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봉된 향수 병” (목사관 서신, 사슴처럼 뛰는 영혼들이여, 세번째 이야기) 1994, 윤 완희

캐터린 엘리어트의 간증을 읽던 중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 향수 병 이야기를 잊을 수 없어 나누고자 합니다. 캐터린이 열 살 때쯤, 할머니가 목이 긴 청자빛 예쁜 병에 든 향수를 선물로 받는 것을 보았습 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 번도 밀봉된 향수 병을 열지 않은 채 아껴 두시는 것이었습니다. 캐터린이 할머니에게 왜 선물받은 향수를 쓰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다른 향수를 다 쓸 때까지 아껴 두셨다가 나중에 쓴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향수가 필요하면 다른 것을 사다가 쓸망정 선물로 받았던 향수를 열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캐터린이 서른세 살이 되던 해에 할머니는 향수를 캐터린에게 선물로 주시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병을 열지 않고 간직해 둘 수 있나 보자.” 라고 하시곤 얼마 후에 곧 돌아가셨답니다.

캐터린은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셨던 목이 긴 청자빛 향수 병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처럼 향수 병의 밀봉을 뜯지 않은 채, 화장대에 가보처럼 올려놓았습니다. 어느 날, 향수 병의 먼지를 털기 위해 자세히 병을 들여다본 캐터린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병에는 유약 처리가 되지 않은 병 바닥을 통해 향수의 액은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증발해 버려 있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그 아름다운 향수의 향기를 즐겨보지도 못하고, 빈 껍데기 구경만 했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저는 이 간증을 읽으면서, 각자에게 담겨져 있는 삶의 향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이민 생활에 분주하고 힘든 하루를 보낼지라도 우리 속에 가득 찬 고귀한 영혼의 향내는, 인종과 문화를 넘어 얼마 든지 발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신 속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빠져나가는 생명의 한계 속에서 살게 됩니다. 마치 가을의 문턱에서, 하나둘씩 떨어져 버리는 나뭇잎들의 몸부림처럼 우리들의 시간의 굴레도 그렇게 조금씩 영 원을 향하여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한 내일이 우리 안에 약속된 것 마냥 각 사람의 인격 속에 들어있는 밀봉된 삶의 향수를 열기를 주저합니다. 결국 쓰지 않고 아껴 두다 보면, 언제 모두 증발해 버렸는지조차 모르게 우리 삶은 더이상 향기를 발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기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도 때로는 얼마든지 자신의 향기를 발하며 살 수 있는 것들을 지나치게 자제하거나 아끼거나, 때로는 자존심으로 그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때가 너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한다’ ‘감사한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다’ 등 의 말이 그것입니다. 이 언어는 아무리 남발하여도 지나침이 없고, 천하지 않고 무례함이 없는 말들입니다.

또한 삶의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것 중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어떤 재능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있는 귀한 선물입니다. 이 재능들을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놓기를 두려워 해선 안됩니다. 아무리 사람이 인정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쓰여 지길 소홀히 한다면, 영원히 증발해 버리고 마는 것들입니다. 필요한 이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사용하고 나눠줌으로 인해 그 가치가 더 보배롭게 인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나친 조심성과 소극적인 태도는 밀봉된 자신의 삶을 열어 놓는 일을 주저케 만듭니다. 향수의 밀봉된 뚜껑은 열려야만 그 가치가 인정됩니다.

그 옛날 옛적, 다함이 없는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받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위하여 옥합을 깨뜨렸던 그 향기가 가을 바람, 코스모스의 흔들림 속에 더욱 짙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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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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