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거리는
바다 건너도, 산을 넘어도 아니요—
머리와 가슴 사이,
생각과 뜻 사이,
작은 두개골의 방과
그 너머의 세계 사이에 있다.
그 간극에 서서
그 미묘한 당김을 느끼는 것—
이미 그것이 은총이다.
숲속에서는, 아무 눈길도 닿지 않는 곳에서
풀과 나무와 작은 벌레들이
저마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쓰러진 나무는
기도가 하나님께 되돌아가듯
조용히 흙으로 돌아간다.
그 또한 은총이다.
생명도 그와 같다—
숨겨진 방에서,
씨와 난자가 만나고,
한 점의 불꽃이 별처럼 튀어 오르며,
소리 없는 축제가 시작된다.
우주가 숨을 들이키듯,
모든 것이 그 불빛을 향한다.
그 또한 은총이다.
전염병이 아기들을 앗아가던 시절,
볏짚 오쟁이에 실려
나무에 매달린 작은 몸들을
새들이 쪼아 병을 가져가던 그 풍습 속에서도,
다음에 태어난 아이는
잃어버린 생명의 숨결을 이어받았다.
살아남음 자체가— 은총이다.
죽음의 열기 앞에서
부모는 가진 것을 모두 내어
페니실린 한 병을 사왔다.
아이는 살아났다.
은총이다.
창천국민학교 시절,
얼어붙은 한강에 빠진 아이를
그가 뛰어들어 구했고,
둘 다 살아 돌아왔다.
은총이다.
경서중학교 모래판 아래,
철봉에서 떨어져
숨이 끊어질 뻔했으나
다시 돌아왔다.
잊힌 약속이 지켜지듯.
은총이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가르치고,
여름성경학교를 돕고,
교회의 오래된 질서를 배워가며
가슴 속에 작은 울림이 자랐다.
은총이다.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철학이 생각의 문을 열었다.
둘이 합쳐 나침반이 되었다.
은총이다.
신학교에서는
가장 먼저 입학원서을 내고,
성가대에서 테너를 부르고,
시와 그림 스무 점을 전시하였다.
시대의 떨림을 감지하고
도시산업선교에 발을 들였다.
은총이다.
군 복무 중,
비무장지대 근처에서
군부대 작은 교회를 세우고
2년 반 동안 군종으로 섬겼다.
은총이다.
하나님은 내 평생의 반려자를 주시고,
그 마음을 내 마음에 묶어 주셨다.
은총 위에 은총.
서울에서는
양광에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가르치고,
숙대 YMCA 학생들과 공부하며,
부산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등불을 건네듯.
은총이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배움의 땅으로 들어갔다.
은총이다.
그 후 40년,
다문화와 다인종 속에서
상처와 소망을 함께 나누며
목회의 길을 걸었다.
은총이다.
은퇴가 찾아왔고,
그와 함께 삶의 고요한 숨이 돌아왔다.
은총이다.
성숙으로 나아가고,
조화를 지키고,
의식을 되찾고,
다시 쓰고, 배우고, 바라보는 삶—
이 또한 하나의 은총의 실끈이다.
세월 속에 걸린 모든 실들—
소박하고, 단순하며,
빛 아래에서 은은히 반짝이는—
그 무수한 선들이
고요 속에 엮여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것은 은총이었다.
©윤 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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