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죽음의 기억들”

인간에게 슬픔과 죽음은 피 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며 동반자이다.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했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혼이나, 헤어짐, 예상치 않은 죽음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의 죽음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으로 헤어짐에서 오는 마음의 찢겨짐은, 고통의 터널 속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해 긴 세월을 여과시켜야 만이 우리는 그 죽은 한 부분을 딛고 다시 일어 설 수가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 속에, ‘나’라는 존재가 결국 ‘나’혼자가 아니었음을 인정케 되고 만다. 그가 있었음으로 어제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고, 오늘의 내가 설 수 있음이다. 슬픔과 죽음의 경험은 사람에 따라, 시간을 두고 서서히 경험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요즈음 같이 수천 명이 갑자기 당한 죽음의 경험은 인간의 감정을 마비시킬 정도로 엄청난 슬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사람들은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그 슬픔을 혼자 이기질 못해, 밤이면 거리마다 촛불을 켠 채 서서 자신의 슬픔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이 슬픔은 육신적으로 알 수 없는 감기 몸살, 우울증, 무기력증에 빠져들게 하여, 건강한 사람들의 삶에 정상적인 리듬을 쉽게 되찾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픔은 살아있는 자에게 언젠가 떠나 보내야 만 될 매듭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보다 앞서 죽음의 강을 건너간 이들은 육신은 만날 수 없어도,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채, 내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나’의 삶에 무언의 영향을 주면서 ‘나’의 기억 속에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열두살 때 잃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그토록 효녀라고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던 내가, 돌아가신 후엔 수 십 년간을 아버지를 아예 생각지 않고 살아왔었다. 차라리 잊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데,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아 버지 앞에 긴 편지를 쓰고 말았다. 아버지를 그 동안 잊고 살아왔음에 대한 사죄와 함께, 아버지의 등에 업혀 하늘의 별들을 세던 기억들과, 아버지가 나의 이빨을 몰인정하게 빼내던 날들의 섭섭함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르덴 바지를 어느 고아 소년에게 내어 주시던 날에 내가 얼마나 속상했었는지를,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졌던 황당함과 왠지 모를 배신감 마저도 다 고백하였다.

그리고 나는 30여 년동안 세월의 카페트 밑에 숨겨 두었던 슬픔의 감정들을 아버지께 내어놓고, 아이처럼 마음껏 울먹이며, 비로소 아버지께 작별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지내놓고 생각해 보니, 왜 진작 그 분을 떠나 보내질 못하였던가 라는 후회도 있었다. 왜냐면, 내가 슬픔의 감정으로부터 헤어 나오게 되니, 그 분은 오히려 더 자유스럽게 내 기억 속에 드나 드시며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다정하게 다가오시고 계겼다.

헨리 나우엔은 “슬픔은 우리의 친숙한 부분이 되었던 사람들이 천천히 고통스럽게 우리를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일년 내지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온전한 마음의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으며, 비로소 슬픔의 고통도 줄어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떠나 보낼 때, 비로소 그들은 우리의 멤버(member)가 되며, 우리가 그들을 기억(remember)할 때 그들은 우의 영적 여행의 안내자가 됩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세상의 전쟁과 세계무역센타의 테러를 통해, 집단적 죽음을 체험하였다. 이번 참사로 희생이 된 사람들이나, 속수무책 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들은 인간의 한계와 슬픔, 죽음의 고통 앞에 어느 때보다도 깊은 절망과 상처를 받아야만 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슬픔과 죽음의 고통은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슬픔과 원망에 만 초점을 둔다면, 우리는 우울증에 빠져 헤여나올 수 없게 되거나, 더욱 오랜 시간 슬픔 속에 갖혀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 삶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무엇이 먼저 해야 될 중요한 일인지를 현실로 받아들일 때, 우리 모두에게 삶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건강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제 무고한 희생자들은 우리 삶의 안내자가 되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선택하며 하루하루를 더욱 더 진하고 아름답게 살라며 초대하고 있다.

© 윤 완희

(목사관 신앙칼럼 #19, LA 크리스찬 투데이, 10/3/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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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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