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목사관 서신, 도시에 남은 사람들, 열네번째 이야기) 1994, 윤 완희

“그녀가 폐결핵 환자였는지 아셨어요?”

소셜워커의 목소리가 당황하고 놀라운 음성으로 전화기에서 왕 왕거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도 그녀를 만난 건 처음이라고 어제 분명히 말씀 드렸지요!”

수화기에서 조금은 가라앉은 음성이 차분하게 들려왔습니다.

“글쎄요. 어제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 한국 식당에 그녀의 짐 을 맡겼다는데, 저보고 대신 맡아 달라고 하니 곧 시간을 내어 찾아 가 보겠습니다.”

소셜워커는 속히 찾아봐 달라는 당부를 몇 번씩 하고서야 안심이 된 듯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105 경찰서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약 두 주 전이었습니다. 무숙자인 한국 여인이 경찰서 주변을 떠나지 않고 빙빙 돌고 있다가 밤이면 경찰서 안의 의자에 앉아 잠을 잔 지가 사흘이나 되었다는 통보였습니다. 남편은 그녀를 면접한 후, 그녀가 건강진단과 함께 정신 치료가 필요함을 알게 되어 여인을 시립병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후 시립병원에서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고, 병원측에서는 그녀의 연고자를 찾는 데 협조해 줄 것을 부탁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신병동의 북도엔 옷차림과 머리가 산만하고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흑인, 백인 여인들이 바쁘게 왔다갔다하거나, 열심히 혼잣말을 하면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또한 병이 심한 여인들은 열쇠로 차단된 방에 갇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녀는 45세 정도로 보였고, 맑고 깨끗한 피부를 가졌으 며, 쌍꺼풀진 눈과 긴 파마 머리가 곱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면회실에서 약 15분간 대면을 하는 동안 여인은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태도를 취하다가, 불현듯 주변을 둘러본 후, 병동에 있는 못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여 경찰에 신고하였노라며 긴 한숨을 몰아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모 한국 식당에 자신의 짐 가방이 두 개가 있으니 꼭 찾아서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정신병 환자의 말을 설마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모 한국 식당에 전화를 걸자 그녀가 일러준 대로 아주머니의 가방이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큰 여행 가방은 제법 무거웠습니다. 이 여인의 배경을 알려줄 만 한 서류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그곳을 빠져 나오며, 차가 여 느 때보다도 더 털털거리는 느낌이 들어 도로가 파헤쳐진 곳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뉴욕 시의 재정 상태가 나아지면 순탄한 차도가 훤하게 깔리겠지!. 아니, 언젠가 우리 이민자들의 가슴에 한이 사라지고 아픔이 치료되고, 꿈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모두가 웃으며 말할 거야. 과거의 상하고 터진 가슴들과 그리움으로 꿰매지고 눈물로 얼룩지며, 한으로 패인 구멍난 이민의 차도를 달리던 시절이 있었음을 ….

여인의 가방을 풀면서 나의 가슴은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신성한 물건들을 만지듯 그녀의 삶의 체취가 묻어 있는 물건 하나 하나가 무수한 상념들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가방 안은 깨끗하고 질서 있게 물건들이 놓여져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속옷은 속옷대로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세탁이 되어 있고, 겨울옷과 여름옷이 분류된 채, 반듯하게 접히어 흰 비닐 에 싸여 있었습니다. 서류인 듯한 종이 뭉치가 옷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영한사전, GRE를 위한 시험문제집, 여러 장의 모 미국대학의 편지봉투와 입학 서류, 그 서류에는 1985년 2월 5일이라는 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효일이 만기된 여권이 발견되었는데, 여권 속에는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또한 몇 개의 빈 항공엽서, 잘 간직된 어느 미남자의 흑 백사진 … … 그리고, 깨끗이 보관되어 있으나 몇 년은 묵어 보이는 어버이날 축하 카드와 함께, 그 사이에 흰 종이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는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은 내게 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 시골의 저수지를 뒷배경으로 한 미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는 뒤로 빗어 쪽진 할머니 한 분이 다리 위에서 미소를 지우며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어머니! 그녀의 어머니임에 들림없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순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젊은 딸자식을 이국 땅에 보내놓고 그녀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 애통해 했을까? 또한 딸은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번뇌의 노도 속에서 어머니의 미소진 사진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용기와 힘을 얻고 꿈을 키워왔을까? 그리고 어머니라는 그 눈부신 이름 앞에 부서진 꿈을 안고 뜨거운 통곡의 밤을 얼마나 많이 지샜을까? 어머니의 이름이 하나이듯이 세상의 어머니의 가슴 또한 하나이지 않는가! 내 삶의 모든 연소와 봉헌들은 내 어머니와 나와의 두 사람의 몫인 것을 나의 하나님만은 알고 계신다고 고백한 김남조 시인의 글을 떠올리며,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올리듯 그녀의 흩어진 짐들을 다시 싸모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살아계실지 모르는 그녀의 어머니를 향해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 비로소 펜을 듭니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사랑합니다. 어머니!’ 라고 제대로 고백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내 인생에 새 삶이 시작되면, 보라는 듯이 당신 곁에 달려가리라고 생각한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어머니! 당신께 배달되지 못한 서신들, 이 봄에 훨 훨 날려보냅니다. 완결되지 못한 나의 꿈일랑은 허허로이 이 땅에 묻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기 나는 욕망들일랑은 겸허하게 벗어버리겠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내 삶의 망울들이 피기 시작하던 그 흙 냄새 서린 당신의 품으로 나는 돌아가렵니다. 어머니! 네가 도착한 종착역이 겨우 여기냐고, 결국 어머니만은 탓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나의 꼿꼿한 대변자가 되시고, 귀향길에 영접자 되시어 버선발로 맞이해 주실 어머니! 나의 부서진 꿈들을 다시 가방에 꾸립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용서하옵소서. … 불효 여식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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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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