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틀림없이 열어 보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방은 교회 건물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영접실(Parlor)인데, 문을 열면 첫눈에 들어오는 안정감과, 오랜 세월 동안 잘 보관되고 손질된 가구와 액자 등의 장식품 하나 하나에서 우러나오는 우아하고도 고풍스러운 모습이 저를 늘 매혹시킵니다. 또한 널찍한 공간에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하여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올 때의 눈부신 광채와 고요는 마치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같은 신비한 경건함으로 인도합니다.
제가 이 방을 사랑하는 몇 가지의 이유들을 조금 소개한다면, 그 방은 창문이 유난히도 많기 때문입니다. 방의 양벽이 온통 창문으로 가 득한데, 창의 나무틀을 통해 밖을 내다보노라면, 창유리마다 살아있는 그림 액자들을 맞추어 놓은 것같이 밖의 정경이 생동감과 리듬을 더하게 합니다. 또한 그 창문에는 18세기 풍의 커튼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는데, 창문과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곤 합니다. 불빛이 환하게 건물 밖으로 새어나오는 저녁 시간엔, 고향집 호롱불을 생각 나게 하며 은은한 불빛은 마음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해줍니다.
언제 어느 때 열어 보아도 잘 정돈된 가죽 의자들과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 조그만 설교단과 금색의 촛대들, 벽난로와 그 위의 양옆에 세워진 전기 호롱불, 벽에 걸린 그림들과 사진들 … …. 널찍한 공간에서 금방이라도 현악 중주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여유와 평화가 가득한 영접실은 제 영혼의 방과 늘 견주어 보게 됩니다.
사실 아침마다 영혼을 점검하면서 때로는 영혼의 방문을 열고 싶지 않은 유혹에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열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썩은 냄새들과 온갖 지저분한 잡동사니들이 가득차 금방이라도 새어나올 까 보아, 오히려 그 문 앞에 서서 가로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 지저분하고 추한 것들을 일일이 들춰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해야 될 것은 정리해야 됨을 알면서도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굳게 닫아 두게 됩니다. 행여나 남들이 들여다볼까봐 마음의 창문까지도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영혼이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지치고 지쳐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님께 영혼의 문을 열고 의탁하기만 하면, 주님은 내 방의 주인이 되시어 부서진 가구를 손봐 주시고, 엎어진 탁자를 바로 세워 주시고, 비뚤게 걸려진 벽 그림들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더러운 쓰레기들과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시고, 삶 속에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 주십니다. 음침했던 방안에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어느새 산만했던 주변에 따스함과 고요, 평안의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영접하게 됨을 발견케 됩니다.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정돈되지 못한 영혼의 문을 열기 위해 오고 계십니다. 새순과 같이 여리고 약한 모습으로 오고 계십니다. 우리의 영접실에 어린아기 예수님은 들어 오시기를 원하고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올해도 ‘빈방이 없습니다’ 라는 푯말을 내걸기 전에, 먼저 영혼의 문을 활짝 열고 귀를 기울여 봅시다. 그 사랑의 임금, 주님을 맞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나 흠모하는 멋지고 우아한 삶의 영접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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