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듣다 보면,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세대가 혼돈과 무질서 의 중증을 무섭게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신문(9/29/94 N.Y.Times)에 대서 특필된 글을 보니, 민중을 선도하고 보호해야 할 뉴욕의 할렘 관할 경찰서의 간부 2명과 14명의 경찰이 뇌물, 강탈, 위증죄로 무더기로 동료들의 손에 의해 구속 되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민중의 지팡이로 할렘 지역의 마약과 범죄를 소탕하기는커녕, 오히려 압수한 마약을 되팔거나 마약 딜러들로부터 뇌물을 챙기고, 때로는 협박하여 챙긴 돈으로 집을 사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동료들과 나눠갖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경찰들은 마약 거래가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는 장소에 급습했을 때 발견되는 마약과 엄청난 현금 앞에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현대의 황금이라고 불리는 마약 한 봉지 가격이 경찰의 일년 봉급에 상당하는 괴리(?) 속에 그들은 스스로 몰락의 길에 발을 내디딘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한국의 인천 북구청 세무 직원들의 세금 비리 사건과 지존파 (가진 자에 대한 중오 범죄 조직 9/21/94)라는 엽기적 살인 보도 속에, 물질만능주의의 극치를 보게 됩니다. 물질만능주의는 인명 경시풍조, 가치관 하락과 도덕성의 파멸, 의식 부재 현상을 불러옵니다. 물질을 다스려야 될 사람들이 물질에 송두리째 잡혀 먹혀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게 되어 있고 물질은 쓰임을 받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은 사랑 을 받고 사람이 물질을 위한 소비물 취급을 받게 되다 보니 사회와 나라, 그리고 역사에 암흑기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우리의 탐욕은 전염병과 같아 곧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썩을 대로 썩고 그 냄새는 사치와 향락으로 내달아 서로의 파멸을 자초합니다. 흔히 우리는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도 입고 나서려면 입을 것이 없고, 신발이 신장에 가득해도 막상 나서려면 신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기 일쑤입니다. 옛날처럼 옷이 구멍이 났다거나 신발 바닥이 떨어져 물이 새어 들어와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뒤떨어져 멀쩡한 것들을 버리게 되고, 또다시 백화점의 쇼 윈도를 기웃거리는 현대판 걸인들이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1980년대, 부인 이멜다의 걸신들린 물건 사재기는 세기에 남을 정도로 유명한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맨해튼의 메이시 백화점에 나타나는 날은 상점을 아예 닫아버리고 외부 손님을 사절한 채, 매니저와 비서진은 그녀로 부터 주문받기에 분주하였다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인 그녀만의 주문에도 백화점의 하루벌이에 넉넉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의 혈세 를 뜯어내거나,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 재산을 사유화하기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그들의 시대는 이미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명한 그녀의 3,000 켤레 이상의 신발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탐욕의 일 부로 남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몸에 침투하는 작은 병균들은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신고하지 않고 언제나 들어왔다가, 약한 저항력에 스스로 자리를 틀거나 혹은 스스로 물러나가기도 합니다. 물질로 인한 근심 걱정과 우울증, 불화는 가정과 사회에 불균형과 불안의 균을 가져다 주고 환부를 도려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중병을 앓게 하며,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 부끄러워집니다. 평소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사는 것 같은데, 한 달에 한 번씩 끊어내는 각종 청구서들을 보면 얼마나 규모없이 크레디트카드를 그어대며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 다. 미국에 살면서 늘어나는 것은 크레디트카드의 빛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하며, 어느새 나 자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탐욕의 병이 중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자가 진단을 하게 됩니다.
“장래를 위한 조심성 있는 준비는 옳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힘을 빼며, 스스로 괴롭히는 염려는 옳지 않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호수를 막고 선 거대한 댐을 오늘도 사정없이 두 드려대는 향락과 소비성 물질 문명 앞에 행여 금이 가지는 않았는가 하는 사려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천부께서 말씀하신 언약을 신뢰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방인들의 길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을 때, 이미 자신도 모르게 깊게 발이 빠지지 않았는지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며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제를 지켜주셨듯이 오늘과 미래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 니하냐”(마6 : 26).
우리 영성의 깊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삶의 단순성(Simplicity)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만이 이 혼돈의 세대에서 살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2,000년 전 푸른 갈릴리 해변가를 자유롭게 날던 그 새가,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의 가슴에도 훨훨 날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