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안녕하세요? 갑자기 왠 알로-하! 냐고요? 오늘 이 시간엔 하와이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특별한 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소개해 드리려합니다.
저는 지난 달(8/10/97)에 난생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태평양의 보석이라 불려지는 하와이를 방문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와이 코나에 있는 열방대학에서 목회자 부부들을 위해 열리고 있는 선교훈련의 한 과정인 “갈림길에서의 체험(Crossroad Experience)”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영적인 도전과 함께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찾게되는 큰 은혜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와이라는 섬에 깔려있는 기독교 문화와 저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여러 가지로 배워야 될 것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고 돌아 왔답니다.
저희가 하와이 섬에 막 도착하여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순간 코에 와 닿는 달큰한 꽃 향기였습니다. 그리고 첫 눈에 띄는 아름다운 열대나무인 야자수와 갖가지의 종려나무들의 시원스런 모양 앞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도로 주변의 낯선 꽃나무들과 섬을 감싸고 있는 태평양의 잉크 빛 물결은 대륙에서 늘 닫혀진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저들의 인사와 미소 진 얼굴들 이였습니다.
* 찬양을 들으시겠습니다
하와이 사람들은 인사를 할 때 ‘알로-하’라고 인사를 하는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환영합니다. 또는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할 때도 쓰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의미는 “당신의 현존 앞에 서서 당신에게 생기를 부어 드립니다”라는 뜻인데 너무나 좋은 인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모두에게는 생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 인사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기를 부어주신 사건을 기억시키었습니다.
또한 하와이 사람들의 인사 방법 중에 Plumeria라 불려지는 나무의 꽃으로 꽃 목걸이를 만들어 상대의 목에 걸어주는 레이 인사입니다. 상대방에게 생명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걸어주며 축하하는 행위로 이 또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꽃 목걸이를 걸었을 때의 그 독특한 향기와 싱싱한 꽃잎이 피부에 닿아올 때의 그 신선한 감촉은 내가 진정으로 환영받고 사랑 받고 있다는 생각 속에 격려와 위로를 겸하여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꽃 목걸이로 남성들에게는 티 잎(Ti Leaf)으로 만든 레이를 걸어주는데, 왕에게 드리는 최고의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랍니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환영하고 섬기기를 즐겨하며 격려함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원주민인 폴리네시안 들은 시간에 별로 매이지 않는 여유 있는 생활방식으로 풍성하고 좋은 음식과 춤과 노래를 즐기며 삽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수공예를 통해 종려잎으로 만든 바구니와 모자, 레이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거나 월패어에 의존하여 살아가면서도 구태여 생존경쟁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다에 나가면 그 맑은 물아래 보이는 고기 떼들과 자연의 풍성함 속에서 오늘을 즐기며 사는 듯 했습니다. 특히 제가 방문했던 코나는 알리이라는 하와이 왕족의 고향으로서 하와이를 통일한 카메하메하 대왕의 고향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와이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1820년 4월 4일에 뉴잉글랜드 지방의 선교사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하와이서 자라고 뉴잉글랜드 쪽에 가서 성장했던 두 소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이름은 Henry OpuKahaia( Henry Obookiah), Thomas Hopu(Nauhopo O’ua hopo’o)입니다. Obookiah 소년은 삼촌 집에서 귀신을 섬기던 일을 맡았던 소년이었습니다. 소년들은 당시에 코넷티컷 지방에서 온 상선이 부두에 잠시 머무름을 보고 헤엄을 쳐가서 배에서 심부름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선장의 허락을 받은 두 소년은 배를 타고 온갖 심부름과 청소를 맡아하면서 중국과 인도를 거쳐 1808년 미국으로 오게되었습니다. 한동안 선장 집에 머물면서 머슴생활을 하던 소년들은 좋은 기독교 가정에 소개되어 머슴살이를 하면서 영어를 배우고자 몹시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Obookiah가 당시에 예일 대학 학생인 Edwin D. Dwight를 만나게 되어 그로부터 영어를 읽고 쓰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Obookiah는 종종 예일 대학의 빌딩 구석에 가서 울다가 에드윈에게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에드윈은 그의 아버지에게 Obookiah를 도와달라고 데리고 왔는데 그의 아버지는 예일 대학의 총장인 Timothy Dwhite였습니다. 총장은 그를 개인지도하며 기독교를 소개했는데 그는 별로 관심이 없어했습니다.
어느 날 Obookiah의 생애를 변화시킨 큰 기회가 왔습니다. 어느 날 총장의 집에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그의 이름은 Samuel J. Mills Jr였습니다. 그는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였는데 당시에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해외 선교사 보내기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던 던 것입니다. 그런 터에 사무엘은 친구들과 나무 밑에서 기도를 하다가 심한 천둥벼락으로 하마터면 벼락에 맞을 뻔한 상태에서 구해져 나오면서, 평생을 선교사로 살기로 서원 했던 젊은이였습니다. 사무엘은 Obookiah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 농장 일을 시키면서 그에게 교육의 기회를 갖게 하였습니다. Obookiah는 그곳에서 사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예수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됩니다.
Obookiah가 살던 하와이에선 화산이 폭발하여 살아있는 모든 자연을 죽음으로 뒤덮어 버리는 것을 펠라여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노여움을 달랜다는 뜻으로 화산 근처에 산당을 마련해 놓고 사람을 제물로 바쳐지는 온갖 종교의식을 가졌습니다. 두 소년들은 기독교를 접하고 나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세계를 깨닫게 되면서 저들의 종교에 대해 의문을 품고 기독교야말로 하와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종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회중교회의 도움으로 외국선교혐회를 만들고 외국 선교를 위한 외국인 선교학교를 만들게 되어 Obookiah와 그의 친구인 Hopu도 이 학교서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1818년 2월 17일 당시에 26살이었던 Obookiah는 복음을 들고 그토록 돌아가고 싶던 하와이로 가지 못하고 장티푸스를 앓다가 며칠만에 갑자기 죽게되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나는 비록 죽지만 하나님은 무엇이 최선인줄 아신다. 그분은 가장 좋은 방법을 진행하고 계시다”라며 그의 믿음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후 Obookiah를 처음 만나 영어를 가르쳐주었던 Edwin Dwhite는 그 불쌍한 하와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며 몇 달 후에 ‘Henry Obookiah를 기억하며’라는 책자를 쓰게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감동하여 하와이 선교에 대한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년후 그의 친구였던 Thomas Hopu는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하와이에 복음을 심으러 도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820년 보스턴에서 18,000마일을 163일간 항해하여 도착한 선교사들이 코나에 도착하여 집을 짖고 살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교회인 모쿠아이카우아 교회를 세우게되었으며 이 교회는 지금도 계속 성장 중에 있다고 합니다. 당시의 여왕이었던 카아후노마는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였고 복음은 각 섬들로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한때는 세계서 가장 큰 교회가 힐로에 있었으며, 그 교회의 성도들은 선교사로 다른 섬에 파송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하룻저녁에 들렸던 호텔의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하와인들의 민속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섬에 부는 바람‘ 이라는 이름을 갖은 이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약 500여명의 관광객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자가 나오더니 “당신들 각자는 식사 할 때 누구 이름으로 기도하고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이런 귀한 음식을 주신 분께 다같이 기도합시다”하면서 기도를 시작하니 그 많은 관광객들이 고개를 숙이고 갑자기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자는 간절히 음식에 대한 감사를 마치면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참석했던 분들이 모두 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관광지에서 당당하게 관광객들을 모아 놓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들 중에는 모슬램도 있을 것이며, 불교, 유교 등의 각 종파의 사람들이 있을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또한 저들은 열심히 하와이안들의 춤과 노래, 불꽃 춤 놀이를 하면서 중간 중간에 결혼기념에 오신 손님들, 생일을 맞은 분들을 일어서라 하면서 그들의 가정을 축복하고 생명을 축하해주는데 너무나도 기독교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은 한국사람들이 보이니까 한국말로 “예수 믿으세요!”하며 악기 연주 중에 전도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문화와 민속춤을 이용해 선교하는 평신도 선교사들 이였습니다. 정말 얼마나 자랑스럽던 지요! 그들은 저희가 선교훈련을 받고있던 학교 교실에 찾아와 인사와 함께 특별 공연도 해주었습니다. 그 녹음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 Island Breeze 녹음을 듣는다 – (5분 55초)
처음 만나는 하와이언들이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뿌듯한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 형제 자매 분들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있었습니다. 주일엔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의 찬양 팀으로 일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 전파하러 이곳 저곳을 다니는 분들인데 작년엔 북한 선교를 가기 위해 40일을 온 대원들이 돌아가면서 금식 기도하면서 준비했으나 여비가 마련되지 못하여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북한 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알로하’를 전하러 가겠다는 진실한 포부 앞에 저는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왜냐면 저는 단 한 번도 우리 문화나 풍습 등을 통해 그리스도를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단 한 번도 품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의 전통이나 풍습들을 슬쩍 넘어가며 살아갔는데, 그 저변에는 우리 문화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랑보다는 서구문화보다는 열등하다는 생각이 숨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 문화와 풍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조차도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던 것이지요.
저는 하와이 섬을 떠나오면서 저들에게 ‘알로-하’ 인사를 보내며 복음이 더욱 더 하와이 섬에 번창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옛날 귀신을 섬기던 소년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고, 종족의 복음 전파를 위해 그토록 그리워하며 눈물로 기도하던 Obookiah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섬을 복음회 시키고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Obookiah 후예들의 찬양을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가슴 깊은 곳에 ‘알로-하’를 심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하와이 섬에 얽힌 알로하에 대한 인사와 기독교의 뿌리, ‘섬에 부는 바람’이라는 하와이 원주민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또 다른 우리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모습 이대로’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내모습 이대로’ 시간에 나누고 싶은 여러분들의 신앙간증이나, 또는 절망과 아픔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시면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전화나 편지도 좋고요 FAX도 좋습니다. 기독교 방송 전화번호는 (212) 447-0780이며 FAX (212) 725-9190입니다. 주소는 KCBN 1204 Broadway, Suit 400, NY.NY 10001 이며 ‘내모습 이대로’ 담당자 앞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생기가 이번 주간에도 가득하시기를 기도하며 물러갑니다. 알로- 하!
– 윤왼희, 1997년 9월 9일, 미주 한인 기독교방송 <내 모습 이대로>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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