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번호 40” (목사관 서신, 도시에 남은 사람들, 네번째 이야기) 2001, 윤 완희

그날은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오랜만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또 하며 그녀의 손을 놓으려 할 때, 그녀의 마른 손길은 쉽게 나의 손을 놓으려 들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쇳문을 걸어 잠그는 간호원의 열쇠 꾸러미 소리가 잠시 들리자, 나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향하여 걸었습니다.

“잘 가시오! 고향에 가서 피곤한 육신일랑 편히 쉬며, 정신과 의사를 한달안에 만나도록 하셔야 됩니다.”

“아니? 왜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됩니까? 난 정신병자도 아닌데?” 이 00씨의 쌍꺼풀진 눈이 동그랗게 잠시 빛났습니다 … …

“전에 말씀하셨듯이 눈이 잘 안보인다고 했지요? 그동안 복용한 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증세가 어떤지를 이곳 병원 의사가 상세하 게 썼으니 한국에 가시거든 그것을 정신과 의사에게 꼭 보이셔야 합니다.”

“아하, 눈 때문에 그렇죠?”

그녀는 자신이 왜 석 달 동안을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우리는 석 달 동안 그녀의 인생길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녀의 길은 마른 광야였으며, 인적이 잠시 끊어진 길이었습니다.

“한국인 무숙자 여인이 경찰서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도와달라.”라는 동네 경찰의 전화를 통해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미로와 같은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찾았고, 전화로 여러 번의 통화를 하였습니다.

처음 이 00 씨를 정신병원의 면회실에서 만났을 때 그녀의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그녀는 한국에서 모 대학원까지 졸업했으며,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던 교수직에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독신의 몸으로 미국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으러 올 수 있었던 다부진 여인, 그러한 그녀가 몇 년 전에 뉴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경험이 정신병의 시초가 되지 않았는가를 추적하게 되었습니다.

“식사할 때도 어찌나 급하게 먹어야 되는지 소화가 되지 않아 가슴이 늘 답답해요. 의사에게 말해서 소화제를 얻어줘요?”

“아니? 왜 식사를 그리 급히 합니까?”

“빨리 먹고 가야 누워 있을 수 있는 의자를 차지하지요.”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 있느니, 의자에 누워서 눈감고 있는 것이 아예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종일 무슨 생각을 할까?

“한 사람당 하루에 얼마가 들어가는지 아세요? 의사, 간호원, 숙식비, 빌딩 운영비 등을 합하여 하루에 $550.00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빨리 가족을 찾아 달라는 병원측의 합당한 요구였습니다. 병원죽은 요구가 문제가 아니라, 낮이면 발광하는 여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비석처럼 누워있는 그녀가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미국의 세금제도가 새삼 고마웠습니다. 불법 체류자일지라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우선 치료부터 시켜 놓고 보니 말입니다. 그들의 박애정신이 어떻게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만난 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며 찾으시기를 원하시는지, 그 가슴을 엿보곤 가슴이 뭉 클해졌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삶의 무대에 잠시 엑스트라 역할을 했 을 뿐입니다.

한 사람의 온전한 삶의 회복을 위하여, 그녀의 언어를 대변케 하시고, 부러진 그녀의 꿈조각을 주워 모으게 하시며, 끊어진 혈육의 관계 를 다시 연결케 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그녀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를 찾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엄청난 그 사랑이 결코 무더기 사랑이 아닌, 하나하나 아주 특별한 축복 속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대론 고향에 가지 않겠노라는 여인을 설득하고, 여권을 갱신하고, 정신병자는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항공사의 직원을 설득하고, 비행기를 바꾸고 … ….

그녀가 이 땅에 마지막으로 거하고 있던 주소는 ‘빌딩 번호 40’ 이 였습니다. 빌딩 번호 40, 인간의 가장 낮고 어두운 무대의 현주소, 그 곳에는 1,500여 명의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들이 온전한 삶으로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평소에 위안받기를 즐겨하고 치료받기를 즐겨하던 내 영혼이, 조연이 되어 남을 위해 위안하고 치료해 주기란 어찌 그리 힘이 드는지 … … . 내가 갖고 있는 사랑의 샘이란 단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형편없이 말라빠지고 마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니, 이 또한 은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자의 손에 불림당함이란 참으로 신비하고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이 00 씨는 언어의 대변자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신비로운 관계를 대변해 줄, 고향의 정든 얼굴들과 그녀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는 땅으로 귀국하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겐 ‘빌딩 번호 40’의 현주소가 아직 도 남아 있으니…….

Create a photo-style image of a psychiatric building with the number "No. 40" clearly visible on its facade. The building should have a somber, institutional appearance, with muted tones and architectural details that evoke a sense of history and introspection. No text other than "No. 40" should 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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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Essay by WanHee Yoon, The People Who Remained in the City. Bookmark the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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