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선택” (목사관 신앙칼럼 #7, LA 크리스찬 투데이, 11/18/2009) © 윤 완희 사모

지난 몇 주 전에 교인 중의 한 분인 케이티 부로일스 할머니의 100세 생신 잔치가 교회에서 있었다. 18세 되던 해에 교사가 되어, 47년간을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케이티 할머니는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일상의 삶을 잘 유지하고 계신다.

할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남편을 사별하시고, 슬하에 자녀 없이 평생을 사셨다. 그녀는 뛰어난 유머 감각 속에 언제나 밝고 명랑하며, 곁에 만 있어도 마음이 왠지 즐겁고 풍요로워진다.

나는 언젠가 어김없이 찾아드는 노년을 맞이하며 “내가 육십이 되는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뻐져야지!”라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케이티 할머니를 만난 이후로 “내가 백세가 되는 때에는 누구보다도 예뻐질꺼야!”라고 수정케 되었다.

인간의 생명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겠다. 어떤 이는 세상에 잠시 다녀가는가 하면, 누구는 건강한 몸과 영혼으로 일세기를 넉넉히 살아가고 있다.

케이티 할머니가 태어나셨던 100년 전 미국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100년 전 인간의 수명은 평균 47세였다. 14%의 미국인만이 집안에 욕조가 있었고 8%만이 전화가 있었다. 자동차는 겨우 8,000여대가 있었으며, 포장도로는 144마일이 전부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파리의 에펠탑이었고, 시간당 평균 임금은 22센트였다. 또한 90%의 의사들이 대학 교육 없이 환자를 진료했고 여성과 유색인종의 참정권은 물론이요, 어느 요직에도 그들은 감히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러면, 한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시작되면서, 한국은 나라의 주권을 잃었고, 중국의 하르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총독부 대신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건이 있었다. 백성들은 굶주리며 불안 속에 살아갔다.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온통 경제불황으로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마치도 천국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좋은 환경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과거의 두배에 거의 육박하며, 사회 의료 보장 제도와, 개인의 주권과 환경, 정치적인 안정 속에 살아 가고 있다.

그러면, 오늘 내가 느끼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의 풍요는 얼마나 되고 있을까? “인간의 풍요는 신뢰와 믿음의 상태에서 온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전혀 느끼지 못하고, 누리고 살지 못한다면, 백여년간의 정의로운 사회와 인류 평화를 위해 싸워온 선조들의 투쟁과 발전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의 시점에서도 하나님의 현존아래 나는 살아가고 있다 는 사실만으로 나는 복된 자이며, 풍요를 만끽하며 살아야만 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케이티 할머니의 생신 파티엔 이미 사회에서 은퇴한 고희의 제자들과 가족들이 참석하여 장수를 축하했으며, 손님들의 웃음꽃은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익어갔다. 그리고, 어느듯 아쉬운 파티가 종료되자, 오늘도 하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흡어져 돌아가는 아이들과 작별이라도 하듯이 손을 흔들던 케이티 할머니가 의아한 얼굴로 말끝을 이었다.

“… 제자들을 만나봐서 반갑고 좋았는데 … … 그 애들이 언제 저렇게 늙어버렸지 …?” 어눌한 걸음걸이의 어느 노인의 뒷모습에 그녀의 눈길은 한동안 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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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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