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탁에 모여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큰 딸 아이가 식탁 밑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더니, 가족들의 시선을 모으게 하였다. 그리고는 “결혼 기념일을 축하합니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작은 선물하나를 내밀었다. 식탁에 둘러 앉아있던 아이들의 급작스런 환호성과 박수, 결혼기념 축하 노래가 성애 낀 유리창을 녹이기라도 하듯이 목사관을 훈훈하게 채워나갔다. 남편은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 ! 그럼 촛불을 밝혀야지!” 하면서 크리스털 촛대에 불을 부쳤다.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 아침의 태양 빛과, 활활 타오르는 분홍촛불은 우리들의 식탁을 한동안 아름답고도 눈부시게 하였다.
아! 올해가 몇주년째지? 23년이라고? 벌써? 라는 자문을 수없이 되뇌며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막중하였음을 감사케 된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작된 결혼생활은, 마치도 하이웨이에 길을 잘못 들어선 강아지가, 숨가쁘게 오고가는 차량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는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부부간의 제한 된 사랑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보물을 살짝 밀어 넣어,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불완전함을 온전함으로, 모자람을 충만함으로 늘 채워주고 다듬어 주셨다. 그 용서와 사랑이 없었다면, 이 날이 과연 우리에게 축하의 날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감동을 갖게 한다.
문득, 23년전의 연탄불과의 잊을 수 없는 싸움이 되살아난다. 당시에 모든 음식이나 난방을 구공탄으로 감당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 추운 영하의 겨울날씨에 연탄불이 허구헌날 꺼져버렸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주 방구들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인해 한 밤중에 잠을 깨어야 만 했고, 불을 살리기 위해 번갯탄을 뻔질나게 사러 다녀야 만 했었다. 그런데, 그 19공탄의 화력을 자랑하던 연탄은 왜 그리도 힘없이 잘 깨어지던지! 알다시피 연탄불의 삼분의 일이 남아있을 때, 밑에 있는 헌 연탄을 들어내고, 새 연탄을 올려놓는 일은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데 나는 연탄을 집게로 집어 올릴 때마다, 중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기가 일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절망적인 비명을 질러야만 되었고, 남편은 용감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그 뜨거운 연탄 아궁이에 코가 닿도록 엎드려, 깨어진 연탄재를 퍼내느라 온통 잿더미를 뒤집어쓰고 전전긍긍해야 만 했었다. 남편의 아궁이 청소가 끝나면, 그는 <어떻게 연탄을 깨뜨리지 않고 집어 올리는가?>라는 강의를 그 비좁은 부엌에 서서 수도 없이 반복하며 실습을 시켰다. “자, 이렇게 손에 절대 힘을 주지 말고, 집게를 가만히 내려서 살짝 천천히 들어올려요! …살짝” 그의 강의는 언제나 진지하고 친절하였으며, 굉장한 이론을 동반하였다.
세월이 흘러 연탄집게와 친해지고, 연탄불을 더 이상 꺼뜨릴 염려가 없어진 무렵, 나는 또 헐레벌떡 허덕이게 되었다. 우리부부는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르는 특권을 얻은 것이었다. 그 생명은 잠시도 그냥 놔두거나 무관심 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의 힘을 동반하였다. 먹여주고 돌봐주고, 씻겨주고, 갈아내고, 함께 울고 웃고, 때로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을 동반하였고, 모든 것을 희생하여도 아깝지 않은 스릴을 맛보게 하였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당신의 심장인 아들을 내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천만 분의 일이라도 알게 하셨다.
얼마나 많은 햇수를 우리 곁에서 아이들은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며, 남편은 기쁨의 촛불을 밝힐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결혼기념일이란, 인생에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결혼은 우리를 얼마나 겸손케 하며 성숙케 하는가! 하물며, 우리를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림 받기를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용서와 참으심, 사랑의 투쟁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살짝 천천히’가 그리 쉬운가!지난 해 말에, 남편의 친구되시는 목사님이, 새로 부임한 교회 앞에서 사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금방 예배보고 나선지, 10여 분 만에 당한 일이었다. 여선교회의 지도자로, 사모님으로서 참으로 많은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고 남을 만큼 유능하던 그 사모님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그 목사님은 지난 성탄절에 슬픔가운데 교인들에게 보내야 만 했었던 성탄 축하편지를 이메일로 보냈왔었다.
“… 수년전, 제 아내와 약혼을 했을 때 나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함께 나누며, 사랑하며,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눌 것을 약속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 안에 있다는 것은 마리아가 가족들의 협조없이 목숨을 담보로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야 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요셉이 고통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여야 만 하는 기쁨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길도없는 흑암의 거친 사막의 길을 별 하나 바라보며, 모험을 떠나야 만 하는 기약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때로는 슬픔과 놀라움, 고통의 얼굴로 다가올지라도 기쁨의 언약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있는 이 슬픔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 안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 윤 완희, 목사관 서신, 1998년 12월
후기: 올 해, 2025, 결혼 50년 금혼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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