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성모

–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

그는 스물여섯이었고,
이미 삶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오선지 위에 적었다—
아들을 먼저 묻은
한 어머니의 슬픔을.

그러한 슬픔이 설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자리뿐이었다:
십자가 아래.
그곳에서 페르골레시는
성모의 영혼을
끝을 품은 기도로 모아 담았다.

그 기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어졌다—
바흐의 믿음을 지나,
소리의 균형을 붙드는 것으로
신앙이 살아남던 시절을 지나,
젊은 영혼의 고뇌가
꺼져가는 불꽃의 마지막 연기처럼
솟아오르던 그때를 지나.

세상은 이미 갈라지기 시작했고,
찢기고 있었다—
각자의 몸이
스스로를 지키려 움켜쥐며.
전쟁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소음이 아니라,
말 없는 혼란 속에서,
평화는 인질이 되고,
동의 없이 나뉘며, 연합 없이 소모된다.

벽들은 사방에서 세워졌다—
안쪽의 벽, 바깥쪽의 벽.
한쪽은 자신을 자유라 불렀고,
다른 쪽은 질서라 불렀다.

돈이 움직이면 무기가 따랐다.
법은 쓰였고,
곧 권력의 하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질문들은
의심 속으로 흐려진다:
평화는 가능한가?
연합은 가능한가?

그래서 모든 전쟁은 악이다.
그러나 무기고는 계속 늘어난다.

우리는 공존을 말하고,
함께 사는 삶과
함께 번영하는 삶을 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부르고,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마침표를 찾지 못한 채
선율을 더듬는 아리아처럼.

마치 태고의 뱀이
마침내 상자를 부수어 열어젖힌 듯,
기어 다니고 집어삼키는 것들이
한계도, 가책도 없이 풀려난다.

이제 고통에는 지평이 없고,
치유는 오래전에 잊혔다.

세상은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속임수에 능한 손들,
신뢰할 수 없는 믿음,
회개할 줄 모르는 마음들.

누군가는 이것을 새로운 질서라 부르고,
누군가는 감히
자신을 신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여전히 하나의 소리가 남아 있다—
지워지지 않은 소리,
아름다움의 흔적을 따라가는 소리,
아직 침묵되지 않은 공명.

끊어진 하늘과
닳아버린 땅 사이에서,
그 소리는 가슴에 한(恨)으로 내려앉는다—
말을 넘어선 슬픔으로.

그래서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그 소리는 기도가 되고,
또 하나의 소나타가 되며,
마침내 교향곡이 된다:
함께 살아가는 소리,
함께 자라는 소리,
혼자가 아닌 소리로 흐른다.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땅에 닿는다.
누군가 우물에서
찬 물을 길어
부끄러움 없이 마신다,
열린 하늘 아래에서.

기둥 하나가 세워지고,
새 한 마리가 내려온다.
또 다른 새는
먼 산마루에서 기다린다.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흐르기 시작한다.

천천히, 세상은 열린다—
하늘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는 것처럼,
땅이
자신의 처음 뜻을
기억해내는 것처럼.

드보르자크, 이어서 비발디.
어머니의 기도는
십자가 아래에서 기다린다,
상실이 가장 깊은 그 자리에서.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한”은 풀려난다—
해답으로가 아니라,
찬미로.

아—
이토록 가혹한 아름다움.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움.

— 윤 태헌 (교정 1/9/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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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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