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완희, (신앙칼럼, #22, LA 크리스찬 투데이, 2007년 3월 7일)
교인 가정 중에 천사박물관이라고 칭할 정도의 온갖 모양의 천사를 수집해 놓은 가정이 있다. 천사 의 모양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면 찬양하는 천사, 춤을 추는 천사, 기도하는 천사, 길을 안내하는 천사, 수호천사, 평화를 선포하는 천사, 꽃의 천사 등. 미전역과 각 나라 여행 때마다 구해온 천사들은 모양과 크기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가 신비스러울 정도의 극치의 아름다움을 표 현한 채, 그 가정의 빈 공간이란 공간은 조형의 천사들 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에게는 신디라는 무남독녀가 있었다. 태어날 때, 여러가지 장애를 복합적으로 안고 태어났던 신디는 이 땅에 살아간 동안 한 번도 인간으로써 독립된 삶을 영위해보지 못했었다. 신디는 평생을 병원과 보호소 등을 전전하며 살아갔었다. 부부는 그녀를 “특별한 천사 (Special Angel)’라고 부르며, 온갖 극진한 정성과 사랑을 다해 돌보았지만, 40세가 되던 해에 신디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신디가 떠난 이후, 그들 부부는 천사 수집에 온갖 정열을 다하며 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천사라 하면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특별한 그림 한폭이 있다. 그것은 주일학교시절에 교회 교육관에 걸려있던 천사 그림인데, 길을 잃은 어린자매가 산중에서 시냇 물을 막 건너려하는 장면이다. 물살이 급해보이는 시냇 물 앞에서 두려워 어쩔줄 모르는 아이들 뒤에는, 날개를 크게 단 아름다운 천사가 서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장면이었다. 어린 나의 무의식 세계에서도 천사는 언제나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곁에 늘 있어주었다.
그러나, 천사들 중에는 우리의 상상력과는 전혀 들어 맞지 않는 천사들이 있다. 그 천사들은 신체 부자유자로, 정신 박약아로, 때로는 사회의 밑바닥의 인생으로, 상처 투성이의 인생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다. 이 천사들이 겪는 질고와 가난은 큰 부담과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네들은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은밀한 친교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 이런 천사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들의 사명은 단연코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그들의 무기력과 불균형을 통해, 우리의 영혼은 긍률함과 사랑을 배우고, 그들의 완치되지 못하는 아픔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인정케한다. 저들이 숨 쉴때마다 겪는 고통 속에서, 당연히 누리었던 우리의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은총의 선물인지를 발견케 한다.
그러나, 천사는 또한 우리 속에도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양로원을 방문하거나, 불현 듯 잊었던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을 때, 낯선 이들에게 친근한 미소를 보내 줄때,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카드 한 장 보낼 때, 무관심 하던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질 때, 남의 재능을 발견해 주고 인정해 줄때,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하루의 일을 사명으로 알고 묵묵히 살아가는 순간 부터 우리는 어느듯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자신이 천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로 인해 세상은 더욱더 아름답고 살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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