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하던 날” © 윤 완희, (신앙칼럼, #24, LA 크리스찬 투데이, 2013년 5월 8일)

나는 거의 평생을 남편의 머리를 다듬어 주며 살아왔다. 특별히 주일이 가까워지는 주말이면, 남편의 머리를 늘 살피는 편이다.

결혼 초에 다짜고짜, 뒷머리를 다듬어 달라는 남편의 부탁에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던 일이 엊그제 같았건만, 이제는 오히려 내가 먼저 머리를 다듬자고 할 때가 많아졌다. 젊은 시절엔, 유난히도 많았던 남편의 뒷머리는, 어느새 살아간 세월만큼 다 빠져버리고, 백발의 엉성한 머리 숱만 남아있다. 이런 남편의 뒷머리를 대할 때마다 짠한 마음 속에 세월을 느끼게 된다.

며칠 전에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동안 벼르고 벼르던 남편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엔 왠지 손에 잡힌 손질기계가 예전과 달리 좀 둔하게 느껴지며 머리 스타일이 영 제대로 나와주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내 딴에는 조심을 하면서 손질기계로 귀옆을 살짝 다듬는 찰나 동전 두배 크기의 흠집을 순식간에 만들고 말았다. 나는 입 밖으로 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속으로 삼키다가, 그 옆에 또 하나의 동전 모양을 만들고 말았다. 몸에서 점점 식은 땀이 나며 삼십년이 넘는 이발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결국 남편의 허연 뒷머리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네 개의 흠집을 만들고 만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보! 큰일났어요! 오늘 당신 머리 완전히 망쳤어요!” 영문도 모르고, 앞거울 만 바라보던 남편이 유순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니야! 잘 됐어! 잘 됐는데 왜?” 머리가 짧아져서 기분이 한결 좋아보이는 남편은 뒷머리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조차 못 챈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 뒷머리에… 울상이 되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남편은 말하였다. “내가 좋다는데! 당신이 시간을 내어 내 머리를 손질해주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모양이 뭐가 중요해? 당신은 언제나 최고의 이발사야!” 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관 않겠다는 표정 앞에 그날 아침의 나의 임무는 완성되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히 교회에 가면 교인 중에 가장 눈설미가 예민한 ‘넬리’가 한마디 던질 것을 생각하며 나 혼자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세상에선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실수와 잘못들이 부부 사 이에선 늘상 서로 용납이 되고, 사랑으로 용서되는 일은 언 제나 신비스럽다. 아내의 실수, 남편의 잘못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몸으로 함께 모두 감당해 나갈 때 나오는 힘과 지혜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함을 종종 경험케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는 두개의 심장이 결국 한개의 심장으로 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의 배우자는 살아 숨쉬 는 영원히 읽혀질 책과 같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꿈과 소망, 숨은 재주와 능력들이 숨겨진 보석들처럼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세상에 들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 속에 있습니다” <From Living the Dare>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이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이발하던 날, “당신은 세상에서 최고의 이발사야!”라는 위로와 격려가 어느 때보다도 고맙게 여겨졌다. 그리고 평생을 철부지 아내를 향한 꿈과 소망을 멈추지 않는 남편의 선택에 새삼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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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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