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의 대화

“자, 지금부터 문답 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제 일번,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대학 세 개는 무엇입니까?” “저요! 하버드, 예일, 스탬포드입니다” “네, 맞았어요! 제 2번 문제,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결혼상대자는 누구입니까?” “네. 한국사람으로서 일류대학 나온 사람입니다” “네, 맞았습니다. 제 3번 문제, 부모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나 께임은요?” “네. 첫째는 골프, 둘째는 비디오보기, 셋째는 화투놀이입니다” 한인 여성들로 꽉 메인 테니시 내슈빌의 스칼렛 벳넷센타의 장내는 떠나갈 듯이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깨임은 지난 달 말에 있었던, 전국 한인여선교회 훈련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온 여선교회 지도자들과 이세들이 선교라는 한 목적으로 모여, 훈련 중에, 어머니들과 딸들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2세와의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180여명의 여선교회원 중에 약 20여명의 이세들이 참석하였는데, 그 동안 카펫트 밑에 깔아두었던 부모와 자녀들의 모든 갈등과 문제를 끄집어내며, 저들과의 간격을 좁히고자 만든 프로그램 이였습니다. 우리는 대화의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은 부모님의 단순한 기대처럼,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중문화 속에 살아가는 인격체로서의 복잡다산한 고민과 갈등, 아픔을 너무나 처절하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대화의 시간에 참석하면서 철없는 어른들의 요구에, 성숙한 이세들의 상처투성이인 모습을 대하고는, 부모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기르시고, 성장시키고, 저들의 상처를 싸매시며 단련시키고 있는 손길을 더욱 더 강하게 체험케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겪고 있는 갈등과 아픔을 “우리 어머니의 가든”이라는 제목으로 나누는 순서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학교엘 갔는데, 학교에서는 동양인이라고는 제 동생과 저, 단 둘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와 동생을 늘 시험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우리들을 밀어서 넘어트리면서 갖은 호기심은, 우리가 미국 애들처럼 똑 같이 넘어지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넘어지는지를 늘 시험했습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였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빠지지 않고 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위해 저녁을 지어야 되었고,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PTA에 참석하시며, 저보고 통역을 하라고 할 때, 너무나 난감했었습니다. 저는 외로움과 소외 속에 한국인이라는 것과,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너무나 미워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미국인이 되기만을 원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그 자체가 너무나 싫었기에, 집에 돌아와서는 일체 한국말 쓰길 한동안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28살의 성장한 사람이 되어, 어머니의 가든을 뒤돌아봅니다. 어머니의 가든에는 많은 잡풀들과 불필요한 벌레들도 함께 자라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오늘과 같은 저를 꽃 피우셨습니다.” 이제 변호사가 되어 한 가정을 아름답게 이룬 젊은이의, 눈물의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이혼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났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홀로 사시면서 저 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시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사시는 것이 싫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냉정하게, 박대하였습니다… 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어 결혼을 하기 위해, 어머니께 인사하러 갔을 때, 어머니는 언어 때문에 아무 말도 하시질 못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못나 보이고, 바보처럼 여겨졌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뒤돌아보니, 나의 어머니는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단 한 분의 천사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가든에 이혼이라는 가시를 안고, 오늘의 저를 꽃피우셨습니다” 엔지니어가 된, 또 다른 젊은이의 목이 메인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렇게 연이어지는 딸들의 눈물의 고백을 들으면서, 그곳에 참석했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자녀의 성장과정을 보는 듯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불완전한 부모는 자식의 가슴에 갖가지 한을 맺히게 하고, 절름발이의 사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성숙하고, 저들의 판단이 공정하고 명확함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지키시는구나 하는 안도와 감사가 모인 어머니들 속에서 치솟아 올랐습니다.

젊은이들의 고백 후에, 60이 넘으신 어느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그 분은 1960년대에 이민 오신 분으로서, 아버지도 의사였고, 남편도 의사였으며, 본인은 간호사였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녀 셋을 낳아 기르시면서, 아이 셋이 모두 의사가 되기를 기대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본인의 고백처럼, 의료계 이상의 세계는 접해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또 다른 직업이나, 사회를 알지 못하신 분이었습니다. 여느 한인가정처럼, 자녀 셋을 필립스 아카데미라는 일류 중고등학교에 보내고, 대학도 일류 학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아이들의 세계는 전혀 기대치 않았던 세계로 달려가며, 어머니는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큰딸이 대학 일 학년을 다니다 말고, 영국인과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어머니는 죽을 각오로 반대를 하였더니, 부모 몰래 시청에 가서 결혼식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도 금발의 여인과 연애를 하고는, 부모의 눈치만을 살피다가, 또 부모 몰래 시청에 가서 결혼식을 치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어머니는 완전히 삶의 낭패를 맛보며,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아이들이 변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아이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인 자신이 변하게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 분은 아이들의 세계는 자신과 결국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올해 32살의 막내딸을 결혼시킨 그분은, 막내 사위를 반쪽이지만, “김서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여간 위로와 기쁨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위의 어머니는 미국인이지만, 아버지는 한국인인 것이 너무나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끔 모든 것을 허락하고 보니, 아이들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모든 기도의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보며, 이제사 행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60평생을 정리하신 그분의 고백은, 결혼 전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끈끈하고, 지을 수 없는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화란, 결국 일방적인 생각이나, 명령을 대화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대화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감정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려 할 때만이 올바른 대화의 성립이 이뤄지듯이, 자녀들과의 대화에 있어 저들의 입장을 부모세대가 얼마만큼 헤아리고 있는가를 생각게 됩니다. 부모세대의 문화와, 자녀세대의 문화엔 너무나 다른 세계가 있음을 우리는 고백하며, 거기에서의 화목과 조화를 찾아야 만 될 때입니다.

이번 여선교회 전국훈련을 통해, 배운 것 중에 하나는, 한인교회서나 한인공동체에서, 우리 이세들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 저들을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려 할 때, 저들은 우리 곁을 결국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또한, 내 자녀와의 막힌 담- 먼저 내 자신의 인습과 관습, 일방적인 생각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끊임없이 노력 할 때만이 대화의 장에 우리 모두가 들어설 수 있다는 교훈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 윤 완희, 목사관서신, 11/1/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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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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