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순이를 처음 만난 것은 약 일년 전이었다. 이제 겨우 한살이 되었다는 용순이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며 내 품에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뽀뽀세례를 쉴 새 없이 하였다. 나는 용순이가 한마디로 귀엽고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용순이가 우리식구가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섭리(?)는 진정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용순이를 내게 맡기고 떠나가는 조카 내외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면서 용순이를 몇 번씩 끌어 안고 애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용순이 주라고 사온 비싼 깡통음식들과 샴푸, 장난감, 이발기구, 기저귀, 이불 보따리 등을 내게 한아름 안겨주었다. 또한 용순이와 함께 놀아 줄 울프맨에게도 쿠키 한 상자를 선물로 잊지 않았다. 늘 외롭게 살아오던 울프맨은 ‘이것이 왠 횡재인가?’ 하고는 용순이를 조심스럽게 건 들여 보기도 하고 따라다니며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은 먼 곳으로 이사가는 조카를 축복해 주면서, “…비록 용순이를 떼어놓고 갈지라도 곧 만날 날을 주시옵고, 자식(?)을 떼어놓고 떠나는 부모의 아픔을 위로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남편의 기도 후에 조카부부는 눈물을 닦으면서, 한껏 마음이 놓인 듯이 “이모부는 어쩌면 저희들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아세요?”하면서 감탄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떠나가는 조카 부부의 등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용순이는 네 자식이니까, 자리 잡는 대로 곧 데려가. 그 동안 잘 키워 줄 테니까 염려 말아!”
우리는 용순이가 아직도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조카의 끔찍한 귀뜸을 들은지라, 목사관에 오는 순간부터 잔뜩 긴장을 하였다. 조금 잔인한(?) 일이었으나 나는 용순이의 목을 묶어, 지하실 부엌의자에 단단히 매어두었다. 용순이는 밤새 잠도 안자고 울어대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누구도 용변을 아무데나 눋고 다니는 자유만은 허락 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하실 문을 열어보니 코를 댈 수 가 없었다. 화가 난 용순이가 여기저기 오줌을 싸서 부엌바닥을 한강을 만들어 놓은 채, 제 자신도 목욕을 하다시피 하였다. 밤새 용순이 때문에 잠을 설친 울프맨이 고약한 냄새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졸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나는 좀더 강하고 엄격한 방법으로 용순이를 다뤄야 되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하였다. “자, 오늘부터 용순이는 길들일 때까지는 하루 한끼 만 음식을 준다. 물은 1/5컵 외에는 절대 주지 않는다” 세 아이들이 항의하였다. “엄마는 용순이 한데 너무 하잖아요? 용순이는 어리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영양공급을 받아야 해요. 엄마 아빠가 없는 어린것의 목을 묶어 놓다니!…” 아이들은 나의 매몰차고 인정사정 없는 태도에 경멸찬 눈으로 용순이를 끌어안고 눈물까지 글썽대었다.
며칠동안을 용순이는 유난히 목이 마른 듯이 안타까운 눈으로 종일 헉헉대었다. 용순이 덕분에 며칠을 금식 아닌 금식을 당하고 있는 울프맨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다니며 밥 달라고 보채었다. 실로 말 못하는 어린것을 굶겨가면서 길들이기란 사실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 후, 용순이는 드디어 용변이 우리 집안에서는 허락이 되지 않음을 끝내 눈치채고 말았다. “목사님 댁에 새 가족이 들어왔군요! 털이 아름다워요!” 용순이와 울프맨이 용변을 보러 밖엘 나갈 때마다 짖어대는 동네 개들의 시샘에, 밖을 내다보던 이웃들의 감탄이었다. 용순이는 이웃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은빛의 긴 털로 덮인 꼬랑지를 애교 있게 흔들어 대었다.
이제 우리 용순이는 목사관의 어느 곳이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가 허락이 되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다”라고 한 사도바울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순이와 울프맨은 오늘도 리빙룸이 떠나가도록 서로를 쫓고 쫓기는 장난질 속에 우리와 함께 평화를 누리며 살고있다.
– 윤 완희, August 26,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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