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며

몇 년전에 온 가족이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처음 여행인지라 여행다니는데 불편없이 준비해서 다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족들은 저마다 자기 짐들을 잔뜩 준비하였습니다. 차의 트렁크와 의자 발밑에 물셀틈도 없이 온갖 것을 꽉 채우고, 그것도 부족하여 4기통의 작은 차 지붕 위에 여행가방 3개를 얹고는 밧줄로 꽁꽁 묶은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가는 첫 휴계소 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차를 세워두고 화장실을 가거나 주변구경을 하려고 하니, 차 지붕 위에 얹혀진 짐들로 인해, 누군가는 차에 남아 짐을 지켜야 만 되었습니다. 비로소 짐 때문에 다섯식구가 함께 움직이는데 차질이 생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식구마다 이것도 있어야 되고 저것도 있어야 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이었기에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할수 없이 캐나다 국경을 넘는 즉시, 짐을 정리하여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집에 부치고 말았습니다. 국경을 넘으니 비싼 우편요금을 결국 지불해야 만 되었으나, 짐을 집으로 부치고 난 후의 상쾌하고 가뿐한 마음은 여행의 진수를 비로소 맛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섯 식구가 좁은 차에서 짐때문에 몸도 제대로 펴지 못했던 기억들을 할때마다 폭소를 자아내곤 합니다. 그일로 여행은 간편하게 다니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것인가를 온 가족이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역사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 땅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건만, 아무도 우리 앞에 열려진 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돌작 밭이 있을지, 절벽이 놓여있을지, 포장되지 않은 진흙 탕 길이있을지, 지금까지 달려온 고속도로 만이 열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올 해의 모든 안전과 건강, 삶의 축복을 위해 짐을 잔뜩 꾸리어 여행을 떠납니다. 길을 떠나기 전, 과거의 경험을 살리어 보따리를 다시 풀어 놓고 꼭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중에 올해 저에게 없어서는 않될 꼭 필요한 것 세가지 만 추려보았습니다.

첫번째는 “감사”입니다. 올해엔 부족했던 것이나 없었던 것들이 채워질 때에만 감사했던 습관들을 벗고자 노력하렵니다. 내게 이미 있는 건강과 지금의 환경, 늘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과 자녀들, 친척들과 성도들, 조국, 나의 취미와 기쁨을 채워 줄 수 있는, 목사관의 작은 터밭과 서재, 기도해 줄 수 있는 성도들… 모두가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감사”의 생각과 언어 표현을 하나님이 허락 하시는한 마음껏 하기를 원합니다.

두번째는 “사랑”입니다. 지난 날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마음을 상하곤 하였는데,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저의 넉넉치 못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덮어놓고 평가와 비평을 하던 습관 역시, 사랑이 메말라 포용치 못하고 그길은 사망과 생명의 갈림길 임을(요한 일서 3:14) 미처 깨닫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올 해는 이 두 갈림길에서 생명의 길만을 택하기를 진정 원합니다.

세번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 (히브리서 11:1)라는 말씀의 나침판 위에, 전적인 신뢰와 의지 함으로 떠나겠습니다. 믿음 없는 허상(虛像)의 그림자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길을 헤메이는 우매 함을 또 다시 되풀이 하지 않는 “믿음”을 갖고 여행 길에 오르려 합니다. 올해도 내 앞의 장애물들을 비켜달라는 비겁한 기도를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지난날 처럼, 넘어야될 보이지 않는 장벽들과 홍해는 어느 순간에 우리 앞에 가로 놓여, 우리 개인과 나라의 목표를 방해하고 소망을 차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도 믿음만 있으면 감당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시니 얼마나 큰 보장입니까?

여행은 간편하고 자유스러워야 진정한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습니다. 내게 필요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여행길에 챙겨 넣어 보지만, 꼭 필요한 것은 역시 몇가지 뿐인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행의 참 목적을 잃치는 않았는지요. 올해도 나의 영과 혼과 육신이 평정을 찾는 가운데 육신만을 치우쳐 돌보다가 내 영과 혼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올해는 조국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희년의 해입니다. 종된 자들을 풀어주고 빚진자를 탕감 하여주고, 팔린 땅을 본래의 경작자들에게 돌려 주는 기쁨과 해방의 해입니다. 이 기쁨과 민족해방 50주년을 맞으러 가는 길에 “감사”와 “사랑” “믿음”을 싣고 길을 떠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새 길을 떠나며, 나의 봇짐들이 주님의 계획을 행여 어긋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 윤 완희 <1995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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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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