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은 흙으로 남을지니” – 목사관 서신 (아름다움을 위하여, 첫번째 이야기, 2001), 윤 완희

올해 들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이웃들이 있어 문상을 다녀오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던 사람이 몇 시간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황당함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과 허무함은, 고통의 골짜기를 심령 깊은 곳에 파놓습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왔어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순서 없이 가는 것을 볼 때 오늘도 내 생명이 함께 함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한국에서 이웃집 할머니가 장롱 속 깊은 곳에 미리 준비해 숨겨두신 수의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저의 어머니앞 에 꺼내어 보여주시던 것을 기억합니다. 할머니는 흰색 비단 치마저 고리를 하얀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말아 장롱 깊은 곳에 다시 넣으시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나라에 갈 날을 기다린다는 말씀에 어리둥절해지며 왠지 무섭기까지 한 적이 있습 니다. 그 당시엔 영생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던 저는, 죽음 이후엔 깜 깜한 어둠만이 웅크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보니, 죽음이란 노인들만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이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며 열심히 뜨겁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순간이며, 그 순간이 올 때는 아무런 후회나 주저함 없이,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홀가분하게 홀로 떠나야 합니다.

지난 3월 7일에 90세로 타계한 안과 전문의이자 한글 기계화 운동의 기수였던 공병우 박사님의 유언을 읽으면서 그분의 홀가분한, 예수님 닮은 모습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유언에는 재산 분배에 대해서는 언급지 않고 유형 무형의 재산이 있다면, 신체 장애인들 중 특히 앞을 못보는 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위해 처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박사님은 자신의 시신을 사용 가능할 경우에 다른 환자들을 위해 장기 등을 적출해 기증할 것이며, 나머지 시신은 병리학 또는 시체 해부학 교실에서 실습용으로 이용하도록 의과대학에 제공할 것, 그렇지 못할 경우엔 화장 또는 수장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하면 최소 면적의 묘를 쓰되, 매장 시에는 새옷을 갈아입히지 말고 입은 대로 가장 값싼 널에 넣을 것이며, 친척 친지에게 부음을 1개월 후에 알리라 하셨습니다.

평생을 후회함 없이 사신 분답게, 떠나시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나 회한이 없으신 참으로 멋진 유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자손들이 그 유언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지 못해도, 그토록 떳떳하게 후 손들 앞에서 떠날 수 있음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것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삽니까? 사실 애지중지하는 책 한 권을 남을 위해 빌려주려고 했다가도 “혹시 돌려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아까워하는 마음이 먼저 앞서는 것을 종종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의 것에 대한 애착의 마음은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90년을 아끼며 돌보던 육신을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떼어 놓고 떠날 수 있으셨을까, 참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공 박사님이 평소에 자신의 사업과 육신만을 위하여 사셨다면, 그런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살아 생전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기를 애쓰며, 남을 위해 쓸 만큼 쓰시고, 자녀들에게도 할 도리를 다하신 분으로서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잔을 하나님의 제단에 한방울도 남김없이 부어드린 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 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라며 담대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상에서의 모든 생애를 인류 구원 사역에 다 쓰시고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었다!” 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것입니다.

저는 나비가 진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하늘의 신비를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땅을 기어다니는 유충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성충으로 완전 변태되어, 아름답고 반짝이는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통해, 우리 죽음의 과정과 영생의 변형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육신은 번데기와 같이 이 땅에 흙으로 남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나비와 같이 하나님의 자유의 품에서 맘껏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흙으로 먼저 돌려보낼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아픔과 고통으로 몸부림합니다.

“정말 허망한 일이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힘이 되고 안심이 되었는데 … … . 하지만 그분은 미련없는 생을 사신 분이죠!”

어느 분의 문상에서 들은 이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무료 Photo 들판 에 거대한 나무 줄기 를 가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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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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