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어김없이 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주일부터 보랏빛으로 장식한 교회 강대상의 보랏빛 촛대엔 하니씩 둘씩 불이 밝혀져 나갔습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태워가며 환하게 불을 밝히는 보라색 촛농은 우리 모두의 눈물을 담고 아픔을 담고 타들어 갑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 오실 아기 예수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신의 은총인가요? 그의 구원의 손길 앞에 감히 손을 내맡기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에게, 새생명의 출발을 선포하시며 주님은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약 3년 전, 성탄절을 두 주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전날부터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이 하늘이 어두워져 가더니, 밤새도록 폭풍우가 몰아치며 산중의 짐승 떼들이 포효하듯 천둥 번개가 그 치지를 않았습니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나였으나, 그날 밤은 왠지 무서울 정도로 소름이 끼치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언제 폭풍우가 몰아졌느나는 듯이 햇볕이 쾌청한 겨울 하루가 되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어둠이 이미 나래를 접고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딸 린(Lin)이 영영 … 떠났어요!”
피루일의 애써 충격을 누르고 있는 듯한 애잔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떠나요?”
“… 병원에 가서 시신을…”
그녀는 말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일 년에 한 차례,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나는 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귀여운 모습에 긴 갈색머리를 하고, 약간은 쉰 듯한 목소리의 22세의 처녀. 딸을 옆에 앉혀놓고, 환한 얼굴로 성탄절 이브를 보내던 미루엘.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은 린이 온 것이 대견하고 기뻐서 포옹을 하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지 않았던가?
“… 어젯밤, 그 … … 폭풍우 치는 … 길바닥에서 … … !”
“미루엘! 우리가 댁으로 곧 갑니다!”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하필 미루엘에게 … … 하필이면 ….’ 목사님도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어떤 위로가 없다는 듯이 긴 한숨을 몰아쉬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목사님! 이래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슬픔이 지나쳐 노도와 같은 분노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니, 형사라는 사람의 전화가 녹음기에 남겨져 있었어요! 전화를 하니까, 린의 이름을 확인하며 퀸즈 시립병원으로 오라고 하기에, 갔더니만 … …. 너무해요! 너무해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어요! 그들은 아무도 내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로 내 곁을 떠났어요! 모두 다 … …. 친정 아버지도 길에서 심장 마비가 일어나 그대로 가셨어요! 어머니도 병원에서 그냥 떠나셨어요!
남편도 그렇게 불에 타서 갔어요! 모두가 … …. 에미라는 것이, 딸이 빗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침대 속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으니, 이 죄를 린에게 어찌 사죄한단 말입니까? 어찌 … ….”
미루엘의 통곡과 분노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같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때로는 모든 불가능을 정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엄연한 한계 앞에선 우리는 늘 절망하며 몸부림칩니다. 우리가 이 곳에 이사온 후 미루엘의 고난의 삶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남달리 착하고 예의바르고 아름다운 미루엘. 오십 초반의 미루엘은 삶 자체가 마치도 고난받기 위하여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그 물음에 응답을 찾기엔 또 하나의 절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단 하나인 오빠와 살던 미루엘은 언어 장애 아들을 위한 특수 언어 교육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방대원이던 청년을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들을 결혼을 통해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행복한 신혼을 보내며, 딸 린을 임신한지 6개월이 되던 때였습니다. 새벽 4시에 소방서로부터 화재 신고를 보고받고 잠결에 뛰쳐나간 남편은, 그 길로 다시는 미루엘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는 연간 약 5,000 여명의 시민과 약 100여 명의 소방대원들이 화재로 사망하고 있다. N. Y News Day 12/5/92).
유복녀가 된 어린 딸에게 그녀의 생을 바치기로 결단한 미루엘은 린에게 온갖 사랑을 물붓듯이 부으며 양육하였습니다. 린이 자라면서 “왜, 아빠는 나를 한 번도 안아보지 않고 떠났어요? 하고 묻기라도 하 면, 미루엘은 언제나 대답하곤 하였었습니다.
“아빠는 린을 가장 사랑하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시기 때문에 부름에 응답하시고 가신 거야!” 그러나 미루엘도 그 진정한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Why? Why? God!”
28세에 혼자가 된 그녀는 수없이 베갯닛을 눈물로 적시며, 외로움과 아픔의 세월과 싸우며, 흔들리지 않은 성실한 삶을 신앙 안에서 살아 왔었습니다. 그러나 린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반항하기 시작하며, 무신론자임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밤거리를 헤매이고 술집을 드나들면서 겉잡을 수 없이 변화되어 갔습 니다. 무단 가출과 함께 낯선 사나이를 집안에 들인다거나, 술에 취해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다거나, 취중에 담뱃불을 집안의 아무 곳에나 집어던져 화재소동을 일으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19세의 린은 어느새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술을 입에 대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은 때에도 그녀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겨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유인이 되기를 선포했던 린은, 술의 노예가 되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독주에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미루엘을 불러 상담을 하였습니다. 린에게 좀더 엄하고 냉정하게 할 것과 강제로라도 린을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 집어 넣어 알코올 중독을 먼저 치료시킬 것을 강력하게 종용하였습니다. 미루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린은 그녀의 전부였으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린의 눈물만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 나도 노력해요!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지만 난 더 이상 안돼요!”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서 두 모녀가 부둥켜안고 헤어져 나온 지 이틀 만에, 린은 치료소에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미루엘의 고난은 린만이 안겨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늘 잦은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땐, 뒷차가 와서 들이받는다거나, 술 취한 차가 앞에 달려들어와 차 선을 지키고 달려가던 미루엘의 차를 들이받는 등. 길에서 넘어져 팔 뼈가 산산조각나서 근 일 1년을 고생했는가 하면, 몇 달 후엔 학교의 복도에서 미끄러져 골반 뼈 수군데가 조각이 나 꼼짝을 못하는 등 대형사고들이 늘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명 만은 언제나 보호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늘 고마워요. 이제 저의 나이 22세가 되었어요. 언제까지 어머니를 괴롭혀 드리며 어린아이와 같이 살 수는 없어요. 저도 이제는 자립을 하여 제 나름대로의 생활을 꾸려 나가겠습니다. 식당에 웨이 트리스로 취직을 했어요. 그리고 알고 있는 친구와 방을 같이 빌리기로 했어요. 저의 짐은 오늘 일부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차고에 두고 갑니다. 시간 나는 대로 와서 필요한 짐을 가져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린 드림.
학교에서 퇴근한 후, 집에 돌아온 미루엘은 냉장고 위에 붙어 있는 린의 메모를 발견하고 잠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무 소식 없이 며칠 씩 나가 애간장을 태우기만 하던 딸이었는데 … …. 가슴이 뭉클해져 오고, 그 동안의 피눈물이 곧 걷힐 것만 같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차고에 있는 린의 집을 확인하고야 집에 들어서는 미루엘은, 그날 저녁도 린의 짐을 확인하고 집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행여나 린의 전화가 와있는지 확인하고자 전화 녹음기를 틀었었는데, 둔탁한 남자의 음성이 그녀를 불안케 했습니다.
“여보세요! 미세스 크로스웰! 저는 뉴하이드 파크의 경찰서에 소속된 형사입니다. 린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린의 사망 시간은 새벽 3시경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했던 린은,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약 15분 거리의 주택가에서 그녀의 가죽점퍼 하단이 담장에 걸리면서 채 열려지지 않은 지퍼에 목이 조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 집이 아닙니다. 가구도 아니어요. 차도 아 니어요. 사람! 사람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이젠 누구를 위하여 살아가며, 누구를 위하여 이 집을 가꾸며 청소합니까?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고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어요! 저는 하나님께 한 번도 큰 것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단 한 번도 … … 우리 린이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게 되면, 저는 이 집을 물려주고 아파트로 나가서 살 계획을 갖고 있 었어요. 그리고 손주라도 한 번 안아보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이었습니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이루지 않을 것입니다.”
새끼를 잃은 밀림 속의 어미 사자같이 그녀의 전신이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픔이 얼마나 크고 노여운지, 아무도 그녀의 곁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공중의 모임에서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녀 곁에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며 치유의 은총을 베풀고 계심을 우리는 확신하였습니다.
“다시는 성탄절을 축하하지 않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요. 용서하셔요.”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던 날, 목사님이 건 전화에 그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녀의 외침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에 대해 가까이 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무력한 마지막 저항과 같았습니다. 미루엘은 필연코, 린을 데려가신 하나님을 아직도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오열은 영원할지 모릅니다. 고난의 미학이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어도, 린을 통해 얻고자 하던 생명의 보상들이 끊어진 현실만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도 어린 아기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분노의 낮고 천한 자리로 임하시지 않습니까? 인간의 기대와 소망이 끊어지고 빙산과 같은 절망이 나의 삶을 침몰시키는 그 어둠의 자리에 빛으로, 길로, 생명으로 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올해도 보잘것없고 추한 내 영혼의 새로운 출범을 위하여 그분은 홍포를 손수 입으시려고 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모세의 고난을 통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욥을 통한 고난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롬 8:28).
성탄절 아침,
소리없이 분노를 포효하며 새 생명의 날개를 거부한 채, 그 어둠의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던 미루엘이 주일 예배에 조용히 나와 다시 예배드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주님이 임하고 계심을 … …. 아! 지금은 깨어날 때, 지금은 우리의 눈물을 거둘 때, 지금은 우리 모두 기뻐하고 춤추어야만 할 성탄절!
주님은 당신과 나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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