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초가을 이른 아침. 교회의 사찰인 그는 어느 사이에 사다리를 높이 세워 놓고 교회 유리창을 닦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전체 유리창 닦기는 참으로 용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낮은 곳이야 쉽게 닦을 수 있으나, 이층의 유리를 밖에서 사다리를 기대어 놓고 올라가 닦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 일이 었습니다.
평소에는 그의 일에 대하여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나치던 나는, 은근히 염려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년 퇴직을 앞둔 그가 올 해는 많이 노쇠해 보이고, 일이 벅찬 듯이 때로는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곤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의 모습대로 쾌활하고도 밝은 모습으로 사다리를 오르려 하고 있었습니다.
“앨, 조심하셔요!”
나는 염려되는 표정으로 두 손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취해 보이며 그의 안전을 당부하였습니다.
“염려마셔요. 올해가 벌써 열일곱 번째인데, 열여섯 번째까지 지켜주신 주님께서 이번에도 지켜주심을 확신하니까요.”
그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었습니다. 그가 발길을 옮길 때마다 나무 사다리는 삐꺽삐꺽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그의 무거운 몸무게에 저항하기라도 하는 듯하였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보기보다 무섭지 않아요. 밑에 있을 때에는 내 생각 때문에 무서워했지만 올라오면 이젠 주님의 손에 모두 맡기게 되지요.”
그는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손을 뻗쳐 세상 먼지로 얼룩진 유리창을 닦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초가지붕을 고치기 위하여 사다리를 높이 세우고 올라가 일하시던 모습이 무척 신기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머리끝에 금방이라도 하얀 구름이 와 닿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시는 틈을 타서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만에 아버지가 사다리에서 내려오시면서, 밑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며 서있던 내가 믿기지 않으신 듯이 사다리 위를 절대 오르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떠나셨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에 찬 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얼른 사다리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사다리의 끝에 오르면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와 하늘의 구름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랍니까. 고무신을 신었던 나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일순간에 그만 사다리와 함께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순간의 느낌이었으나 그것은 완전한 절망이며 단절과도 같았습니다. 놀라서 달려오신 부모님과 이웃 아주머니들의 호들갑 속에서 나는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시뻘겋게 피 흐르는 깨어진 무릎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사다리 위를 올라갈 수 없으리라는 아픔이었습니다. 자라면서 그때의 아쉬움은 곧잘 꿈이 되어 나타났으며, 끝 내 오르지 못했던 사다리는 보이지 않는 상혼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 순간이 돌아온다면 정녕 차분함과 성실함, 조심성 있는 발걸 음으로 올라가, 춤추던 버들가지의 고운 손과 하얀 구름을 만져 보리라는 꿈을 지금도 가끔 갖게 됩니다.
오늘도 삶의 불확실한 사다리를 오르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성실하고 간절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 …. 꿈은 있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도, 땀난 고무신을 발에 걸치고, 조급한 소망으로 대든다면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추락에 이르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함이 있을 때, 우리의 발길이 확신과 최선의 노력을 가지고 올라가는지를 신앙의 눈으로 살펴야 될 것입니다. 과정 없는 결과는 헛된 것이요, 오늘이 무시된 내일은 정녕 허공에 대고 바람을 잡으려는 손과 같습니다. 내일은 우리가 구름을 잡고 버들가지를 부여잡더라도 오늘은 맨발이 되어 오릅시다.
초가을 푸른 아침 하늘을 담은 교회의 창문이 햇살에 반사되었습 니다. 앨, 그는 올해로 열일곱 해 유리창 닦기를 무사히 마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기뻐할 일은 그의 삶이 확신과 기쁨에 찬 영원으로서 사닥다리에 더욱더 충성되어 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