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신체에 대한 자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지금까지는 두 말 할것 없이 치아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치아는 그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튼튼하여 칫과 의사들에게도 종종 칭찬을 듣곤하였다. 언젠가 어느 치과 의사의 칼럼을 읽다보니, 건강한 치아 하나가 갖고있는 경제 적인 가치는 3000천만원 이상이라고 하였다. 사랑니를 뺀 나머지 28개의 치아를 곱한다면 서울의 아파트 한 두 채를 살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내 입안에 들어있다니, 생각만 하여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치아를 꼼꼼이 닦는 것은 기본이요, 음식을 먹은 후에는 치실을 사용하고, 육개월 마다 있는 정기적인 치과 방문을 통해 치아를 잘 관리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반대로 치아가 약한 남편은 음식을 들 때 부드럽고 물렁한 것을 선호하며,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들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뿐 만이 아니라 찬 물이나 찬 음식 여름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과일조차도 치아 가 시려서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치아가 약하다라는 단어자체가 내겐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남편 곁에서 나는 가끔 ‘우두둑’ 거리며 얼음을 깨물어 먹거나, 신 과일, 찬 음식들의 맛을 거침없이 즐기며 치아의 튼튼함을 뽐내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 달 정기적인 치과 방문 때, 나의 이런 평생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평소처럼 여기저기를 살피던 의사가 몇년 전에 뽑아낸 사랑니 잇몸 자리에 작은 포켓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면서 치주염(Periodontal Disease) 전문의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치통에 대해 주변인으로 부터 그 아픔이 어떤 것인가를 귀동냥으로 알고 있던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한번도 아픔이나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항의를 하니, 치주염은 초기엔 전혀 아픔없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두면 치조골까지 세균에 의해 삭아내려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치아가 뚝 떨어져나간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가치가 3000만원이 넘는다는 내 치아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니! 정말 도저히 있을수 없는 말에 당황해 하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치아는 한번 망가지면 자연치유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나마 초기에 발견되었음을 다행이라고 위로하였지만 나는 심리적 충격을 한동안 가다듬어야 만 했었다.
세상살이에 그토록 뽐내고 살다가 어느날 갑짜기 ‘뽐냄’이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 – 그것도 전혀 아픔이나 경고없이도 찾아 올 수 있는 일들은 어디 치아질환 뿐이겠는가. 어느날 문득 찾아온 각종 사고들, 이혼, 파산, 병, 낯선이들과 지어온 관계라는 기둥과 석가래의 무너짐,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까지도 우리 살아 생전에 맛보야 만 되고 치뤄야 만 될 통증들이 아닐 수 없다.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건강하다고, 명예가 있다고 자랑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요즈음 다시 자각 할 수 밖에 없었다.
잇몸 수술한 날, 겨우 스프 한그릇 마시고 침대에 몸져 누워있다가 치통 속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머리맡에 갔다 둔 노란장미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장미는 섬광처럼 불을 밝히며 내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들에게는 아무 것도 자랑 할 만한 것이 없는 오직, 서로의 약함을 함께 할때 우리의 삶은 더욱 더 빛나고 향기로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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