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속의 교회, 변형연습의 역사적 실례, (제 8 장) 뉴욕 1995

聖書的 敎會 生成을 향한 變形 演習 (制 8 章)

1. 변형에의 접근

이중문화 가정의 기능마비를 회복시키기 위한 변형의 과정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따른 자아발견을 통한 개인회복은 또한 평등 공동체를 향한 첫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정신변형를 받아야 되는 경우에는 기능마비가 심화되였을 때 이다. 한인 이민 가정과 특히 이중문화가정 여성들을 지난 수년동안 대하면서 보고받는 기능마비 내용들 중에 극심한 혼란(장애) 즉 정신이상을 일으킨 사람의 보고가 의외로 많았다. 이것은 한인 가정에는 다른 인종보다 심한 정신병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보다는 한인의 문화가 문제가 있을 때에는 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집안에서 시도하다가, 극심화되여 집안에서 다룰 수가 없어서 포기할 때 보기 때문에, 언제나 극도화된 경우만 보게된다.

            이러한 한인 가정의 문제 해결의 방식이 형성되는데는 세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1) 서양적 정신 건강의 개념에 익숙치를 않다.

            (2) 문제해결 방식이 내면적 시도로 훈련되여 있다.

            (3) 체면문화의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 하는 것1

             서양적 정신 건강의 개념에 익숙해가는 과정이 매우 느리다. 매우 다른 의식과 행동의 사회속에 익숙하지 못한 한인은 ‘약간의 굳어 있는 분열증세’를 보이는 경우에도 ‘미쳤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정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는 전문인이 아닌 가족들이 볼 때, 진정 ‘미쳤다’고 판단이 될 때인 것이다. 보통 완전한 변형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악화 상태 이전에 변형가 되면, 흔히는 정상으로 돌아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인 가정은 문제해결을 기본적으로 가정이라는 상황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한다. 따라서 문제를 가정 밖으로 들고 나가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 이것은 부모가 가정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부모의 얼굴이 없어짐을 뜻한다. 이와같은 철저한 비밀 봉쇄는 가정이 정해 놓은 기대선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하는 생각을 조금도 누구러 뜨리지를 못한다.

            이러한 점은 문제의 해결을 전문인에게 의탁하지 못하는 세번째의 이유로 인도해가는데, 그것은 사회적인 낙인이다. 한인 사회 속에서는 공동체의 눈에 비치는 가정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이민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미국사회에는 계층을 염려해서 공동체 속의 자기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과 가정을 희생 시키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한 ‘미치는 원인’의 가장 보편적인 세가지 이유들은 가정을 추적해 들어가게 마련이다. (1) 세습적 특성이 가문 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운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3) 가장에 의해서 익숙지 못한 인도와 훈육의 반영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흔히는 상기 중의 하나 이거나 혹은 복합된 이유들로 인해서 가족이 미친다고 본다. 어떠한 경우이던지 간에 가문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좋은 결혼을 찾고 허락되기에는 어려운 가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인 공동체 내의 토속적인 간접적인 치료방법(점쟁이, 자연식이요법, 한방의, 지압법, 호흡법, 심지어 무당)과 환자가 속한 핵 가정 안에서의 자원(심지어 신유방법)을 찾는 치료 가족들이 지치지 않는 한에는 한인가정은 절대 밖으로 전문인을 더욱 찾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인들은 전문인을 찾을 때에는 미치거나, 폭력적이고, 자살미수이고, 혹은 가족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하도록 되는 지경에 이르면, 창피하고 절망한 모습으로 찾는다. 학교에서 학생이 정신이상이 있음을 확인했을 경우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전문 기관에 의뢰해서 치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변형를 받으러 왔던 경우에도 첫번 방문 후에 53%가 다음에는 오지 않고 변형의 과정을 중단한다. 두번 째 돌아온 48%가운데에서도 변형 횟수를 평균 잡으면 2.35회에 불과 하다.

            따라서 한인의 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의 세 요소가 대화를 성공적으로 끌어가는 중요한 방법이다: (1) 문제 핵심의 확인, (2) 감정표현, (3) 반대의 과정.

            (1) 문제 핵심 확인

            전문인에게 가정의 갈등과 비밀들을 밝히기 전에 가족들은 먼저 편안한 관계와 신용할 만한 관계를 먼저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내편이 되어 믿을 만 해야 속을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사건과 현상들을 모두 숨기고 빙산일각 만을 내어 놓거나, 전혀 다른 일을 보고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과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언어를 찾아 내야하고 이에 반응을 보여야 안심을 하고 숨은 내용이 서서히 풀려 나간다. 따라서 많고 깊은 인내가 필요하고 정확한 욧점을 부족한 징조와 가족의 태도에서 잡아 갈 때, 가족들은 서서히 안심을 한다.

            (2) 감정 표현

            감정을 개방적으로 교통하는데 서양인과 전혀 다른 태도를 전통적인 한인들은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공개적으로 나누는 방법은 대화를 더욱 곤경으로 이끌어 간다. 사랑의 표현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기나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표현은 서양인들 보다 그 심도가 더욱 싶다고 본다. 어린나이에 받는 부모의 사랑의 표현은 기본적인 신뢰감을 깊고 강하게 쌓아 나가도록 돕는다. 성인이 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즉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수입으로 의식주를 가족을 위해서 제공하고, 또한 좋은 안내와 지도를 통해서 가족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나타내면. 그것이 아버지가 가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감정표현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주에서 태어나 자녀를 갖고 있는 한인 가정에 어려움이 일어나고 있다. 방송 매체와 자녀들의 친구가정들을 대하면서, 한인 부모들은 다른 서양인 부모가 자녀를 향한 표현적이고 애정적인 태도에 대하여 지나치다는 생각과 함께 혼돈을 하게된다. 서양 부모들이 자녀들을 덜 사랑한다고 보는 이유는 자녀들의 버릇을 잘못들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반대 과정

            전문가나 자신보다 높은 지위나 연장자 그리고 은혜를 입고 빚진 사람에게 향한 분노와 비평의 감정을 표현을 하는 것은 불공스럽다고 본다. 따라서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아래 격인 사람들은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연장자나 높은 사람에게 잘하지를 않는 것이 상례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것은 불공스럽다고 취급된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참든지 아니면 주저하면서 조금 공개하게 된다. 결국에는 거의가 내면화하면서 자기반소(自己反訴)나 자기비판(自己批判)으로 나타고 만다.

2. 변형 근거

            변형는 대화가 상실돼여 소외된 상태의 결함, 침해, 왜곡, 결심등 즉 정체성의 소외(ALIENATION FROM SELF-IDENTITY), 관계적 자아의 소외(ALIENATION FROM RELATIONAL SELF) 그리고 책임적 자아의 소외(ALIENAION FROM RESPONSIBLE SELF)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화를 통해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찾은 참다운 이웃들이 모여 공동체의 인간화를 이룬 후에, 사회가 생성 공동체로의 변형을 위하여 사회의 생성공동체로 변형을 스스로 자원해서 노력할 때, 이모든 과정을 변형연습이라 하며, 병을 앓기 이전 보다 한 단계 발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하는 사역의 한 기능이라 보겠다. 그러므로 변형 사역은 결함 침해 왜곡 결심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즉 사역 기능으로서의 변형의 사역은 육체와 심리 그리고 관계의 회복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P. Tillich는 변형에 대하여, “구원은 근본적이고도 원칙적인 변형이다”라고 말했다.2 그는 인간 구조를 ‘복합차원의 결합체'(MULTIDIMENTIONAL UNITY)로 보면서 인간의 건강 질병 구원 등의 개념도 이러한 복합차원을 소유한 인간의 각 차원에 이미 비 인간화가 침투하였기 때문에 어느 한 차원의 변형 만으로는 전체적인 변형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P. Tillich는 인간의 비인간화의 원인이나 비인간화 자체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비인간화로 인하여 일어나는 인간의 내적 체험과 이에 관련된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비인간화로 인하여 발생되는 영적인 필요(의식화)에 대하여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P. Tillich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서의 변형와 영적인 죄악에서의 구원, 그리고 공동체 속에 유발되는 문제점들을 구별하여 보지않고 있다. 즉 우리의 전인적인 존재의 구성요소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이 상해를 입게 될 때, 상해가 일어난 그 부분 뿐 만 아니라 전인적인 와해의 위기를 맞게 되며, 이는 진실한 의미에서의 변형는 고통을 당하는 개인의 부분을 변형하여 원상 회복을 하는 것 보다는 전인적인 인간회복을 변형라고 보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변형사역은 한 개인의 자신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의식화로 정체성의 소외를 해결(대화 평등 공동체)한 후에, 살고 있는 사회가 관계자아의 소외로 고통받는 것을 위하여 처해있는 작은 공동체 내의 인간화 즉 관계적 자아 환원(대화 평등 공동체)으로, 전체의 사회 구조 변형을 위한 책임적자아의 소외를 자원봉사로 극복해서 전체 사회를 점차적으로 생성공동체(대화 평등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때 진정한 의미의 전인적인 변형가 일어 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을 육체 정신 영혼으로 따로 나누어 사역하시지 않고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되 개인과 공동체로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어떠한 문제로 고통을 당하든지 그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한 개인의 해방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3

            하나님의 변형방법을 도형화한 전면(前面)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간은 전체의 구조가 짜여져야 비로소 건강한 개인과 전체의 인간이 된다. 어느한 부분에 결함이 생기면 전인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게된다. 심지어 자연환경의 한 부분에 파손이 생겨도 인간에게 고통과 병을 유할하게 되는 ‘더불어 삶’의 ‘얼개’를 알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어 각기 자기의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한 지체의 고통과 영광은 다른 모든 지체의 고통과 영광이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자들도 한 공동체의 한 지체의 모든 것은 다른 지체와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고 있다.4 따라서 변형라는 개념이 변화되여야 하는데 그것은 한 부분의 변형가 아니고 전체의 변형이고 한 부분을 변형하고 있을 때에 우리는 전체와 연결되여 있음으로 온전(WHOLENESS)을 향하여, 소외를 극복한 더불어 삶의 연결 통합된 생성 공동체로의 변형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화된 변형사역 팀들은 각기 전문성을 사용하여 더불어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팀들과의 상호 연결되어 협동하는 가운데 새로운 신앙공동체 형성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변형사역 현장에서는 개인의 의식화와 개체 공동체의 인간화로의 변형, 그리고 다른 개체 공동체와의 연합 사역으로 전체사회를 생성공동체로 변형하는 과정이 구조화된 변형사역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적 생성공동체를 향한 변형연습인 것이다.

3. 역사속에 산재해 있는 부분적 치유를 가능케한 사례들 

            ‘더불어 삶의 얼개’가 미숙한 단계로 이루어진 사례들을 보면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어떻게 변형를 향했는가하는 사건들을 살피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받침돌이 되리라 본다.

            AMNESIA라는 말은 과거를 잊는다 혹은 과거의 기억을 방해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AN-AMNESIS는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뜻은 잊어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수집해서, 공통의 기억과 희망으로 삼고 노력한다는 뜻이 있다. 즉 과거의 사건을 다시 재삼 재사 마음에 둔다는 말이다.

            신명기 26장 5-9절에는 하나님이 고대 이스라엘인에게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베푸셨는지에 대한 회상을 기록하고 있다. 잃어버린 과거의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가운데 그 공동체 속에 영속성의 감각을 갖게된다. 즉 공동체의 연대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Archie Smith는 현재 속에 희망을 소유할 수있는 근거가 바로 ANAMNESTIC SOLIDARITY로 보고있다.5

            1) 여성을 내조자로 보는 차별개념에 대항한 사례들

            1637년 이전, Ann Hutchonson은 처음으로 바울의 가르침을 그녀의 삶에 적요하기 시작했다. “새 피조물의 법은 …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고 여러분은 모두 하나입니다.” 이에 대한 확신으로 그녀의 집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마치도 광야의 소리처럼 보스톤의 여성들에게 외쳐댔다. 사회적인 남여 평등을 이야기 하기전에 하나님 앞에선 남여의 영적평등을 주장함으로 남성들에게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6

            퀘이커 여성인 George Fox와 Margaret Fell이 있다. 이 들은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s)의 창시자로서, 거룩한 빛(the Divine Light)에 의한 영적인 중생은 평신도 사역이 여성들 에게도 적용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최초로 미국으로 건너온 55명의 퀘이커 전도자들 중에 여성 전도자들이 26명이 되였다. 또한 Ann Hutchinson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던 Mary Dyer는 공공 장소에서 설교하며 가르치다가 the Massachusetts Bay Colony에서 잡혔었고, 세번째 잡혔을 때에는 목을 다는 형에 처해짐을 당했다.7

            제2의 대각성(The second Great Awakening)은 여성들이 성경을 재 해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주어졌다. 따라서 순수한 평등의 역할이 창조됐다. 부흥회의 참석인의 2/3가 여성들이였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자신들의 삶에 어떻게 역사했는지를 증거했다. 여성들이 공공 기도회도 인도하게 되였는데 1850년에 Phoebe Palmer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부흥사로 활약했다. 또한 Frances Willard는 Dwight Moody와 더불어 전도자로 활약했고 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의 회장을 역임했다. 또 구세군의 창시자 William Booth의 부인 Catherine Booth는 대단한 설교자였다고 한다. 대각성의 신학은 해방신학으로 변모했고 여성을 내조자로 만 보던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8

            19세기에 와서는, Elizabeth Cady Stanton의 The Women’s Bible이 1895년에 출간되면서 성경말씀을 재 조명하게 되였다. 가부장적 문화속에서 가부장들인 남자들 만을 위한 용어와 사상으로 쓰여졌고 해석되고 있다. 이것이 Elisabeth Schussler Fiorenza의 In Memory of Her에서 말씀이 재해석되고 있다. 여성은 교회의 참여자가 되였다.9

            한국의 사례를 들어보면, 경상도 고성(固城) 지방에서는 시장의 주도권을 여자가 쥐고 있었다고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는 기록하고 있다. 곡가(穀價)를 이 여자들이 좌우하고 남자들은 자칫 언사에 실언을 하면 중녀(衆女)가 그 사나이를 둘러싸고 마구 치고 받는 바람에 사나이는 감히 대어들지 못하고 목만 늘어뜨리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0 이 자료에서 우리는 이같은 풍습이 고성이라는 곳에만 점적으로 있는 특수한 풍속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간다할 것이다.

            한국여성은 양반사회에서는 나약했을 뿐 상민 사회에서는 나약하지 않았음을 통진 수령 임상현의 부인 금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대원군이 집권하기 이전의 안동 김씨는 그 세도가 임금 위에 있었고, 김좌근은 세도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모든 세도는 철종의 외삼촌인 그의 집이 있는 교동으로 집산되였다. 이 김좌근 위에 또한 사람이 있었는데 기생첩인 나합(羅閤)이였다. 나합은 본래 전라도 나주 기생이였다. 통진 수령 임상현의 첩 금운과 같은 기번출신이였다. … 나합의 생일 금운은 예물을 갖고 찾아갔다. 나합의 문전에서 모두가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금운이 마루에 올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천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너와 나는 같은 청루의 천한 기생으로 어쩌다 우연히 손을 잘 받아 너는 영상대감을 섬기게 되고 나는 일개 수령영감을 섬기게 된 것 뿐이니 너와 내가 그 섬기는 이를 바꿔 섬긴다해도 그다지 망발이 될 바 아니라, 하물며 네년의 유모까지 이다지 교만하게가르쳤느냐.”하고 일갈한 것이다.11        

            금운의 이같은 용기는 수난만 받아오고, 목석처럼 인간성을 박탈당해 온 한국 여성사에서 대견한 반동이요 저항임을 알 수 있다. 곧 개화기의 인권의식에서 선구자적인 모습이라할 수 있다. 금운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은 김좌근을 찾아가 사과를 했고, 금운은 남편을 벼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또한 그러한 사람을 남편으로 섬길 수 없다고 임상현의 집을 나왔다. 그 후 한말 일본의 침략으로 왕실의 관기들이 대폭 추방되여 거리로 방황하는 것을 모두어 잠자리와 밥을 주는 후생사업을 벌리는 한편, 관변의 아는 얼굴을 통해서 곡식을 얻어다가 주는 등 능동적인 활동을 대단히 펼쳐갔다는 것이다. 그녀는 ‘청루의 어머니’로 숭앙을 받다 죽었다고 한다.

            여학생들의 민족의식은 광복을 위한 결사로 발전했다. 그 중 숭의여학교에서 있었던 송죽결사대의 단발헌금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이화전문학교를 갓 나온 황애덕이 숭의학교 선생으로 온 후의 일이다. 그는 김경희, 이효덕 선생과 뜻을 통하고 상해 임시정부 요원에게 군자금을 모금해서 보내는 비밀 결사대를 학생들로 하여금 조직하기로 뜻을 모두었다. 그들은 매달 15일에 회비 30전씩을 갖고 기숙사 지하실에 모여서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들은 기왕에 이 나라의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성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독립이 속히 실현되도록 힘써 보려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이 일에 축복을 아끼지 마옵시고 저희들이 마음과 지혜를 더욱 부(富)하게 하옵소서” 송형제회에 뒤이어 ‘죽형제회’가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예비 결사대로 조직되었다. 그들은 생일놀이, 엿장수행새등의 행새로 군자금을 모으는가 하면, 어린이 머리에 띠는 굴레(일종의 방한모)와 돌 띠(허리띠)에 아름답게 수를 놓아 놓아서 군자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끝내는 회원들 자신들이 아끼고 다듬던 댕기머리를 자르기로 결의 했다. 대담하게 자신의 육신의 일부까지 잘라 팔았던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신분이 여성으로만이 자리를 벗어나 영원한 인간의 가치의 자유를 천명한 것이리라.12

            이상은 여성을 남성의 내조자로 보는 차별개념을 넘어서 여성의 특유성을 보여준 작은 예들이다. 이 세상에는 더욱 많은 여성다운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고 믿는다. 여성 스스로가 남자의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식화하는 것이 여성의로서 인간화되는 것이라 믿는다. 한편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의식도 변형이되여 여성이 남성의 동반자 임을 깨달을 때 여성의 진정한 해방과 남성 자신의 진정한 인간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사려된다.

            2) 여성의 낮은 지위라는 차별개념에 대항한 사례

            다음의 사례는 한 여성이 낮은 신분으로 온 나라의 존경받는 인간의 변형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의 의식변화가 주는 영향은 너무도 크다 할 것이다. 개인의 의식화가 공동체를 향한 변형 연습으로 연결되여 졌을 때, 이익사회가 더불어 삶의 얼개로 엮어진 생성공동체로 변화되가는 누룩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자신의 천한 신분에의 저항이 자선사업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승화한 한국 여성의 저항패턴을 살펴보자. 제주도의 만덕이라는 기생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기생이 되었는지 몰랐으나, 본래 양반 출신이었는데 어머니가 일찍 죽어 의탁할 곳이 없어 기적(妓籍)에 올렸음을 알았다. 20세 때에 제주 목사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적에서 빼어줄 것을 간청 했다. 기생의 일에 충실하면서도 몸가짐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신분을 지켰다. 결국 제주 목사는 감동되여 기적에서 빼어 양민(良民)으로 복귀시켜 주었다. 꽃다운 나이로 양민으로 돌아오자 구혼자가 잇따랐다. 그런데 만덕은 여자에게 얹혀 무기력하게 사는 제주의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끝내 만덕은 10년만에 제주에서 유수한 처녀 부자가 됐다. 정조 19년(1795년)에 제주도에 큰 흉년이 왔다. 한 마을에 온 식구가 굶어 죽어가는 집이 10여채씩 생기는 대단한 기근이였다. 조정에서도 구호양곡을 대느라 남해연안의 배들을 징발 연일 제주 나룻터를 붐비지만 기근을 매우기에는 역부족이 였다. 처녀부자 만덕은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에 가서 식량을 구입해서 나룻터에 대놓고 먼저 친척을 그리고는 관의 협조를 구해 부황난 사람들을 관덕정(觀德亭) 넓은 뜰에 모이도록 하고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로 인해 새곡식이 날 때 까지 아사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 목사는 이를 조정에 알렸고, 임금은 만덕의 원은 무었이든지 들어 주라고 회유했다. 만덕은 서울 구경하고 그 길로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 탐라 여인의 월해금법 (越海禁法)에서 만덕을 제외해주고, 모든 역마와 경비를 관비로 담당시켰다. 제주 만경나루에는 제주 여인들이 환송했고 한양에서는 당시 영의정이던 채제공이 마중했으니 당시 제주 여인으로 이러한 영광이 없었다. 임금은 선혜청(宣惠廳)으로 충분한 급량을 하라고 시달했고, 내의원 의녀들을 동숙 시켰고, 의녀장이라는 반수(班首) 명예벼슬을 주고, 그 자격으로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임금은 여시(女侍)를 통한 전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여자의 의기로 기근에 죽어가는 1천 1백여 백성을 구했음은 가상하기 그지없다.” 그 후 만덕은 금강산에서 그의 나이 58세로 불도에 접했다. 만덕이 제주로 떠날 때에 관아에서는 앞을 다투어 선물을 주었고, 장안의 공경대부 (公卿大夫)들은 만덕을 보려고 내원 앞 가마길을 메웠다고 한다. 만독의 하직인사를 받은 정승 채제공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 삶을 돌이킬 수 없으니 한탄스럽다”고 했으니, 이는 곧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재상이나 정승반열에 오르는 것 보다 만덕이 같은 선행을 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구의 표현이었다. 그 후 정승은 그의 문집에 만덕전(萬德傳)을 쓰고 그 끝에 천하수비(天下隋非)에 만자가 많지만 미미한 여자만도 못하니 이 또한 어찌된 일인가고 개탄하고 있다. 제주에 돌아온 만덕은 절을 세우고 불법을 펴 제주 불교의 중흥자되 되기도 했다.13

            3) 여성이 공상가라는 차별개념에 대항한 사례

                        고려사의 “박유전”에 의하면 박유라는 정승이 다음과 같은 이색적인 상소를 하고 있다. ‘본래 우리 나라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은데다 처 하나만을 얻어 사는 것을 존대하여 아들이 없는 자도 감히 첩 얻기를 주저하거늘 외국인(원나라)은 우리 나라에 와서 한정없이 첩을 거느리니 이러다가는 모든 인물이 북으로 흘러갈까 염려되옵니다. 대소 신료(臣僚)에게 허락하여 서처(庶妻)를 보게 하되 그 서처 소생의 아들 딸도 적자(嫡子)처럼 종사(從仕)하면 지금과 같은 원망은 없어질 뿐더러 호구도 늘어 국력도 커질 것이옵니다.”14

                        이 상소는 사실상 일부일처제를 일부이처제로 하자는 한국 여성 사상 가장 위기였다. 이 위기를 당한 고려 여성들의 반응은 우리의 선입감처럼 수동적이고 굴욕적이진 않았다. ‘부녀자들이 이를 듣고 원통하고 분함을 못 참아 하더니 때 마침 이를 부르짖은 박유가 가마타고 지나가자 한 늙은 할미가 손가락질하며 서처를 두자고 청한 자가 바로 저 늙은 거지라고 욕하자 이를 들은 여인들이 서로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곤 하였다. 또한 당시의 재상들은 이 서처제를 욕하는 부인들의 등살에 잠을 자러 집에 가지도 못했다고 했다.

            정종조에 천주교가 들어왔을때 그 혹독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여인들이 이에 귀의하였고 놀라운 용기와 영웅적으로 순교한 여인들이 남자들보다 많았다는 사실은 성리학의 사회 모랄에 짓눌려 그늘 속에 움추려 있던 인간에의 복귀의지가 남성보다 강렬했기 때문이다. 또한 초기 천주교도 가운데 결혼을 거부하는 처녀의 순결관이 유행하였고, 또 결혼을 하더라도 성교를 않는 동정처의 풍습이 유행하였음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한국 여성들의 인간적 집념과 자유를 향한 집념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였다.15

4. 한인 이민사회 내에서의 교회를 중심한 여권회복을 위한 움직임

            1) 하와이의 한국여성 (1903-1945)

            Alice Chai에 의하면, 하와이의 한국여성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 뿐아니라 조국의 해방운동에도 연합하는 운동체로 발전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던 좋은 예가 된다. 경제적인 조정과 연대구뤂과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는 서로 연결된 조직과 더나아가서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힘을 형성해나가는 단체로 발전 해갔다. 이 모든 것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16

            2) 이중문화 가정목회 전국협의회

            1989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이중문화가정 전국협의회가 미연합감리회 내의 이중문화가정 한인들이 중심이되여 구성한 후에 매 2 년에 한번씩 이중문화 가정을 위한 종합 수련회가 열리고 있다. 서로의 친교와 이중문화가정선교를 위한 관심사를 서로 나누고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로 굳혀가고 있다. 지난 94년에는 유타주에 거주하는 옥금번 자매의 구제 연대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옥금번 여인은 1994년 6월 18일 남편으로 부터 심한 학대와 천대를 받아오던 중 이혼을 당하게 되여 자살을 기도하고 그의 아들 조슈아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나게 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일급 살인범으로 기소되여 1994년 11월 중순에 판결을 받게 되였는데, 1개월 앞두고 94년 10월에 이를 알게된 지역 이중문화가정 여성들이 “옥금번 구제위원회”를 결성하고 담당판사에게 부록 [D-2]과 같은 Petition을 내고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연대 서명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이중문화가정 목회 전국연합회를 통해서 벌렸다.

            3) 뉴욕아시안여성센터17

            뉴욕 아시안 여성센타는 미동부 지역에서 최초로 동양계 공동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여성학대 및 성 폭행 등 여성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1982년에 독자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과거 직접 그러한 피해를 당했거나 그 문제성을 깊이 인식하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활동으로는 직접적인 봉사와 교육을 통한 구조개선의 두가지 분야로 크게 나누어져있다. 직접적인 봉사로는 24시간 여러 언어 핫 라인, 폭행 피해여성 상담, 법적 옹호, 안전한 피신처 제공등이다. 지역사회 교육활동으로는 각 민족 특유의 경제 및 문화 상황 등을 고려하여 시행하고 있다. 또한 문제의 근절을 위해서 상기의 두가지 방법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절실한 도움만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현 동양계 공동체 내의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그 지위를 공고히 해서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4) 무지개 가정집

            무지개의 집은 (혹은 무지개 친정집, Rainbow Center)은 뉴욕시에 자리잡고 있는 이중문화가정을 위한 상담센터이다. 본 세터의 모체인 무지개교회가 1991년 9월 29일 이중문화가정의 한인 여성들을 위해서 여금현 여성목사에 의해서 창립되었다. 본 여성 교회는 여성의 시각으로 성서가 해석되고, 하나님의 여성성을 인정하고, 여성의 삶의 경험을 통한 예배의식을 개발하고, 여성들의 역사를 발굴하고 문화를 형성하는데 집중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일체의 것에 대항하는 여성 해방운동에 교회의 사명을 두고 있다.

            교회 대내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예배, 친교, 성서연구, 속회, 심방, 지도자 육성, 수련회, 금식기도회, 강연회등이 있다. 그동안 9명의 성인 세례와 5명의 유아세례, 그리고 2년제 성서학과에 1명을 의탁교육해서 졸업했고, 또 1명이 재학 중이며, 찬양신학교에 1명이 재학 중에 있다.

            무지개 친정집(상담소)는 1993년 5월15일에 문을 연 후, 무지개집 소식을 간간히 출판하고, 한국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도움을 받은 사람이 2명, 방을 얻어 살림을 내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4명, 정기적인 상담을 비밀리에 받는 사람이 2명, 재판중에 있는 사람이 2명, 자식에게, 맞고 쫓겨난 노부부와 할머니의 새 살림차림, 자녀를 보고싶어서 켄터키와 필라델피아로 무작정 떠난 여인이 2명, 테네시와 버팔로에서 오고 있는 사람이 2명,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6명, 상주하고 있는 사람이 2명.

            무지개 교회와 친정집이 그동안 법과 싸워서 불우한 이중문화가정의 한인 여성을 위해서 승리한 경우가 노스 캐롤라이나 감옥에 아들을 죽인 혐으로 20년 언도를 받고 5년간 수감되어 있는 송종순(Ms. Chong France)의 집행유예를 위해서 결성했던 송종순 석방위원회(Free France Campaign, 문혜림, 민경숙, 박혜정 여금현)는 이민사회와 세계에 흩어진 한국인에게 이중문화가정의 여인을 위해서 서명운동을 벌인 최초의 범세계적 운동(국내와 한인교회, 한인상가, 외국신문, 각종여성단체, 미국교회 및 개인) 이였다. 주지사에게 편지보내기 운동은 미국전역과 한국, 일본, 독일등으로부터 약 10개월간 이루어 졌고, 그 결과 1992년 12월 30일 송종순은 가석방되였다. 그동안 2년동안을 서승혜 변호사가 자원봉사했다. 지역주민 중 김인묵과 김소희씨가 석방을 위해서 모금운동을 했다. 인권회복의 최초의 일례가 되였다.

            5) 미 동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18

            1994년 총회에서 UN이 1995년을 여성의 해로 선포한 이 후 1995년 2월 세계 교회협의회는 정신대문제에 언급, ‘민간기금으로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올 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였고, 국제변호사협회는 ‘일본정부가 범죄자를 국제법에 의해 엄중처벌하고, 즉시 개인보상을 실시하라’고 촉구하였고, UN 인권 위원회는 5월에 특별조사관을 한국에 보내게 됨에 따라, 미동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94과 95년 동안 해왔으며 또 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

            94년의 행사: (1) 일본 정부 유엔 상임 이사국 가입 저지 활동: 이키히토 일왕 UN방문에 맞춘 ‘피해국 연합궐기대회’, (2) 피해 7개국 국제 연합 공청회 개최, (3) 일본 국내외 가해자 발국 작업, (4)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적 투쟁, (5) 국제 여론 조성을 위한 홍보, – 갈리 UN 사무총장과 클린톤 미 대통령에게 탄원편지 보내기, – 영어증언집발간, – 1.5세 작가들에 의한 정신대 관련 작품전시회, – NY Times 전면에 일본 정부의 비인도적 죄상폭로, – 일본과 UN에 보내는 12,000명 탄원서명서 전달            .

            95년도 행사: (1) 국제 여론화와 전문인들에게 자료 제공 위한 ‘정신대문제 자료 연구소’ 개설, (2) ‘정신대문제 자료 및 작품 전시회’ 개최 (뉴욕, 북경, 세계여성대회, Smithsonian 박물관), (3) 각종 영문 자료집 및 News Letter 발간, (4) 국제법 강제 노동법과 UN인권 선언 행동, 지침에 근거한 정신대 가해자 처벌위한 법적투쟁, (5) 북미주내 생존자, 일본인 가해자 및 정신대 관련자료 발굴, 연구 및 홍보, (6) UN 위시한 각종 국내외 인권 여성회의에 대표 파송, (7) 정신대 관련한 영화 연극 조각 음악 및 예술 활동 후원, (8)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대회 에서도 참가자 5천여명을 상대로 홍보활동, (9) 5천만불 활동 기금모금 켐페인

            6) 만하탄 선교센터19    

            주로 만하탄의 한인 맛사지 팔러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선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심리상담, 생활 상담, 성경공부 및 예배등을 주로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다. 본 기관은 지난 1995년 3월 3-4일에 뉴욕신학교 주최로 열렸던 ‘가정폭력에 대한 교회의 대책’이라는 웤샆에서, 뉴욕신학교가 주는 공로패를 수여받았다. 필자도 ‘가정폭력의 신학과 성서적 연구’의 웤샆을 담당한 바 있다.17 [부록 D-4]

            7) 한미 여성 연합 선교회 21

            1991년 8월 24일 필자에 의해서 선교회가 창립을 보았다. 목적은 이중문화가정을 배경으로한 불우한 여성들을 돕는 것이다.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Embury United Methodist Church 담임자로 필자가 부임, (2) 필자에 의해서 1990년 12월 9일 같은 장소에 할렐루야 연감감리교회를 창립, (교인 절반이상이 이중문화가정 한인 여성), (3) 1991년 6월 30일 할렐루야 연합감리교회 교인 총회에서 한미여성연합선교회를 창립할 것을 결정, (4) 1991년 8월 12일 창립만찬 준비 모임, (5) 1991년 8월 23일 한미여성연합선교회 창립 (창립자: 최윤경, 박조이, 김영자, 김영, 김관수, 주일, 임덕순, 이기선, 신양순, 고순희, 민혜경, 김정애, 전인자, 최완자, 김분옥, 황보규연, 최귀례, 윤완희, 윤태헌, 이상 19명)22, (6) 1992년 2월 13일 NY주로 부터 기술(영어, 기술) 학교 인가 받음23, * 선교회원들의 개인 성경공부 및 상담 시작, * 자녀와 부모, 부부 사이의 갈등에 관한 상담 및 신앙지도24, (7) 1992년 12월 1일 제 1 회 사랑의 바구니 보내기 운동을 시도하여 15가구에게 전함, 2명의 선교회원들에게 생성의 삶을 보내기 시작, (8) 1992년 12월 25일 미국인 무숙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 할렐루야 연합감리교회)25, (9) 1993년 3월 22일 이중문화가정에서 AIDS 환자 발견, AIDS환자를 위한 사역시작, (10) 1993년 4월 17일 이필수 여인을 105경찰로부터 보고받고 퀸즈병원과 주립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후, 가료중 가족 찾기 시작, (11) 1993년 5월 1일 이필수 여인의 가족을 한국에서 찾음, 생성의 삶을 추가 15명 더 보냄, (12) 1993년 8월 30일 이필수여인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감, (여권 갱신, 비행기표 마련, 한국의사에게 보내는 편지 지참, 6개월분의 약 지참케 함, (13) 1993년 9월 19일 AIDS를 앓던 환자 사망, (예수 영접) (14) 1993년 11월 21일 Florida로 이사 후 Timmer 정자(38세) 폐병 및 합병증으로 사망, (예수영접), (15) 1993년 12월 21일 제 2 회 사랑의 바구니를 24 가정에 전달 Coxsackie 감옥방문 (9명) 8명의 한인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바구니 전달, (16) 1994년 1월 4일 매달 첫 수요일에 임원 기도회 시작, (17) 1994년 3월 4일 한인 여성 AIDS환자인 Mrs. Dexter를 만하탄 Foundation 쉘터로 방문 위로26, (18) 1994년 5월 6일 한인 AIDS, HIV환자들을 위한 기도회에 뉴욕봉사 센터의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안경현씨를 모시고, 한인들의 AIDS 예방교육에 관한 설명 및 필요서에 관한 대담, (19) 1994년 7월 18일-20일 제 1 회 이중문화 가정 썸머 캠프를 Wisdom House에서 열었음,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제”란 주제로 회원과 자녀들이 함께 참석하여 이중문화가정의 장점과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과 사명에 관한 신앙 수련회, 강사에는 필자였다.27 (20) 1994년 8월 15일 필자의 인도 아래 개인적 “전문 심리변형” 시작, (21) 1994년 12월 4일 사랑의 바구니를 위한 자선 음악회28, (22) 자녀 위한 장학금신청 추천 신청 및 수령(受領) 전달,29 (23) 1994년 12월 13일 감옥방문, (24) 1995년 2월 – 제 2 회 이중문화 가정을 위한 겨울 수양회 계획, (25) 1995년 6월 말 영성훈련원 중급반 (부부웤샾)30, (26) 1995년 8월 말 영성훈련원 중급반 II, (부모와 자녀의 웤샾)31, (27) 1995년 10월에 여성훈련원 생활편으로 자원 봉사훈련을 구체적으로 적용한다32.

[주]

1. McGoldrick, Monica, John K. Pearce, Joseph Giordano, Ethnicity and Family Therapy, (New York: The Guilford Press, 1982), p. 221.

2.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Vol. III, pp. 11-29; pp. 275-281.

3. Bogdan, Martin & Deidre, The Psychological Way/ The Spiritual Way (Minneapolis: Bethany Fellowship, 1979), pp. 27-42.

4. Dicks, Henry V., Marital Tensions: Clinical Studies Towards a Psychological Theory of Interaction (New York: Basic Books, 1967), John L. Castee, Spiritual Renewal Through Personal Group (New York: Association Press, 1957), & William Schutz, Joy: Expanding Human Awareness (New York: Grove Press, 1968).

5. Archie Smith Jr., The Relational Self, Ethics & Therapy from a Black Perspective. (Nashville: Abingdon, 1982), p. 21.

6. Roger G. Betsworth, Social Ethics – An Examination of American Moral Traditions. (Louisville, Kentucky: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0), p. 161.

7. Ibid., p. 162.

8. Ibid., pp. 162-163.

9. Ibid., p. 163.

10. 이규태, 한국여성의 의식구조, 제 1 권 생구인가 사람인가 (서울: 신원문화사, 1993) p. 23.

11. Ibid., pp. 30-34.

12. 숭의 60년사

13. 이규태, 한국여성의 의식구조, 제 1 권 생구인가 사람인가 (서울: 신원문화사, 1993) pp. 25-29.

14. Ibid., p. 17.

15. Ibid., p. 24.

16. Chai, Alice, “Korean Women in Hawaii (1903-1945) in Women in New Worlds by Thomas and Keller, Editors, (Nashville: Abingdon, 1981), pp. 328-344.

17. New York Asian Women’s Center, 39 Bowery, Box 375 New York, NY 10002, (Tel.) 212-732-5230. & 부록 [D-2]

18. 부록 [D-3]

19. Manhattan Mission Center Presbyterian Church for Korean Women, 110 W. 34th Street Rm 1100 New York, NY 10001, (Tel.) 212-268-4910

20. 윤태헌, 빛속에 걸어감 – 가정 안에서의 폭력사용에 대한 교회의 대응책, (뉴욕: 뉴욕신학교, 1995년 3월 3일) 발간되지 않은 웤샆 자료. & 부록 [D-4]

21. 부록 [D-5]

22. 부록 [D-5-3~5]

23. 부록 [D-5-7]

24. 부록 [D-5-11~16]

25. 부록 [D-5-26]

26. 부록 [D-5-25]

27. p. 201 참조

28. 부록 [D-5-17~18]

29. 부록 [D-5-8]

30. p. 208-209 참조

31. p. 209-210 참조

32. p. 214-215 참조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Doctor of Ministry and tagged , , , , , .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