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이나 빨리빨리” (목사관 서신, 도시에 남은 사람들, 일곱번째 이야기) 1989, 윤 완희

우리의 특성 중에 무엇이든지 서둘러 시작하여, 급히 끝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표현한 몇 가지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에 가면 아주 유명한 식당이 있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환영 이랍니다. 이유는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식사를 끝내고 디저트가 서브되기도 전에 나가버리기 때문이죠. 외국 사람의 경우 식사하는데 보통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을 소비합니다. 우리는 식사를 즐기기보다는 배고픔을 면하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먹는 것조차도 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남아 지역에 한국인 여행객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 후, 그들이 배우는 첫 한국어가 ‘빨리빨리’ 라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호텔 종업원들의 행동이 느리거나, 주문한 바가 늦어지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나타나면 호텔 측에서 미리 ‘빨리빨리’ 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오히려 설친답니다.

식당에 가는 일을 하루 중 가장 귀하게 생각하여 정장하고 화장하고 나서는 서양인들의 풍습과 달리, “아무것이나 빨리 되는 것 주십시오. 식당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종업원을 독촉하는 우리의 조급함 사이에는 정녕 문화의 차이만으로 다루기에는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내용보다는 배고픔을 면하는 결과에 예민한 우리는 이민 생활을 하는 데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한국인 부부가 일주일 내내 밤과 낮으로 두 가지의 직업을 갖고 뛰었습니다. 이유인즉, 빨리빨리 돈을 모아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이죠. 그들 부부는 서로의 양해 아래, 자녀를 낳는 것조차도 연기(?)를 하며 사업자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소원대로 자기 사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사업을 가진 후에도 밤낮으로 전과 같은 똑같은 양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연인즉, 자기 사업을 꾸미느라 빌렸던 돈을 빨리빨리 갚아야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여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빚을 다 갚고, 집을 장만한 그들은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 줄 알았으나, 부부가 갈라서는 비극을 맞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부부 사이에 나눴어야 될 정과 사랑에 등한시했던 그들은 경제적인 목적은 달성했으나, 가정이 깨어지고 만 것 이죠. 그 부인은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온몸이 병들어 단란하고 행복해야 될 여생을 육신의 고통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차도의 스톱 사인은 어길 수 없습니다. 급하다고 그냥 달려나가면, 한두번은 운 좋게 아무런 사고가 없을지도 모르나,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하거나 교통경찰에 의하여 제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악보에 왜 쉼표가 있습니까? 쉽표가 있으므로 음악의 묘를 살리고, 그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까? 쉼표를 지키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그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숨을 혈떡이고, 도중에 그만두
어야 될 것입니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 온 길을 더듬어 내려가, 그 자리에서부 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내온 인생길은 결코 뒤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빨리빨리 서둘던 과거의 과오로 인해, 그 때, 그 자리에서 챙겼어야만 했던 인생의 보물을 잃지 않았을까요? 사람 마다 그의 인생의 목적과 뜻에 따라, 또는 환경에 따라 인생의 보화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학자의 경우는 그가 읽었던 책과 그가 저술한 책과 사상이 될 수도 있고, 사업가는 그의 기업일지도 모릅니다. 예술가는 그가 쌓아올린 예술의 어떤 경지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모든 것도 한 사람의 가치와는 바꿀 수 없다고 봅니다. 참 인간의 가치가 정당하 게 인정되고, 사랑받으며, 사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급하고 빨리빨리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싶어도, 사람이 상하거나 다치면 그 목적은 이루지 못함만 못합니다.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누구인들 빨리 가기를 원하겠습니까? 만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영지주의적 이단 경향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이겠죠.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이 오랜 길을 말을 타고 달려와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군인은 급한 김에 물을 마구 들이켜다가, 물에 체해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들은 아무리 목이 타고 갈증이 나도, 먼저 숨을 잠재우려 물그릇에 나뭇잎 몇 잎을 띄우고 불어 가며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소중하지 않다고, 쉽사리 서두른 일들로 인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곤욕을 치르게 됩니까?

사철에 변함없는 푸른 소나무가 되지 않아도, 한 계절에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한 포기의 풀도 생명의 가치는 동등한 법입니다. 어둔 밤, 둥근 보름달만이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요, 풀숲에 떠다니는 작은 반딧불일지라도 그 빛은 빛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비록 대서양을 오가며 긴 여행을 즐기는 파도가 아닐지라도, 바닷가의 작은 모래알로서 의미가 있듯,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떤 모양새든지, 어느 한 순간도 우리에게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우리들의 삶은 쉬기를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내 사업을 하면,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토요일, 업무가 없는 맨해튼의 한가한 빌딩 숲에 앉아 빗자루를 들고 땅이라도 쓸고 있어야만 마음 편한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일 중독 때문인가, 아니면 급한 소망의 서두름 때문인가요? 일, 사업, 공무, 내 집 마련, 학위, 식사, 여행, 자녀 교육 등등 천천히 하여도 삶의 흰 지면은 찰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지면은 나 혼자 ‘빨리빨리’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동반하면서 채워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빨리빨리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하여 허둥지둥 살았었습니다. 저녁 한때, 잠시 마주치는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요구하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은근히 원하였 습니다. 그러나 24시간의 계획과 꽉 짜여진 스케줄은 언제나 내게 스트레스를 갖게 하고, 짜증 속에 엉뚱한 생각까지도 들게 하였습니다. 즉, ‘자식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할까? 아니, 한 명의 자식이면 좋았을 것을, 왜 셋씩이나 낳았을까?’ 어쩌다가 시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오면 대답할 시간이 없어 귀찮은 듯이 “네, 네” 건성으로 응답하기 일쑤였습니다.

지내놓고 생각하니, 나의 모습은 마치 물이 메마른 화분 속에 시들어가는 꽃의 모양새였습니다. 인간애나 부모와 자녀간의 예의와 사랑의 풍요로움은 사라져 버리고, 바쁘고 피곤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심과 안위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만나야 되고 찾았어야만 했던, 내 삶의 기쁨들은 망각의 더미에 묻혀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비싼 게임기를 쥐어 주지 않아도 부모와 함께 신문지로 만든 종이 비행기 놀이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쁨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습니 다. ‘샤넬 넘버 파이브’ 를 내 몸에 뿌리지 않아도, 사람의 영혼에서 묻어 나오는 고귀한 향기는 이상한 마력이 있습니다.

단간방의 아파트에서 누리는 안식이나, 백만 달러짜리의 집에서 누리는 안식에 등급을 매긴다면 어느 쪽으로 그 가치의 저울이 어떻게 기울까요? 그러나 안식은 우리의 빈부적 차이로는 감히 저울질할 수 없는 것이라니, 우린들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잊지 맙시다. 아무리 ‘빨리빨리’ 갈 길이 있고, 할 일이 급해 도 “빨리 되는 음식으로 아무것이나 주세요!”라는 요구보다는, “어떤 요리가 오늘의 특식입니까?”라고 묻는 삶의 여유와 순간의 즐거움을…..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태산같이 쌓였어도, 내 자신이 결여된 ‘빨리 빨리’는 역시 실속을 놓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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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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