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생일이 가까워지면, 내 속에 잠자고 있던 거친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깨어난다. 생일을 핑계로 평소에 해보고 싶던 일들을 하게 되는데, 언젠가는 번지점프라는 것을 계획했다가 5:1이라는 가족들의 결사반대로 그 뜻을 결국 이룰 수 없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해 생일이 다가올 때에는 문뜩 ‘나도 하늘을 새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한 동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볼 수 있을까 라는 몽상 속에 사로 잡혀있게 되었다. 그런 나의 소원을 눈치 챈 둘째 딸, 세림이가, 생일 선물로 열기구(Hot Air Balloon) 축제에 승선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였다.
한여름 이른 아침에, 난생처음으로 딸과 둘이서 열기구의 바구니 안에 몸을 싣는 일은 여간 흥분 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배타랑 조종사인 용키씨의 숙련된 진두지휘 아래서, 풀 밭에 펼쳐져 있던 오색깔의 구피 속에 더운 공기가 들어가자, 생명체가 되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물체는 버너에서 내뿜는 강한 가스 불꽃과 함께 풍선처럼 사뿐히 하늘로 떠 오르기 시작하였다. 점점 멀어져가는 땅을 바라보며 하늘에 오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공포에 가까워졌다. 바구니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온 몸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기 속에 맡기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대기 속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평온 그 자체였다. 조금 전까지도 하늘로 올라가는 수십 대의 열기구를 바라보며 환호했던 군중들은 어느새 흩어져 가버리고 마을은 일상의 아침으로 어느덧 되돌아가 있었다. 멀리 하늘 저끝을 바라보니 우리가 탄 열기구보다 먼저 출발한 형형색깔의 아름다운 열기구들이 스모키 마운틴 줄기를 따라 구름사이로 둥둥 떠가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또한 여기 저기 산비탈마다 방목되어 있는 소들과, 열기구의 그림자에 놀라 도망치는 야생마들과, 반짝이는 산정호수, 금방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숲의 장엄한 행열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과 호수사이를 누리고 있는 구름띠들의 신비로운 꿈틀거림, 바람 속에 밀려오는 평화의 숨길은 대지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눈과 손, 가슴으로 만지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즐거움과 평온 속에서 조종사인 용키씨는 버너에 불을 더 올리거나, 아래의 보조원들과 한시도 쉬임없 이, 워키토키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재의 바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어느 지점을 착륙장소로 포착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차를 몰고 오라는 지시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조원 차량 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경찰차들도 비상이 걸린채, 열기구를 부지런히 따라오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열기구의 조종사가 없었다면 나의 이런 체험은 불가능한 사실조차도 잠시 잊었던 것이다.
생일이 올때마다 “삼각형의 각의 합이 얼마인지 알고, 지도의 위도와 경도가 얼마인지 안다는 것만으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반문했던 생텍쥐페리의 영혼의 고민이 나를 엄습한다. 연륜은 쌓여가고 인생의 착륙지점은 가까워지는데, 나는 이 순간 얼마나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지. 내 속에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사랑을 얼마나 만끽하고 있는지. 내 삶의 완벽한 조종사인 주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의지하는지. 열기구의 승선 경험은, 나로 하여금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하는 귀한 생일 선물이었다.
© 윤 완희
(목사관 신앙칼럼 #16, LA 크리스찬 투데이, 8/1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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