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끝난 것일까?
아니면 지금부터가 진짜 여정의 시작일까—
거룩한 열림을 향한 긴 펼쳐짐,
나아감과 놓아버림을 향한 길,
하나님의 신비 안에서
자유롭게 흐르는 삶을 향하여.
이것이 한(恨)의 길이다—
단지 쓰라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억된 고난,
부인되지도 복수되지도 않는 상처,
기도로 모아진 아픔,
증오 없이 품어진 역사.
한은 절망을 거부하는 슬픔이며,
구속을 기다리는 탄식이다.
이것이 공(空)의 침묵이다—
상실로서의 공허가 아니라,
케노시스, 거룩한 자기 비움,
우상들이 잠잠해지는 자리,
말마저 힘을 놓는 곳,
영혼이 무장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공간.
공은 은혜의 자궁이며,
하나님만으로 충분해지는 고요다.
이것이 류(流)의 맡김이다—
수동이 아니라 신뢰의 움직임,
성령의 흐름에 몸을 내어맡긴 삶,
소유와 두려움 없이 흐르는 길,
사랑이 이끄는 곳으로 옮겨짐.
류는 통제 없는 순종,
불안 없는 사명,
움직이는 믿음이다.
비전의 기쁨—
한때 우리가 함께 나누기로 약속했던 기쁨,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것 안에서,
그분 자신의 기쁨 속에 간직된 약속.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생명.
모험의 기쁨—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
보장 없이 사랑하는 기쁨,
도피 없이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기쁨,
고난 속에서도 나란히 걷는 기쁨.
하나님의 기쁨 안에 산다는 것은
마리아의 기쁨이다—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잉태한 기쁨,
이해보다 앞선 ‘예’의 기쁨.
요셉의 기쁨이기도 하다—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아이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이는 기쁨,
이성 너머의 의를 신뢰하는 기쁨.
여기서 말은 사명을 받는다—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와 자비를 섬기기 위해.
생명의 기쁨—
동방박사들의 기쁨,
어둡고 길 없는 사막을
작은 별 하나만을 의지해 건너간 기쁨,
빛이면 충분하다고 믿는 기쁨.
기도의 능력은
이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이 길은 여전히 단순하다—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활짝 열린 길,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잃음으로 얻는 역설을 끌어안는 삶.
하나님의 기쁨은 종종
슬픔의 얼굴로,
놀라움으로,
고통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기쁨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외의 침묵 속에서
말을 잃었다—
다가올 것을 향해 열려 있고,
모든 위협과
모든 거짓 사랑을 내려놓은 뒤에야
부드럽게 다시 연결되었다.
모든 것을 떠나,
무(無)로 들어가,
공허를 끌어안는 자리—
참된 침묵의 공간,
부활이 시작되는 곳.
그러니 그것이 당신을 지나가게 하라.
모든 것을 맡기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생동을 받아들이라.
오늘의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이 그분의 기쁨 안에 놓여 있음을
감사한다.
돌파.
흐르게 하라.
– 윤 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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