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성서적 교회생성을 향한 변형 연습
변형연습을 위한 목회의 여정
1950년 6.25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약 13만명의 한국여성이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매년 3-4천명이 현재 오고있다. 또한 이들의 친정 가족을 초청하여 부모와 형제자매 및 그 직계가족까지 포함 기하급수로 한인 공동체의 1/3의 인구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은 계층자원(CLASS RESOURCES) [미국사회의 계층분화]이 빈약한 관계로 단순노동에 이봐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한인사회의 노동자 층의 인구가 더욱 두터워졌다. 한편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의로 이민온 이중문화가정의 한인 여성 가운데 10%가 자영사업이나 전문직에 근무하고, 30%가 단순 노동을 하며, 60%가 다양의 서비스 업종에서 일을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여성의 대부분이 이미 결혼에 실패를 한 여성들이고 그중 절반이 맛사지 팔러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이중문화 여성들의 (1) 자영, 사업과 전문직, (2) 단순노동 (3) 맛사지 팔러로 분류된 구릅이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를 조사해보는 것이, 이들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본다.
미국사회의 인종차별, 여성차별 및 계급주의의 희생자인 소수민족 중의 하나가 이민 한국인이다. 하물며 계층자원이 없는 단순노동 한인과 중산층 이상의 보수파 한인사회의 분열과 여성의 차별의식과 그 현상은 이민 사회 깊히 이중문화가정의 한인 여성들의 숨은 희생의 이야기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민사회의 문제의 분열화와 소외화를 빙산일각으로 알려주는 이중문화 여성의 문제는 교회의 특수 선교 분야라기 이민 사회와 세계를 향한 교회의 의식화, 인간화 및 평등 공동체 형성을 위한 선교 목적 자체에 부응한 이민교회의 참 선교가 되여야 한다고 본다.
1. 이중문화 가정 여성의 교회인식
이러한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이중문화 가정 여성들의 인식에 대한 이해는 결국 한인교회가 그들의 문제와의 관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대다수 일반교회들이 보편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이중문화가정 여성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서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1) 조사 방법과 과정
표본을 선정함에 있어 교회에 출석하는 이중문화가정 여성으로 하였으며 미 전역의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1) 일반교회, (2) 이중문화가정 교회, (3) 특수 교회(서비스업 즉 마사지 팔러등의 종업원을 위한 성경공부 혹은 기독교친교 모임) 등 세 유형의 교인들을 조사했다. 조사방법은 각 교회의 선교(전도)부 담당자들이 집회중에 각기 작성하도록 해서 회수 하도록 했다. 위 세 유형의 출석자중 1000매의 설문지 중 150명 정도의 응답자를 기대하였으나 (1) 100, (2) 45, (3) 55가 최종 회수되였다.
2) 표본의 성격

3) 교회별 이중문화 여성들의 인식
(1) 교회에 대한 인식
이중문화 여성들의 교회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하여 먼저 그들이 왜 교회에 다니는지 물어 보았다. 다음의 [표 1]을 참조하기 바란다.
세 유형 교회 여성들 절대 다수가 ‘바르게 살기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고 응답하고 있는데 그 강도는 일반교회 여성(60%), 이중문화교회 여성 (66.8%), 특수교회 여성(78.1%) 순이다. 특기할 점은 특수 교회 여성이 ‘천국에 가기 위해’ ‘죄 때문에’, 두 합계비가 12.8%인데 비해 일반교회 여성 21%, 이중문화교회 여성 22.2%로서 전통적 신앙의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 표1 ]

(2) 바람직한 교회
이중문화가정 여성들이 바라는 교회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바람직한 교회는 어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아래의 [표 2]를 참조하기 바란다. 일반교회 여성들은 ‘인격수양과 교양을 갖추게'(53%)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이중문화 교회와 특수교회의 여성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64.6%와 80%)고 응답하고 있다.
[ 표 2 ]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일반교회 여성들의 23%도 교회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함을 기대하고 있으며 천국가는 길 인도는 일반교회 여성이 13%이고 이중문화교회 여성들은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 점이다. 이중문화 가정 여성들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 교회가 나서야한다는 견해를 평균 48%로 보이고 있다. 이 중에 이중문화교회 여성보다는 특수교회여성의 의식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중문화 가정 여성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굳굳히 살아가려고 하고 그 점에서 좋은 점을 많이 갖고 있는 ‘국제결혼한 여성’들이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 결혼한 여성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교회에서도 나타나곤 하는 불행한 현실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교회의 교인이 먼저 이중문화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함을 느낀다. 이에 여기서 3가지 목회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겠다.
2. 변형연습을 위한 목회의 여정
1) 정체성을 위한 개인 의식화 사역
한미 여성연합선교회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역을 진행하게 된다. 첫째 단계는 치유의 단계로 인종차별과 성차별로 인한 눌림 속에 상실당한 혹은 극단의 모습을 모이고 있는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 회복을 위한 ‘자아’ 발견의 여정을 위한 ‘고침’의 목회이다. 이 의식화 작업이 되지 않으면 둘째 단계와 셋째 단계의 사역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다만 행사로 끝날 뿐 생성과정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 정체의 회복이다. 이것이 출애급의 역사와 같은 교회 생성이다.
정체성 획인사역으로서 이것은 혼 즉 인격에 관한 사역으로 자신의 정체성(SELF-IDENTITY)를 찾아주는 사역으로서 현재 잘못인식 혹은 잃어버려졌던 한국인의 참 모습을 찾아주는 개인의 변형(PERSONAL TRANSFORMATION)을 위한 사역이다.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데는 Bernard Steinzor는 그이 책 The Healing Partnership 에서 말한 “자신의 실체는 관계속에 있음이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1 Martin Buber는 말하기를 “태초에는 관계가 있었다”고 했다.2 Martin Buber는 그의 상기 책 1장 결론에서 말하기를 “‘그것(사물)’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상황 속에 자리를 잡고 있고, 당신(인간)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상황속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다. 모든 관계가 다 끊난 특별한 ‘당신(인간)’은 개체의 그것(사물)으로 되려 묶여(제한)진다. 반면에 관계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된 특별한 ‘그것(사물)’은 ‘아마도’ 개체의 ‘당신(인간)’이 된다”고 말하면서3 인간은 관계속에 있어야 만이 인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사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나 사물 만으로 살아갈 때에는 더이상 인간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것’이나 ‘당신’ 자체는 악한 것일 수 없으나 ‘그것’이 ‘당신인 척하거나, ‘당신’이 ‘그것’으로 가장하는 것은 악한 것이며, 더욱이 ‘그것과 당신’의 관계가 ‘당신관 당신’의 관계를 가장해서 나타나면 악한 것이며, ‘당신과 당신’이 ‘그것과 당신’의 관계를 대신할 때 악한 것이다. 더욱이 ‘그것과 그것’이 ‘당신과 당신’의 위치를 서로 대신할 때, 악한 것이다.4
따라서 인간은 관계 속에 있어야 참 인간이 되기위한 정체성 (IDENTITY)을 찾으나, 그 관계는 ‘나와 당신’과의 관계와 ‘나와 그것’과의 관계 정립이 바른 자리를 찾을 때 왜곡되지않은 바른 인간의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다른 표현을 쓴다면, 하나님이 본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모습의 인간 즉 소외되지 않은 참 자유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적 자아’를 두고 고대 아프리카의 격언은 정확하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은 타인의,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서 만이 존재한다.”5 인간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역사의 과정 속에 얽혀있는 거미줄같은 삶의 마당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내면과 외면의 차원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確認)하고, 사회적 변형의 근거가 되여, 열린 사회 즉 함께하는 동등의 대화의 사회를 소망할 수 있다.
이중언어 이중문화의 양문화 수용이 가능한 유리한 입장에서도 가치혼란과 자신에 대한 비하가 자신의 특유한 위를 내세워 공동체나 사회에 이바지 하기보다는 숨어 지내거나 문제의 사람으로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 형태의 목회는 먼저 이중언어의 사용과 양 문화의 장단점을 수용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신앙 공동체가 어느 언어의 제한으로 예배, 감사, 친교, 선교, 신앙의 성장을 제한 시키지 않도록 노력 해야할 것이다. 단순한 번역이나 동시통역으로 대치하기보다 양문화가 소유한 장점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서로 배우고 교통하는 과정에서 목회 형태가 개발될 수 있다. 특히 교육적인 면과 자기 성장면에 목회의 비중을 둔다.
여성의식을 공유하면서 여성지도자들은 특별히 사역의 전문인으로서의 자의식에 투철해야 하며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자기 정체성을 실천해야한다. ‘여자였기 때문에 누려왔던 기존의 특권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한다’, ‘목회현장에서 기존의 남성목회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있다. 이는 레티 러셀이 말했듯이 ‘가부장적 성직에의 여성의 무비판적 투여’의 결과일 수 있다. 즉 가부장적 성직에의 여성의 무비판적 투여는 여성성직자로 하여금 마치 남성다움을 겨루는 경기에서 뛰어나게 성공하여도 여성다움을 상실해 버렸다는 비난을 당하거나 육체적 심리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면서 형식적(여성을 수용했다는 선전 정도) 주변적(보조자)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중삼중의 성차별 벽에싸여 있다 할지라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치열한 삶을 담보로 여성지도자 자신이 먼저 철저한 여권론자가 되고, 남성들이 여권론자가 되도록 도우며, 종국에는 더 이상 여권론자가 필요없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웤샆을 통해서 개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한다: (1) MMPI-2, (2) MBTI, (3) Homecoming, (4) Focusing, (5) Enneagram, (6) Breathing & Fasting. [부록 B] 부분의 자료를 참고 바란다.
2) 관계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인간화 사역
둘째단계는 정체성이 확인된 자아는 함께 대화가 가능하며 서로를 누르거 나 침해하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의 평화를 파괴한다는 것을 아는 경지이다. 따라서 이 지경에 이르면 ‘더불어’ 사는 삶의 단계로 변형되는데 이익사회내에 사라졌던 인간관계가 생성이 되게 시작한다. 이제부터 기초 공동체인 교회(COMMUNION)가 비로소 대화연 (COMMUNICATION) 에서 시작된다. 차별의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기본적으로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관계적 정체 회복으로 교회가 교회다울 수있는 기본인 것이다. 십자가 역사와 같은 교회 생성이다.
우리 문화 상황은 두가지의 양극단의 의식이 유혹하고 있다.6 극단적 주관주의 의식이고, 둘째는 극단적 개관주의 의식이다. 주관주의적 기둥은 언제나 ‘오직 나 자신 만’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 경향 때문에,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에 객관적인 기둥은 높고 선하게 살기위해서 ‘오직 하나님 만’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는 경향 때문에, 하늘에 있는 거대한 자신에게 자신을 드리는 것으로 나를 연장 했을 때에 만이 자신이 오직 존재한다고 믿는다.
‘오직 나 자신 만’의 극단적 주관주의는 불안한 소외(疎外)를 초래할 수 있고, 깊은 격노(激奴)를 낳을 수 있다. 지나친 주관주의자들은 모든 정의(正義) 문제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자신과 정의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오직 하나님 만’의 극단적인 객관주의자는 정의를 위한 원칙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언제나 옳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잘못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좀더 많이 그리고 잘 아는데도 자신의 판단에 반대되는 태도를 용납하도록 부추기는데는 격노(激奴)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두가지 극단의 경우를 단순화 시킨 견해들이 서로를 더욱 심화시킨다. 한쪽은 나 자신이 판단을 신뢰하라고 부추기고 다른 한쪽은 나의 판단을 무시하라고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극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통로가 없고, 반면에 하나님의 극대화는 자신과의 통로가 사라지고 없다. 소외가운데 자신의 극대화된 감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홀로 남아 있고,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 만을 극대화한 사람들은 맹종끝에 결국에 하나님은 나를 무시한다고 격노와 실망을 형성한다.
이러한 소외와 침묵하고 있는 격노는 그 중심에 공통된 성격히 있는데, 그것은 대화의 부재라는 것이다. 양 극단적 삶은 침묵으로 인도해 들어 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자신을 극대화한 소외된 침묵으로 부터의 삶들을 대화에로 인도해내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 만을 극대화한 거절과 격노의 침묵의 사람들을 심각히 계약적 대화에로 인도할 고집을 전복시킬 ‘함께 함'(COMMUNION)의 근본 형태인 대화에로 인도해내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복종에 의해서 대화가 파괴되면 ‘함께 함’은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대화를 잃은 개인과 사회는 폐쇠된 개인과 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H. Richard Niebuhr은 그의 The Responsible Self 에서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은 폐쇠된 인간이며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무반응한 인간이라고 보며, 구원 받은 인간은 개방된 인간 즉 하나님과 인간을 향하여 열린 대화로 살아가는 삶을 뜻하고 있다.7
치유사역으로서 이것은 영적인 문제로,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찾은 후, 자신이 한국인으로 미국인과 한가정을 이루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확인시킨다. 이 교육 훈련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이루신 인간사회의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 가정임을 깨닫고 이것이 교회의 기본 구성으로, 외롭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있어줌(EMPATHY MINISTRY)이 바로 치료사역임을 확인한다. 입장과 배경이 다른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있어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이브를 창조하셔서 동행인으로 삼으시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함께 함의 둥우리’인 가정을 삼으셨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함께 함의 둥우리’인 교회를 삼으셨다. 이것이 치유요 교회변형(ECCLESIOLOGICAL TRANSFORMATION)의 참 모습이다.
많은 대상자들이 안고 있는 한을 풀어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목회의 은사에 치중하는 목회이다. 많은 국제 여성들이 경험한 인간의 깊은 고난의 길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구원의 확인 속에서 거듭남의 변화를 체험케 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베푸는 사역자들을 배출하는 목회 형태이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로 이웃에게 따뜻함을 전달하고 깊은 감사와 찬양과 기도가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을 추구한다. 인간 사회의 가식과 허상에 도전하고 진정한 인성의 거듭남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하게 되는 체험을 가지도록 치중하는 목회의 형태이다.
현실인식으로부터 자기를 비하하지 않고 그대로를 수용하는 자기수용 (자의식)이 가능해지면 동시에 동등한 무게로 타인을 수용할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같은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생기는 동료의식이 중요하다. 여성들이 오랜 성차별적 전통에 눌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과거를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그러한 과거를 초극하는 일을 위해 일할 결단까지도 할 수 있게 한다. 여성은 고통의 경험으로 남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아픔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그 아픔을 대변할 수 있다. 때문에 여성만이 아니라 소외된 모든 이웃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일을 앞에 두고 결단까지도 할 수있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여성의 잠재된 힘이 있다.
관계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1) Conflict Inventory & Self/Partner Knowledge Inventory, (2) Firo-B Scale & Firo-F Scale, (3) Relationship Therapy, (4) Getting to Yes, (5) Six Thinking Hats. 한미여성연합선교회의 영성훈련원에서 사용하는 본 자료는 본 논문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훈련에 참여시 받게된다.
3) 책임적 정체성 회복을 위한 생성화 사역
셋째단계는 대화가 가능한 평등 공동체의 한 모범으로서의 교회는 이제 그 관계 맺는 평등 대화법으로 세상의 모든 곳에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향해서 자원 봉사를 시작한다. 이러한 쉬임없는 교회의 복합적인 대화를 선교라 부른다. 교회 공동체가 다른 이익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생성할 수 있는 생명세포 임으로, 만일 교회가 관계 생성을 사회 속에서 하지 않으면 이익사회 뿐 만 아니라 사회 속의 관계를 필요로하는 교회도 관계의 부족으로 본래의 모양에서 파괴된 모습으로 다른 이익 사회와 같은 모습으로 잔존하던지 아니면 과거 속으로 침몰해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관계를 필요로하는 생명세포인 교회는 사회와 더불어 살아야 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는 이익사회를 가르치기 위하여 함께 살아 주어여한다. 그것이 자원봉사(VOLUNTARY SUFFERING)로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관계의 측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한 개인의 모습(INDIVIDUAL IDENTITY)도 있으나, 기초 공동체의 모습(RELATIONAL IDENTITY)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자원해서 관계를 맺으려 찾아가서 고난을 자처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아무런 관계도 이룰 수가 없으며 이것은 교회 즉 기초 공동체가 실존할 수 있는 근원을 상실하는 것이며, 더욱이 개인이 실존할 수 있는 정체성의 근원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원해서 자신을 관계를 잃어버린 비 실체인 인간을 육신으로 오셔서 인간의 육신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을 출애급시켜 관계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 하셨다. 생명 세포가 모든 몸의 부분과 호흡을 같이 할 때 온 몸은 건강한 것이다. 이것이 책임적 정체 (RESPONSIBLE IDENTITY)이다. 이로서 이익사회내에 공동체는 생성이되고 생성공동체는 끊임 없는 관계 속에 활동력을 넣기 위해서 끊임없는 변형을 해야한다.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 관계적 자아를 찾고, 모여진 자아들이 함께 살되 자원해서 빈 곳(Place), 아픈 때(Time)를 채워나가는 생명으로 생성될 때, 영원과의 관계(THE COMMUNITY OFCOMMUNION) 속에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썩어감을 방지할 수 있는 예방사역을하고 있는 것이다.
예방사역으로서 이것은 육적인 문제로, 이와같이 자신을 찾는 일에 이중문화가정 여성은 여성대로, 이민한인 사회의 일반인은 그들대로 새로운 한국인으로서의 이중문화가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은 후, 가정과 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해야되는지 더나아가서 교회 사역이 진정 무엇인지를 깨달은 후에는, 일반 사회를 향한 공동체적 사역을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새로운 인식은 더 이상 불행한 일을 방지해주며, 있다하더라도 어렵고 불행한 경우에 처한 사람을 도외시하거나 특수한 몇몇 혹은 기관의 일로 버려두지를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육신을 가지고 자원봉사(VOLUNTARY MINISTRY / SUFFERING)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우신(KENOSIS)’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인 것이다. 육신을 가지고 바치는 자원봉사는 바로 사회변형(COMMUNITY TRANSFORMATION)의 근원인 것이다.
세대간의 차이, 이중문화의 간격, 인종과 계급의 벽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 한 형제 자매로 연결되고 교제할 수 있는 신앙 공동체의 형태이며 이는 내부적인 공동체로 끝나기보다는 밖으로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로 사회와 역사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특수한 선교도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중문화가정의 여인들만의 교회는 언제가는 사라지고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이루고 또한 대 사회적 봉사도 함께 함으로 역사변형에 동반자가 되어야할 것이다. 이중문화 사역의 차원에서 이를 만들어 나가지 않는다면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고정 관념이나 민족 중심적 문화성, 개인의 고집과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한 하나님과 내 이웃이 내 몸과 같이 되는 그 크신 계명을 이루는 선교 전략을 세운다, 깊은 신앙의 뿌리가 넓게 그리고 높게 펼쳐지는 교회가 되도록 그 역할을 다하는 목회가 오늘을 사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
이와같은 사역의 세가지 형태가 이중문화 가정을 위한 목회와 그 가정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활성화 함으로써 교회 성장과 복음의 세계화에 이바지해야할 것이다.
생성 공동체는 (1) 군림하는 교회가 아닌 서로 섬기는 공동체, (2)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개방된 공동체, (3) 교육하고 참여하는 공동체, (4) 기다리는 공동체가 아니고 찾아가는 공동체, (5) 12명을 단위로한 기초공동체로 가능한 한 구성한다. 또한 이와 같은 교회생성을 향한 변형연습을 위해서 한미여성 연합 선교회에는 이중문화가정 여성과 그 가정을 위한 사업으로 (1) Prayer Line, (2) (2) Homeless Shelter – for Emergency, (3) Agape House – for Long Term Shelter, (4) Credit Union (신용협동조합), (5) News Letter – 마을신문, (6) Nursery – 탁아소와 유치원 운영, (7) Family Counseling Center, (8) Language School, (9) GED School, (10) Technology School, (11) Food Pantry, (12) Thrift-Shop, (13) Visitation for Mental Institution/Prison/Hospital, (14) 지역사회문제에 주체적 참여, (15) 자원 경찰, 자원 소방원, 자원 응급원, 학부형회, 교육위원회, 의회, 병원자원봉사, 양로원 자원봉사, 감옥 방문 및 성경공부인도 등 참여 (15) 지역사회센터운영, (16) Support Group (Network).
[주]
1. Archie Smith, Jr., The Relational Self, Ethics & Therapy from a Black Perspective. (Nashville: Abingdon, 1982), p. 13.
2. Martin Buber, trans. by Ronald Gregor Smith, I And Thou, (Edinburgh: T & T Clark, 1937), p. 18.
3. Ibid.
4. Ibid., p. 62.
5. Archie Smith, Jr., Ibid., p. 27.
6. Walter Brueggemann, Finally Comes the Poet – Daring Speech for Proclamat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9), p. 48.
7. H. Richard Niebuhr, The Responsible Self – An Essay in Christian Moral Philosophy. (San Francisco: Harper & Row, 1963) pp. 3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