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수 있는 바람만이”
우리 집 옆 초등학교 높은 석축 아래, 탁한 물이 졸졸 흐른다— 검고 정체된 물,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스며드는 ‘현재’라는 도시 속 나의 삶.
산골 골짜기 깊은 곳, 오랜 나무와 바위가 지키는 그곳에서 작은 조약돌 위로 떨어지는 물— 그 물줄기는 갇힌 나의 자아에 속해 있다.
그래— 인간의 운명은 문득 다가오는 내면의 밤,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며 점점 더 깊어져 간다.
텔레비전, 뜨개질, 잡지, 끓는 찌개, 소문, 대량 생산된 자동차, 끝없이 회전하는 나사들, 조절된 실내 공기, 편리함을 제공하는 기계들— 인간의 거처는 넓고 거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침대 아래에는 사막의 불, 날카로운 촉들이 다가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가속되는 질주, 멈춘 자동차, 이미— 도끼날 위에 보름달의 윤곽으로 각인된 그 얼굴도 잊혀졌다.
하나의 베일 아래 있는 형상, 불완전한 아름다움— 끝없이 이어지는 아리아는 점점 더 커져 간다.
칼 마르크스의 ‘두번째 이야기’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멋진 신세계’는 사라졌고; 『구토』와 나도 사라졌다.
흔적은 없다— 그러니 당신의 시간, 당신의 무거운 생각을 묻어라, 무덤 속에!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하늘과 땅을 채우는 바람, 모두가 아는 바람이지만, 내가 숨 쉴 수 있는 오직 그 바람뿐이다.
(주: 이글은, 서울 감리교 신학 대학, 철학사 시간과 개교기념 행사, Confession of Poetry and Music,에서 첫 낭송의 영예를 얻었었다.)
[Beginning Series – Part 1]
© 윤 태헌, 9.9.19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