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위에 떠가는 시간”

© 윤 태헌, 1979 그리고 2025

(존재로 깨어나는 노래)

태양이 다시 솟는다 —
약속으로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다는 증거로.

그 빛은 사막을 불태우며
존재를 드러내는 모든 그림자의
이름을 부른다.

인간은 먼지와 영원의 사이에 선다.
정복이 아니라, 깨어 있음이
그에게 맡겨진 과업이다.

너무 크게 뛰는 심장의 맥박 —
그것이 곧 짐이며, 동시에 은총이다.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돌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 침묵 사이를 걷는다.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배우며.

여행자여, 슬퍼하지 마라.
모래를 치는 채찍조차
새로운 형상을 빚는 손이 된다.

고통 또한
하나의 탄생이다.

세상은 우리를 위해 돌지 않는다.
그러나 숨 쉬는 우리는,
그 속에서 스스로 돌 수 있다 —

시간처럼,
강 위를 흘러가며,
떠나되, 절망하지 않으며.

모든 썩은 나무 아래에는
또 다른 뿌리가 꿈을 꾼다.
뱀의 울음 끝에서도
새로운 숨결이 시작된다.

나는 존재하려는 의지 외엔
무기를 가지지 않았다.
사랑 외에는
방패도 없다.

광막하고 잔혹한 사막이
내가 그것을 “집”이라 부르는 순간,
부드러워진다.

굶주림, 두려움, 불의, 냉기의 문들이
여전히 새벽을 맞서지만 —
인간의 심장은, 부조리 속에서도 반항하며
모래 속에서 희망을 빚어낸다.

내 손을 잡고 걸어라.
뒤돌아보지 마라 —

세상은 여전히
듣지 못한 척하겠지만,
우리는 안다.

존재 그 자체가
노래함을.

나는 네 생각 사이에 숨 쉬는 바람이요,
네 선택의 메아리다.

일어나라 —
그리고
빛이 충분하다고 믿으며 살아라.

  • 작가의 말

나는 오랜 침묵의 계절을 지나 이 시를 썼다.
각 행은 느리고 불확실했지만,
‘살아 있음’의 의미를 향한 한 걸음이었다.

시간의 강은 모든 생명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각 영혼은 스스로 깨어날 것인지, 떠내려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시는 그 깨어남을 향한다.
평화를 약속하지는 않지만, ‘존재의 현존’을 전한다.
정답이 아니라, ‘의식’의 빛을 찾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일이다.

이 시집은 「강물 위에 떠가는 시간」으로부터 시작되어,
존재의 어둠을 통과하며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빛나는 희망—
‘존재 그 자체가 거룩함’임을 향해 나아간다.

– 성찰
나는 오랜 침묵의 계절을 지나 이 시를 썼다.
각 행은 느리고 불확실했지만,
‘살아 있음’의 의미를 향한 한 걸음이었다.

시간의 강은 모든 생명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각 영혼은 스스로 깨어날 것인지, 떠내려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시는 그 깨어남을 향한다.
평화를 약속하지는 않지만, ‘존재의 현존’을 전한다.
정답이 아니라, ‘의식’의 빛을 찾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서 “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일이다.

이 시집은 「시간이 강 위를 떠도네」로부터 시작되어,
존재의 어둠을 통과하며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빛나는 희망—
‘존재 그 자체가 거룩함’임을 향해 나아간다.

– 묵상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막을 건너야 한다.
그곳은 상실과 고독의 자리이지만,
동시에 깨어남의 자리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막에서,
절망의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을 보았다.
고통을 벗어나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숨 쉬는 희망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스러지지만,
그 모래바람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배운다.

이 시를,
자신의 바람과 싸우며 하루를 버티는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비록 우리는 모래알만큼 작고 덧없지만,
그 안에도 여전히 생의 의미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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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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