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부산·마산의 기억 – 고 최성묵 목사님과 고 김광일 변호사님께)
우리는 함께 걸었다,
작고 조용한 근심 하나로 묶인 채.
눈앞에는 분필빛 하얀 길이
고요히,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펼쳐져 있었다.
세상은 길을 잃었고,
지금도 여전히 떠돌고 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말했지—
“너무 깊이 마시는 자는
사랑이 사라진 새벽에 깨어나리라.
그의 심장은 흉하게 일그러지고,
그의 영혼은 벌거벗어,
숨은 저주처럼 무거우리라.”
오, 잊힌 머리여,
이름 없이 굴러가던 고개여.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책 냄새 가득하던 보수동 그 골목을.
최성묵 목사님의 손엔
세상이 피했던 진리의 꿈이 쥐어져 있었고,
김강일 변호사의 눈빛엔
불처럼 뜨거운 희망이 타올랐다.
그들은 책 위에 책을 쌓으며 믿었다—
사유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믿음이 다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문 너머엔 황량한 벌판이 있었다.
풀도, 꽃도, 소리도 없었다.
오직 자갈과 재,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기둥들만 남아 있었다.
공기는 무겁고,
썩은 개의 냄새로 짙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가느다란 세계의 실은
떨리고 있었다— 겨우 살아 있는 듯.
그러나 그 연기 속에서도
한 장의 종이는 조용히 넘겨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낮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꺼지지 않는 약속이었다.
이곳을 떠나라.
바람이 말한다, “머물지 마라.”
그러나 내 가슴 한켠엔
그 잃어버린 하루의 빛이 아직 남아 있다.
– 작가의 말
이 시는 1979년 부산과 마산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해의 바람은 검고 무거웠고,
거리마다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한가운데에서도
책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붙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양서협동조합을 세웠던
고 최성묵 목사님과 고 김광일 변호사님은
단지 책을 파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과 진실을 나누는 예언자들이었고,
시대의 침묵 속에서 깨어 있던 영혼들이었습니다.
이 시의 흰 길,
그 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은
결코 과거로만 남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은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하루의 빛처럼,
다시 우리를 일으키는 희미한 불꽃으로.
부산의 하늘 아래,
책 냄새와 비 냄새가 섞인 그 골목에서
나는 사람의 양심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연약한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쓴 이유입니다.
© 윤 태헌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