을 추구한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비밀을 깨닫기 원한다. 감정주의나 교파주의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신앙에 모든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그리스도를 추구하며 살기를 원한다. (3) 각자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 떼제에 머무는 동안에 각자는 공동체의 형제들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신앙의 기초적인 면모에 대하여, 기도와 용서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하여, 소박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또 혼자서 묵상에 잠기며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의 고통과 투쟁과 소망에 대한 각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들의 지역 교회 공동체에 몸을 담고 신앙생활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봉사한다. 이렇게 삶의 연속성 속에 참다운 소망이 열린다. 그리스도 속에 발견된 새로운 삶의 변화가 징역 공동체 속에 변화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들은 떼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들이 관심하는 것은 복음, 그리스도, 교회, 사랑, 봉사, 기도, 그리고 믿음일 뿐이다. 각자가 일상 생활 속에서, 더불어 갈고 있는 지역사회와 이웃 속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이러한 덕목들을 구현 함으로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그리스도의 삶들을 말한다.
1988년 가을 유네스코의 평화를 위한 교육 봉사상을 수상한 바 있는 떼제 공동체는 사실 학교가 아니다. 그러나 분열된 세상에서 믿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모여들어 믿음으로 교류할 때 떼제는 분명 학교가 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사회와 일터 그리고 학교에서 신뢰의 효소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과연 누가 그 일을 이 시대 속에서 할 수 있을까?
떼제 공동체와 같은 의식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치유를 받은 인간이 서로 모여 대화하는 평등의 공동체를 이룬 것이 교회이며, 교회는 사회를 공동체로 변화 시키는 자원봉사로 생명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교회는 비로서 옛 교회 자리와 건물 그리고 옛 사람이라도 새로운 교회를 날마다 생성이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림인 자유 평등 사랑으로 완성을 이루는 날까지 영원한 연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남아있다
[주]
1. 이우정, 기독교 여성 백년의 발자취, (서울: 민중사, 1985), p. 35.
2. Ibid., p.35.
3. 제 6 장 p. 145에서 살펴본 “평등을 향한 여성의 어려움” 참조
4. Ibid., p. 67.
5. Ibid., p. 69.
6.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 여교역자 실태조사, 1989.
7. Brueggemann, Walter, Finally Comes the Poet,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9), pp. 44-49.
8. Ibid.
9. 필자의 출판되지 않은 연구 논문 “The Mysticism of St. Bernard of Clairvaux” (Madison: Drew University, 1982)으로 부터 인용 소개한다.: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 A.D.), who was a son of the lord of Fontaines-les-Dijon in Burgundy, entered the New Monastery at Citeaux in 1112. He brought with him some thirty companions, more than doubling the community. Only four years later, he was chosen to lead a new foundation which was called Clairvaux(1115). Largely because of Bernard’s influence, the Cistercians were to possess 343 houses all over Europe by his death in 1153. But Bernard was not the leader of this new wave of monastic reform, he became the leader of Europe in the first half of the twelfth century. Bernard’s influence on his own time was so great that we tend to identify him with the age in which he lived, as well as identify his age with him, so that many have spoken of the ‘Age of Saint Bernard’. Cf.
1). Bernard de Clairvaux, Saint Bernard on the Love of God, Tran. Terence L. Connolly, (Westminster: The Newman Press, 1951),
2). ________, The Steps of Humility, Trans. George Bosworth Burch, (Notre Dame: Univ. of Norte Dame Press, 1963)
3). William, Watkin W., Saint Bernard of Clairvaux, (Manchester: Manchester Univ. Press, 1952),
4). Luddy, Ailbe John, Life of Saint Bernard, (Dublin: Browne & Nolan, 1963),
5). James, Bruno Scott, Saint Bernard of Clairvaux, (New York: Harper & Brothers, 1957), 6. CAT taut, Georges, Saint Bernard of Clairvaux, Tr. Ena Dargan, (Dublin: Clonmore & Reynolds, 1966).
10. 이순임 역, “떼제 공동체” – 새로운 공동체 운동의 전망, 기독교 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9년 5월호), pp. 47-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