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보수 공사에 수고한 수인들을 초청하여, 치하와 위로의 만찬을 베풀기로 하였다. 청색의 유니폼을 단정히 입고, 말끔하게 면도를 한 수인들은 조금은 쑥스럽고 수줍을 표정을 지으며, 교인들이 마련한 만찬장에 들어섰다. 우리는 만찬장 입구에 들어서는 그들을 향하여 기립박수를 보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에 이제 막 꽃망울이 피어오르는 라일락 부캐를 만들어 가슴에 달아주었다. 정성껏 마련한 저녁식사와 디저트가 끝나자, 목사님이 초청하는 성만찬에 모두 참여하였다.
“이 빵은 당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 이 잔은 당신을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갑니다.“ 우리 모두는 훈훈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촉촉히 젖어 들어갔다.
성만찬 후에, 교인대표되는 하비두람이 일어나, 아낌없는 치하와 위로를 하자, 그들은 새로운 용기와 결단이 솟는 듯이, 교회 앞에 진정한 감사의 화답을 하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일어나 잘 포장된 나의 그림을 뜯으며 말하였다. “여기 이 그림은 지난 성금요일 새벽녁에 꿈속에서 본 십자가를 부족하지만 그린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의 이름을 싸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여러분들이 어딜가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기를 저희들은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세계에 초청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였다. 그들은 엄숙한 모습으로 한 사람씩 나와, 가시관으로 둘러쳐있고 무지개의 언약이 있는 그 십자가 그림 위에 싸인을 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열명의 수인들과 한명의 간수, 그리고 내 싸인까지 합쳐 열두명이 서명하였다. 비록 잠시 잠깐의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그들의 삶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는 싸인이 되어, 영원히 문신처럼 남아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 그 그림을 헌납하였고, 교회 임원회에서는 성전안쪽 입구의 벽에 걸도록 결정하였다. 지금도 그림은 Coxackie, N.Y에 있는 제일감리교회 벽에 걸려있다.
우리는 비록 인간의 법과 질서를 크게 위반하지 않아 비록 청색 유니폼을 입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눈에는 오십보 백보의 차이도 않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루에도 수없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돌아서면 또 회개의 눈물을 지어야 만 하는 내 모습 속에, 영적인 청색 유니폼을 난 입고 있진 않는가?
편지를 읽는동안, 그 시절의 망치소리와 기계톱소리, 그들의 회파람 소리가 아련히 들려 오고 있었다. 그 저녁 나무 십자가 위에 서명한 청색 유니폼의 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머지 사람들은 그 때, 그 십자가 위에 자신들의 이름을 싸인했음을 행여 기억하고 있을까? 오! 주님! 지금껏, 행여 기억치 못할지라도, 그들의 이름석자가 주님의 거룩한 제단에 걸려있음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 윤 완희, <1993년 6월>
Note: 약 10년 뒤에 Mr. Harvey Durham이 우리에게 보내준 편지속에는 10명 중 한명이 자신의 약혼녀와 함께 돌아와 교회당 입구에 걸린 십자가 그림속의 자신의 사인을 확인시켜 준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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