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들이 목사관 앞마당을 한창 앞다투어 피고 지는 때에, 생각치도 않은 150그루의 장미 묘목이, 한 장의 편지와 함께 교회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이 사랑의 장미는, AIDS로 사망한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기억해달라고 보내드리는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너무나 많이 죽어가고 있고, 그 가족들은 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낯선 사람들이, 우리들의 황무지와 같은 마음 밭에 장미를 심어달라고 보낸 것이다.
기도의 부담은 있지만, 난생처음 그토록 많은 장미묘목을 받게되니 우선 신바람이 났다. 교우들도 좋아하리라는 기대 속에, 삽을 하나씩 갖고 교회로 오시라고 부지런히 전화를 하는 중에 의외로 심기가 불편해 하는 분이 있었다.
“… 그 사람들 나쁜 짓 하다가 병에 걸려죽었는데, 우리하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군다나 그들이 보낸 장미를 거룩한 교회마당에 심는다는 것이 왠지 합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일년후, 십년 후의 장미동산을 생각하며, 벌써부터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버린 나에게, 전화에 들려지는 성도 님의 볼맨 음성이 만만치가 않았다.
당황한 나는 “…아, 예.. 요즈음엔 의료인 들도 병원에서 일하다가, 또는 산모들이 제왕절개 수술하거나, 교통사고, 또는 다른 병으로 혈액이 모자라 수혈을 받다가 그 균을 옮겨 받는 일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뉴욕의 할렘 인구의 19%가 이 병의 보균자들이고, 세계의 3,000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심과 기도를 갖으라고 …!” 눈 만 뜨면 듣는 것이 목사님의 설교이니, 나도 모르게 전화설교(?)를 한바탕 쏟아놨지만, 마음이 영 답답해지고 실망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답답하지? 나도 언제나 답답했단다’라는 주님의 미세한 음성이 심중에 들려왔다. 그리고 입김보다 가벼운 존재(시62:9)인 나에게 하나님의 풍요한 은혜 앞에서도 내 멋대로 통제하고, 거부하던 모습이 눈에 들어섰다.
양복바지와 흰 와이셔츠를 걷어붙인 성도들과, “왠지 합당치 않다…”며 불편해 하시던 성도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삽질을 하였다. 아이들까지도 물을 준다며 호스를 가지고 온통 장난을 하니,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물과 흙에 흠뻑 젖은 채 한바탕 웃음 꽃을 피웠다. 결국, 150그루의 장미 묘목은 삽시간에 성전 뜰 악의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 땅을 차지하고 기뻐하고 있는 장미 묘목들을 바라보며, 이 꽃들이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의 “디딤돌을 짚고 왔을까? 하는 안쓰러움이 들었다.
사람에게 최상의 기쁨이 있을 때,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한 아름 보내지고 안겨지는 장미 송이들. 지금은 가장 낮은 음성으로 “기억해 달라”고 속삭이지만, 머잖아 토해 낼 그 타는 듯한 빨강, 노랑, 분홍, 흰빛의 색채는 우리의 매마른 황무지에 사랑의 소동을 일으키리라!
– 윤 완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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