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완희 (대 뉴욕지구 걸 스카우트 연맹 한인담당), 8/10/1999
지난 주말에는 뉴욕의 롱 아일랜드에 있는 핵쇼(Heckscher State Park)주립공원에 가서 걸 스카우트 단원들과 함께 캠핑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지역이 한창 가뭄 속에 한 여름을 시달리고 있건만, 울창한 공원의 푸른 나무들은 넉넉하게 우리 모두를 맞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캠핑 장에 부지런히 텐트를 치기 시작하였다. 조금 전 까지 만하여도 휭한 잔디뿐이던 자리엔, 어느새 둥근 텐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은 서로의 자리다툼을 하면서, 즐거운 함성과 함께 야외에서의 새로운 경험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걸 스카우트의 이념은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남을 도와주겠습니다. 걸 스카우트의 규율을 잘 지키겠습니다”로서, 자라나는 소녀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전인교육을 위주로 하는 사회봉사단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외캠핑은 자연과의 친화력을 갖게 하며, 남과 동일한 입장에서 함께 화합하며 살아가는 훈련으로서, 어린 소녀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기에, 이런 자연 속에서 지도자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들은 아이들의 협동심을 키우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며 돌보며 가꾸게 하는 일이었다.
여장을 푼후, 시꺼먼 석탄을 묻혀가며 함께 만든 저녁식사를 끝낸 후, 나는 아이들을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의 평온에 초청하였다. 그리고 깨임과 장난 속에 한창 지내다가, 아이들이 눈을 감고 한동안 침묵한 채로 바람소리와 밤벌레들의 음성을 듣게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떠들고 있을 때에는 전혀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갑자기 확성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귓가에 왕왕 들려오는 밤벌레들과 개구리들의 노래는 한데 어울려져 장관이었다. 높고 낮은 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며, 숲이 떠나가도록 화음과 장단을 맞춰가며 우짖는 소리- 그 소리들은 바람의 지휘봉에 맞춰지는 정열적인 자연음악이었다. 그 다음엔, 아이들에게 잔디 위에 벌렁 누워 밤하늘을 보게 하는 일이었다. 한여름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뿌려진 별무리들은 무언 속에 오색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잠시 말을 잊고는 하늘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별빛의 신비 속으로 한동안 빨려 들어갔다. “자! 별들의 이름을 한번 찾아볼까?” “와우! 저별이 북두칠성이네! 오리온이라는 것 아냐?” “…아! 저 별은 무엇이지?” 아이들은 별들의 이름을 찾아 어둠 속에서 그 눈동자들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염원하였다. ‘그래! 이 별들을 너희들의 가슴에 심거라! 인간에게 별을 볼 수 있는 마음이란 귀한 것이야. 거기에서 네 삶의 근원을 찾아보고, 우주의 신비와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단다. 그 가슴 안에 위로와 치유가 있지!’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전지 등으로 불을 밝히며, 멋쉬맬론을 불에 구워먹고, 첫 밤을 각자의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갔지만, 낄낄거리거나 도란거리며 흙의 품에서 밤깊도록 쉽게 잠 못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서늘한 한기 속에 눈을 떠보니, 벌써 찾아온 아침이 환하게 모두의 텐트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침이슬로 흠뻑 뒤덮인 텐트들을 헤치고, 해맑은 소녀들의 얼굴이 이곳 저곳에서 종달새처럼 종알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맑은 공기를 맞이하며 숲길을 산책하였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이 이곳 저곳서 나무 위를 타고 오르는 다람쥐들과, 새들의 쩌렁쩌렁한 노랫소리는 생명의 포만감을 한껏 느끼게 하는 새 아침이었다. 우리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지나, 약간은 어둡고 침침한 숲길에 한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가시넝쿨 사이사이를 건너, 인적이 거의 끊어진 외길에 들어섰다. 숲길의 나뭇잎들은 청청했지만, 어느새 여기저기서 가을의 노랑 옷자락들이 살짝살짝 내비쳐지고 있을 때, 세월의 변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나뭇가지들과 작은 돌들을 주워 와, 인디언들이 숲속에서 길 표시로 사용했던 각종 싸인 들을 만들어 보았다. 나뭇가지와 돌만을 가지고도, 서로에게 위험과 안전, 길 표시를 할 수 있었다는 지혜가 컴퓨터에 익숙한 우리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자연 속의 야외생활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등한 생활이 시작된다. 각자가 최소한의 입을 것, 먹을 것만으로 문명과 잠시 두절된 불편한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불편함 마져도 잊어버린 채 오히려 자연의 때묻지 않은 맑은 정기 속에 완전히 매혹 당하고 만다. 야외생활은 사람과 자연이 얼마나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재삼 경험 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자연의 거울 앞에서 인간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있기에, 어린 시절의 자연과의 친화력을 기르는 일은, 어른이 되었을 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걸 스카우트는 늘 <준비>합니다. 걸 스카우트는 <하루에 한번 이상 좋은 일을 합니다>”라며 목청껏 외치고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어린소녀들을 바라보면서, 이 소녀들이 맡아나갈 새로운 시대에 한껏 소망을 걸어본다. 비록 저들의 미래의 세계에 닻을 함께 내리지 못할지라도, 내 삶의 온갖 경험을 통해, 좀더 밝고 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만족 속에 피곤함도 잊은 채 캠핑 장을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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