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 – 목사관 서신 (아름다움을 위하여, 열다섯번째 이야기, 2001), 윤 완희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드는 목사관 현관 창틀에는, 얼마전 교회내 알뜰살림 가게(Thrift Shop)에서 50센트에 구입한, 사기로 만든 장식용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검은 윤기 속에 엷은 갈색이 배에 깔린 고양이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공중을 향해 두발을 들어올린 앙징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노라면 고양이의 배를 간지러주고 싶은 충동이 일곤하는 매우 친밀감이 드는 것이기에 눈에 띄는 창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무심결에 고양이를 잘못 건드려 오른쪽 귀를 깨뜨려버리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안타깝게 깨어진 사기 고양이의 귀를 만질 때 “쯧쯧쯧” 혀를 차는 Mrs. Bert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 소스라쳤습니다.

홀로 사시던 Mrs. Bert는 살아 생전에 많은 인형들과 사기로 만든 갖가지 동물들의 형상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각종 인형, 동물들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면서 추억을 하나씩 들추어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과거의 뜨락으로 초대하곤 했습니다.

첫 무도회 때의 달콤한 춤과, 처녀시절 독일에 주둔하던 미병사와의 열애와 결혼, 타계한 남편과 다녔던 여행 이야기 및 오페라 관람 등.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단지 벽에 걸린 사진들과 수집된 장식용 인형들 속에서 추억하며 살던 그녀는 오랜만에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기만 하면, 망가진 레코드처럼 피곤을 모르고 흘러간 지난 이야기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녀의 망가진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이야기는 언제나 졸음을 불러일으키기엔 적격이어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졸음을 쫓으려 안간힘을 쏟던 나는 끝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만 했습니다.

그녀와는 인사도 문앞에서 늘 30분이 걸렸습니다. 이제 50이 다 된 아들이 초등학교 때 만들어 주었다는 문에 걸린 빛바랜 꽃걸이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모자간의 정이 그리워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 속에 남모르게 쇠약해 가던 그녀는 어느 추운 겨울날, 외출하였다가 깊은 감기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다시는 두 발로 이 땅을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손에 챙기지 못한 채 그 많은 수집품들과 50여 년을 애지중지하게 문 앞에 걸어두었던 빛바랜 꽃걸이도 다 놔둔 채 빈손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후 외동 아들 스티븐은 필라델피아에서 부인과 함께 뉴욕에 올라와 모든 짐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수십 년을 애지중지하며 모아온 모든 장식용 수집품들을 하나씩 하나씩 철지난 신문지에 팔아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 교회 알뜰살림 가게에 미런없이 헌물하였습니다.

헌 옷가지와 헌 신발, 헌 잡지, 헌 가구, 낧은 폴라스틱 장신구들, 아들이 초등학교 때 만들어 주었었다는 빛바랜 꽃걸이와 독일과 미국을 오가며 띄웠던 그녀의 연애 편지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냈던 것들까지도 유품에 휩싸여 온 것이었습니다. 그녀 가이 땅에서 즐겨하며 애용하던 … … 그리고 신문지에 싸여 나오던 수집품들을 바라보며 문득 “사람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는다.” 라고 말한
16세기 영국의 성공회 주교인 제레미 테일러의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한평생의 삶에서 건져올린 것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주인을 잃은 물질들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물질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대로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 인생을 소비하고, 부자는 더 편안함과 사치를 향해 인생의 전부를 소비한다면 이처럼 잔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필라델피아에 사는 Mrs. Bert의 외아들 스티븐에게 낡은 편지묶음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먼지 속에 헐값으로 경매된 그녀의 유품들을 사람들 틈에 끼여 서너 가지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창가에 진열된 그녀의 장식품들을 바라볼 때면 그녀의 반짝이던 눈매와 금발, 뽀얀 피부가 떠오릅니다.

‘안개와 같은 내가 이 땅에서 꿈꾸고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베풀 기회에 온전히 베풀지 못하고, 사랑해야 될 순간에 제대로 사랑치 못한다면 과연 내가 이 땅에 남길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심각 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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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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