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태헌
가장 혹독했던 겨울—
1·4 후퇴*의 그 겨울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서도
한 살배기 아이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살아남았다.
은혜 위에 은혜라.
그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폭탄의 굉음,
흔들리는 땅—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두려움의 방.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
이것 또한 은혜 위에 은혜라.
서울이 다시 수복된 뒤,
부서진 집들을 치우던 때에
그 아이에게 남은 유일한 기억은
오른발 바닥 깊숙이 박힌
대못 하나였다.
피가 흐르는 건 보았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파상풍 예방주사도 없이,
어머니가 된장을 정성스레 발라주고
상처는 아물었다.
은혜 위에 은혜라.
마흔 살에 이르러
아래 치아가 모두 썩어갔을 때,
마음 좋은 교인 치과 의사가
하나씩 메워주며 하루 하루를 돌려주었다.
은혜 위에 은혜라.
뉴욕에서 20여 년 목회를 하던 중,
1999년 10월 11일,
처음으로 심장의 리듬이 흔들렸다.
좌심실 비대—
80%의 위험.
걱정과 불안이
몸을 갉아먹은 탓이었다.
그럼에도 살아 있었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
그리고 다시 26년이 흐른 지금,
남쪽 테네시에
은퇴 후의 고요한 삶을 살며
흙과 나무,
풀벌레와 여러 새들과
대화를 나누는 하루하루가
곧 치유가 되었다.
몸은 더 젊어지고
건강은 봄처럼 되살아난다.
은혜 위에 은혜라.
* “1·4 후퇴”는 1951년 1월 초, 한국전쟁 중 중국군의 대공세에 따라 유엔군과 한국군이 서울에서 대규모로 철수한 사건을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전쟁 중 두 번째로 공산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철수는 유엔군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후 병력을 재편성하여 1951년 3월 ‘리퍼 작전’을 통해 서울을 다시 탈환하게 되었습니다. 민간인 영향: 이 후퇴는 대규모 난민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혹한 속에 남쪽으로 피난했으며, 대부분은 도보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인의 기억 속에 깊은 슬픔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은혜 중에 은혜”에 등장하는 한 살배기 아이처럼 혹독한 여정을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후기:
이 글은 삶의 결을 스치고 지나간 기억의 바람 속에서, 꽃잎 떨어지듯 하나둘 모여 만들어졌습니다. 한 줄, 한 문장마다 오랜 밤을 지나오며 품었던 작은 불씨들을 담았고, 그 불씨가 또 다른 이의 마음 어둠을 비출 수 있기를 바라며 이곳에 내려놓습니다.
한국에서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한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이라 말하곤 합니다. 나 또한 그 우물에서 길었습니다. 세월 속에 익어가는 그리움, 그림자와 빛을 함께 남기고 떠나는 사랑, 세상보다 먼저 깨어나는 새벽에 속삭인 기도들—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이 글들은 그 순간들의 향기를 고요히 우려낸 것입니다.
만약 이 글들이 당신 마음 깊은 구석을 살짝이라도 건드릴 수 있다면—첫눈이 고요한 마을 위로 내려앉을 때처럼, 해질 녘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처럼—이 여정은 이미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이 글이 삶의 저녁 들판을 걸어가는 당신에게 작은 등불 하나가 되기를, 길과 기억과 쉼을 찾는 이들에게 따스한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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