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가? 평화로운가?”

참 자유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1620년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위해 메사츄세츠 푸리모스(Plymouth) 항구에 도착 이래, 세워진 기념관에 믿음(Faith)이라는 이름의 여신상이 있습니다. 이 여신상이 서있는 발 밑에는, 자유 (Liberty), 법(1aw), 도덕(Morality), 교육(Education)의 글귀가 네 모퉁이에 적혀 있습니다. 이 네가지 중에서 한가지가 빠졌을때, 온전한 믿음이 설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 최대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속에 살고 있으면서 암흑 속에 살고 있는 또다른 자유의 모습, 방종을 봅니다. 마약, 알콜중독, 살인, 인종차별…

자유의 얼굴엔 분명 두개의 모습이 있는데 하나는 평화이며, 또하나는 독재입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세계의 역사는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자유란 피를 흘리고도 쟁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 자유가 개인이나 단체의 이기심에 이용되었을 땐 독재의 얼굴로 둔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재는 남에 대한 책임감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의 황폐한 모습 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을 서로 균등하게 나눠 가짐으로 평화가 이뤄집니다.

성경에서는 믿는자에게 참 자유란 그리스도의 멍에를 같이 짊어지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 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 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 마태 11:25-30절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개인의 욕심, 이기, 자만심으로 인해 멍에를 짊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들은 내 영혼의 독재자가 되어 욕망의 올무로 나를 묶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말하기를 “하나님 안에서 쉬기 전에는 우리는 쉴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독재자가 아닌 겸손의 주, 평강의 주, 사랑의 주로 오시어, 자기의 생명을 모든 묶인자들의 자유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어 그분과의

겸손한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1. 겸손해지면, 내 영혼이 맑아집니다.
    내 영혼에 죄로 이끼가 끼면 이성의 판단이 흐려집니다. 겸손치 않코는 말씀이 하늘로 부터 내 가슴에 닫지 않습니다.
  2. 겸손해지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게 됩니다.
    이성이 맑아짐으로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보게 되어 나누려 합니다.
  3. 겸손해지면, 다른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 살피게 되어 행동으로 도와줍니다.
  4. 겸손해지면, 다른 사람의 존재와 함께 살아감을 깨닫게 됩니다.
    천국을 버리시고 인간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사랑처럼, 모든 국가. 사회, 개인의 일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책임을 질 줄압니다.
  5. 겸손해지면, 말씀과 깊은 명상에 들어가 주님과의 연합되는 영적 결혼의 신비를 맛보게 됩니다.

어느 신학생이 교회서 사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교회의 모든 창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 왔습니다. 신학생은 새를 잡으려고
3시간이나 교회당의 위아래로 쫓아 다니었으나 도저히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죽음 이 된 새가 갑짜기 천장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새는 쫓기고 쫓기느라 여기저기 부딪혀 날개 쭉지가 상할대로 상한 상태었습니다. 신학생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상처난 날개를 어루만지고 손아귀에 살포시 안아, 시원한 창가로 데려가 손을 폈습니다. 그러자, 새는 곧 날개를 퍼득 거리더니 먼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신학생은 그 뒤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며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손길을 느낌을 이렇케 고백했습니다.

“지친 인생길에 죽게된 나를 하나님이 손으로 집으사, 나의 상처를 주님의 상처로 감싸시어 주의 심장 가까운 곳에 나를 품어주사 내 인생을 온전케 하셨다. 그리고, 나로하여금 자유케 하사 내 인생이 다시 높이 날 수 있도록 놓아 주셨다”

우리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관리 안에 그분의 지켜주심과 돌봄 안에 있을 때 만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 자유를 만끽 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다음과같은 질문을 내 속 사람에게 도전하면서 맞으면 어떻할까요?

“믿음 안에서 나는 참 자유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 윤 태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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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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