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세대의 예배를 함께 드리며”

우리 교회에서는 매달 첫 주 성찬예배에, 삼 세대의 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었다. 삼 세대라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자녀가 함께 드리는 예배이다. 처음에는 단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예배였기에, 우려도 되고, 몇몇 분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수개월이 지난 후엔, 오히려 가족마다 기다려지는 예배가 되었기에 나누고자 한다.

작년 여름수양회 때였다. 강사로 오신 현용수 목사님(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의 저자)의 요청으로 온 가족이 함께 성전에 모여 성경적 자녀교육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어야 만 했다. 이미 강사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 이런 요청이 있었으나, 부모님과 학생, 이세 담당 목사님의 완강한 반대와 의구심은 수양회 당일에 가서도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순종이 제사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목사님께서 겨우 설득을 시켜, 한 방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의 온갖 플랜을 갖고 들어왔는데, 부모님들과 수양회 3일간을 함께 하게되었다 하니, 믿어지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이 대단하였다. 아이들은 한국말 강의가 시작되자 아예 눈을 감고 자지를 않나, 강의 도중에 지루함을 못 이겨, 화장실 간다고 왔다갔다하며 무언의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못 듣는 척, 이해 못하는 척 하고 앉아있던 아이들이, 가는 눈을 뜨고 강사 목사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 후에 이세담당 목사님이 영어로 요점을 재 강의하여, 전혀 한국말을 못 듣는 아이들에게 전하게 되니, 시간이 갈수록 저들의 마음은 더욱 더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목사님들의 보좌를 받아, 가족의 가장이(조부모 님이 계실 땐, 연장자가 한다) 성만찬을 베풀며 자녀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가족이나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지만, 직접,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거나, 손과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비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양회에서 이런 체험을 하게되었을 때, 가정마다 가슴에 뜨거운 복받침과 감사 감격으로 울음바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수양회 후의 인터넷에 올라 온 이세들의 반응은 의외로 대단하였다. 대부분 난생처음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았음이 충격이 되었다고 고백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부모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줄 때의, 마음의 위로와 안정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하였다. 또한 부모가 이혼했거나 외짝 부모 슬하에 자라나는 아이는, 가정의 귀함이 이토록 큰 것인가를 비로소 눈을 떴다는 아픈 마음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부모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고, 부모로서 축복 권의 회복을 찾은 듯하였다. 그러나, 게중에 가정에 문제를 당하고 있거나 자녀를 I.Q식으로 만 교육했던 부모들은, 이것이 감정에 의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심한 반감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겐 E.Q의 축복을 도외시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양회를 다녀 온 후, 교회임원회에서는 그동안 한달에 한번있던 성찬예배를 온 교인들이 함께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삼 세대 예배를 시도 할 때는 혹시나 아이들로 인해 예배가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가상의 염려였음을 첫 예배 시부터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교우들이 미국에 이민 온지, 이 삼십년 된 우리 교회로서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말로 예배를 드림은 사실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예배 전에는 청소년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 시에는 아이들이 한국어로 띄엄띄엄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주님의 성찬에 가족별로 참여하여, 부모님들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 눈물 없이는 축복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늘 갖곤 한다.

교인 중에 계절에 한번씩 예배에 나오는 30대 후반의 남자 성도님이 있다.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의 자녀로서 일찍이 부모를 떠나 미국에 유학 와서 상당히 외롭게 자란 분이었다. 그 분이 삼 세대가 함께 하는 성만찬에 참석케 되어 딸들을 축복하는 기회가 있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은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으로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게되니, 우선 그 자체가 너무나 막중하고 거룩하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행동이 정지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도 자신의 손이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려고 하니 양심에 심한 찔림이 왔다. “아니, 내가 과연 내 손으로 내 아이를 축복해도 좋을까?” 그 분은 어떨 결에 성찬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긴 했지만, 마음속에 놀라운 결심이 서기 시작하였다. “내가 내 아이를 축복하기 위해선, 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깨끗하게 살아야해!”라는 결단이었다. 부인의 기쁨은 말 할 것도 없었으며, 그의 가정의 변화는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예배에 익숙한 교인들 중에는 이런 일들이 어색한 분들도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에 큰 비중을 둘 수 만 없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소수의 창조적인 무리가 성령 안에서 용기 있게 나갈 때, 교회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축복을 덤으로 얻게 되어있다.

지난 삼일절 80주년 예배 때의 일이었다. 온 가족이 교회당을 가득히 채운 채,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민 온 후 참으로 오랜만에 한 민족이라는 자랑스러움과 감사 속에, 과거의 역사 속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녀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날, 예배에 걸 스카우트 소녀들이 십자가와 태극기를 들고 입장한 후, 성가대와 목사님, 예배위원들이 입장하였다. 또한, 예배순서 가운데 목사님께서는 ‘삼일운동과 순교’라는 제목의 말씀이 선포 된후, 삼일 독립선언이 한국어와 영어로 읽혀졌었다. 그리고 어린 걸 스카우트 소녀들이 사열한 채 들고 선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와 삼일절 노래를 온 가족이 함께 부르게 되었다. 이민생활 속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조상들의 독립을 위한, 죽음을 무릎쓴 용기와 기백 속에 다시 찾은 주권 국가인 조국 대한민국을 기리며, 우리들의 영혼은 한민족이라는 아이덴티 속에서 하나가 되는 뜨거움을 갖게되었다.

예배후, 그 어느 때보다도 부모세대는 이세들 앞에 떳떳하였으며, 자녀들의 모습도 왠지 더욱더 사랑스럽고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내가 이 땅에 설 수 있는 것은, 조상들의 눈물과 피의 역사 속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 공감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던 날이었다.

이제 우리교회는 삼 세대가 함께 하는 예배를 통해, 자녀들과 영적으로 가까워짐은 물론이요, 상처 나고 갈라진 이민사회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남북한의 통일의 꿈이 삼 세대가 함께 하는 예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세계곳곳에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되어 수십 세대를 살았어도, 만나기만 하면, 언어와 세대차이, 문화와 종교, 음식 차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같은 사상과 언어로 하나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조차 우리는 스스로가 흩어지고 포기하고, 갈라진 채 살아왔음이 여간 부끄럽지 않다. 이제 이민교회들이 자체교회내의 일시적인 양적인 부흥만이 아닌, 일세신앙을 세대차이 없이 후대에 전하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신앙 안에서 물려주는 일이다.

삼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는 지금 분명 우리교회를 변화시켜가고 있으며, 이 예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치유와 위로를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세들이 대학으로 떠나면 신앙도 떠난다는 안타까운 소문이 더 이상 우리에게는 들려지지 않을 것만은 확신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글: 윤 완희, 1999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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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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