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아무 때나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는 일이 목사관의 임무 중의 하나입니다. 폭설이 내리는 한밤중에 길 잃은 나그네를 대접하여 잠자리를 마련해 준다든가,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음식을 챙겨 먹이는 일, 입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옷을 챙겨주는 일, 여비가 떨어져 목적지에 가는 데 문제가 생긴 이들의 여비를 마련해 주는 일 등은 목사관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별한 은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대낮에도 올 수 있고, 새벽 두세 시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꼭 도움을 받아야만 되는 사람도 있으나, 자신의 나쁜 습관 (마약, 알코올 중독, 도박 등)의 만족을 위하 여 목사관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짜증나고, 놀라기도 하였으나, 근 20여 년 동안의 목사관 생활은 언제 어느 때든지 손님 맞는 일에 이력이 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다른 곳을 헤매다가 박대받거나 나쁜 일에 이용당하지 않고 목사관을 찾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험악해져 가고 믿을 사람들이 없다고 하는 이 불신의 세대에 그래도 목사관에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그들의 경험담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귀한 선물을 남으로부터 받았을 때도 기쁘지만, 그러나 나도 부족한 가운데 있는 것 중의 하나를 전혀 낯선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을 때의 기쁨이란, 받는 기쁨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깊고 큰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문득문 득 가슴속에 되살아나 내 영혼에 보화로 남게 됩니다.
가을이 스러져 가던 어느 날 오후, 낯선 50대의 한국 남자분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첫눈에 그는 지쳐 있으며 거의 탈진 상태에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네! 오늘 아침 34개월 만에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아침 9시부터 이 시간까지 걸어서 찾아왔더니만, 2년 전에 이사갔다고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군요.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한국 애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검게 타고 눈자위로 흉터가 지나간 얼굴에는 진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를 의자에 우선 앉게 하고 부엌에 달려가 보니 다행히도 따뜻한 밥이 솥에 남아 있었습니다. 풋고추와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차리어 수북이 밥을 담아, 찬물 한 그릇과 함께 그를 대접하였습니다. 그가 누구라도 좋았습니다. 버터 섞인 빵과 기름진 음식이 제 아무리 좋아도 한 조각의 벌건 김치엔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감옥에서 시시때때로 그리며 먹고 싶어했을 밥과 김치, 고추장!
과거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도 좋았습니다. 그의 이름을 구태여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가 목사관에 찾아온 것이 고맙고 감격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차려준 그와의 만남이 눈물겨웠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가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지만 절박한 처지에 있던 그와의 만남은 참으로 귀한 것이 었습니다. 그의 과거가 어찌되었든지, 환경이 어찌되었든지, 그는 분 명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그의 발길을 이곳으로 인도하셨을까? 험상궂은 낯선 나그네 앞에서 만남의 기쁨을 누리는 나에게, 이런 기 쁨을 주시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두 눈을 감고 식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겸연쩍은 얼굴 로 과거엔 가끔 교회에도 갔었노라고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실컷 잡 수세요! 그의 밥숟갈이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두 사발의 수북한 밥을 비우고는 비로소 그는 허리를 펴고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휴! 감옥에서 김치하고 고추장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 ….”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했습니다. 서른여덟 살, 찬찬히 그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허약한 젊음이 숨쉬고 있었습니다.
“34개월 전 뉴욕의 우드 사이드의 한 식당에서 친구와 나오는데, 두 명의 남자들이 어느 여인에게 강도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서 실컷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때려눕혔지요. 나중에 경찰이 오기에, 친구는 가족이 있으니 도망가라고 했지요! 저는 폭력죄로 붙들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단 한번 찾아왔었지요. 저의 전재산인 약 만 달러의 돈도 그 친구가 맡고 있었는데……”
긴 한숨과 함께 그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산화된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그는 1980년 5월, 캘리포니아에 누나의 초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곳에서 착실하게 일하여 야채가게도 차리고 결혼도 했으나, 결혼 3개월 만에 부인과 헤어지며 가게도 남에게 넘겼습니다. 뉴욕에 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여 느 때와 같이 친구와 회포를 풀기 위해 식당에 갔다가 엉뚱한 사건에 연루되어 그는 34개월이란 세월을 철장에서 머물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한탄과 서러운 세월을 때로는 대항하여 수인들과 싸우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벌칙으로 밤새 일을 하기도 하며 정지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찾아, 거의 일곱 시간을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것 입니다.
“네 돈은 염려 마! 감옥에서 나오는 날엔 뭐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할 터이니……”
그는 친구의 이 말 한마디가 그래도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암! 사나이끼리의 우정인데… … .”
아무런 연락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친구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어디선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나 줄 것만 같았습니다. 또 그의 어깨를 감싸주며, “고마워! 내 사랑하는 친구여!” 하는 음성이 들릴 것만 같았 습니다. 34개월의 응고된 아픔도 그 한마디에 치료될 것만 같았습니다. 아픔이 거절되었을 때, 인간은 마치도 형극을 당한 것같은 또 하나의 모진 경험을 얻게 됩니다.
“그때 싸우다가 누님 전화번호와 주소가 있는 수첩을 잃어버렸어 요. 누님이 캘리포니아 코리안 타운의 중심지에서 장사를 했어요. 찾아가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오히려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염려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코리안 타운? 4월 30일에 있었던 Rodney King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미음과 원망, 인종 차별의 욕설, 불타는 상점과 집, 대답 없는 911, 장총을 들고 서 있는 한국 청년들, 여인들의 통곡소리, 잿더미 앞에 실성하여 쓰러지는 부부, 초토화된 올림픽 상점가, 총성, 성난 흑인들의 광란, 도둑질 등등.
“혹시 코리안 타운의 화재에 대하여 들으셨나요? … … 거긴 이미 잿 더미가 되어……”
가슴속에 가라앉은 앙금이 갑자기 뿌옇게 일어나며, 그의 얼굴을 차마 마주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멀찌감치 아이들이 낙엽 위에서 소리지르며 뒹구는 모습이 뿌옇게 안개가 되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누님 가게만은 괜찮을 것이라고 다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면담하고, 어떤 길이 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본인의 의사를 물었습니다. 그는 보스턴 어느 유명 음식점에 요리사로 있는 친구를 찾아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친구라면, 자신이 두 발로 사회에 설 때까지 부담 없이 돌봐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빠듯한 여비와 식사비를 손에 넣은 그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리고 해저무는 길을 총총히 떠나갔습니다.
그가 비워낸 빈 접시를 닦으며, 자꾸만 눈물이 치솟았습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붉은 빛을 드러내고 있는 노을 때문인가? 한여름의 폭풍우 비바람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그가 떠난 자리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번번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인간을 믿고 찾으며 그리워 합니다. 얼마나 많은 날들과 순간들을 낭패함 속에서 당황하였던가요?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은 은폐시키고 방랑의 길을 마다 않고 떠나는 것이 우리의 상정인가 봅니다.
우리의 진정한 친구를 어디서 만나며 찾을 수 있을지? 조나단과 다윗의 영원한 우정을 기억하며, 우리를 불러 ‘친구’라 부르신 하나님의 감히 당해낼 수 없는 그 자비와 사랑에 감격으로 목이 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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