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태헌, 1991년 11월
우리는 지금 감사의 계절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전환점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치료받은 열명의 문둥병 환자 중, 어떤 일인지는 모르나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감사를 드린, 그 중 한명의 치료받은 문둥이 형제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문둥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읍니다.
사마리아인은 크거나 깊은 믿음으로 인생을 시작한 것은 아니였읍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외인지역에 들어가 유대인 문둥이들 무리에 끼어서 치료를 받은 후, 상실 당했던 시민권의 회복을 위해서 유대인 제사장에게 회복된 몸을 보이기로 작정하고 다른 9명의 유대인 문둥이들과 합세를 했읍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일이였읍니다. 제사장을 만난 후, 시민권이 회복된 그들은 총총 걸음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삶의 길로 재촉하며 떠나 갔읍니다.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를 고쳐주신 분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감사드리기로 작정하고 되돌아 왔읍니다. 감사가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감사라는 음식을 먹으면서 양육되고 생존합니다. 감사한 마음과 어느 분께 감사드릴 지를 아는 것이 바로 구원의 첩경인 것입니다. 주님은 일어나 가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기독교 경건생활의 중심일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신앙대로 살아가도록 강력하게 충동을 줍니다. 그러한 감사를 통해서 나에게 지금까지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읍니다. 따라서 감사는 바로 천국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음의 태도와 행동의 행태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잠언에 기록된 랍비들의 말, “자선금을 주라, 주되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을 인용하고 있읍니다. “즐거운”은 희랍어 “힐라론[ἱλαρὸν]”으로 이것은 단순히 “즐거운”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힐라론”은 영어의 “hilarious”(들뜬, 명랑한)의 어원으로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희랍어 “스쿠스로포즈[σκυθρωπός]”(슬프고, 우울하고, 찌프린 얼굴)은 “필요성을 모르거나” “주저하며 주는 자”에게 사용되였고, “즐거움으로 주는 자”에 반대로 쓰여졌읍니다. 따라서 옛 믿음의 선조들은 확신하며 말하기를, “주며 즐거워하는 용모는 기뻐하는 심령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며 즐거워함은 관용의 내적 자유에 속해 있다;”라고 했읍니다. (신약신학사전, III, pp. 298-300)
“하나님은 ‘즐겁게 주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은 보상을 암시하고 있읍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저울의 평형 원리에 의하여, 보내진 현금이 마치도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보았읍니다. 일종의 원형운동으로 이해하며 설명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받은 바 은혜가 충족함; 지극한 은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 (Self-Sufficiency)” 라는 믿음을, 담대하게 고백 <고후 9:8,14-15>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하심이라”<고후 9:8>고 사도 바울은 청지기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읍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항상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는 관용하게 됨의 은혜를 이미 충만히 받았고, 주기를 원하는 의지가운데,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가 모르는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게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기쁘고 복된 감사절이 되시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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