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요근래 가을바람이 스산한 산사의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스님께서는 이즈음이면 텃밭에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시느라고 분주하시겠지요? 아니면, 지난 번 서신에 말씀하신 대로 산짐승 놈들 때문에 아예 빈 밭으로 한 계절을 그냥 보내셔, 거둘 것도 없는 가을걷이 신지요? 저는 요근래 불현듯 산사에 계신 스님을 생각하며, 한동안 하나님 앞에 스님과 불교계를 위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스님의 마음이 요즈음 얼마나 불편하셨겠습니까? 신문에 대문짝 만한 사진에, 몽둥이와 야구방망이를 손에 든 수도자들의 치고 받고 떠밀며,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불자도 아닌 제 마음이 이토록 아프고 괴로웠는데…!
지난 94년에 있었던 조계사 사건을 두고 스님이 개탄하셨던 음성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람은 내적인 것으로나 외적인 것이든 모든 사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욕망이나 아집에 사로잡혀있는 한,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가득차 있는 우주의 신비를 감지할 수 없다. 자신 앞에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만이 명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세속적인 것을 등지고서도, 기득권 앞에는 물불을 못 가리는 추태를 저지르고 마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이 어찌 불교계 만의 모습이라고 우리는 시치미를 떼고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이 한국에서 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어찌 웃어넘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네편 내편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이성보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이들이, 불당과 성전을 더럽히며, 명예로운 인간이 되기보다는 금수와 같은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뜻과는 전혀 가당치도 않는 일들을 가지고 말입니다.
문득 연꽃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스님은 수년 전에 연꽃철이 되어, 경복궁의 향원정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리운 신비스런 향내를 들으러(맡으러) 나들이를 갔더니만, 이게 웬걸! 연꽃은 온데간데없고 비릿한 잉어 떼들의 비릿내 만이 풍기고 있었다고 하셨지요. 스님은 놀란 발걸음으로 비원을 찾아가 보니, 거기도 연꽃은 자취도 없었다고 놀라 하셨습니다. 그리곤, 불교 박해가 심하던 조선왕조 때에도 가꾸어온 꽃이, 자유민주체제 아래서 그 자취를 감추었노라며 개탄하셨습니다. “꽃에게 물어보라. 꽃이 어떤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라며 스님은 아파 하셨습니다. 저는 스님의 말씀에 절대 동감했습니다. 꽃이 어디 감히 어느 종파에 속할 수 가 있겠습니까? 경복궁에, 비원에, 물이 고인 대한민국의 연못에는 연꽃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곳은 그네들의 오랜 역사의 자리이자, 민족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괜한 인간들이 스스로 세운 거룩한 생각의 방을 가지고, 그 거룩한 꽃에게까지 시비를 붙여서, 함부로 꺾고 뽑아 내버리며 박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매하고 유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왜 그 자리에 외국서 수입된 잉어 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 살진 잉어 떼들이 더렵혀논 물에서 우리는 무엇을 묵상하고, 무슨 향내를 맡는단 말입니까? 스님도 아시겠지만, 청와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종교계의 바람은 무척 억세왔습니다. 마치도 권력이 종교를 비호하듯이, 아니 종교가 권력을 비호하듯이 마님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저들의 기득권 싸움은 보이지 않게 치열했지요. 이것은 이미 예수님 앞에서나 부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없는 모양새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정권 아래서든지 종교의 자유는 의당히 보장받아야 되며, 정의로워야 되며, 자주성과 자비, 사랑의 실천으로 서로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종파를 얕잡아보아 함부로 행동한다면, 이미 종교의 본질에선 떠난 것이지요. 그럼에도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아나가니, 귀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법정스님, 깊어 가는 가을 속에 풍경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사람도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깊어간다고 하지요? 철없는 이들에게도 언젠가 철이 들 기회가 오겠지요. 이 가을에 굴뚝도 손보시고, 마른나무 땔감과, 냇물을 미리 부엌으로 당기시어, 한 겨울 눈 속에 갇히셔도 넉넉히 견뎌 낼 수 있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거하시는 산사를 그려보노라니, 세월의 개울물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옵니다.
윤 완희 드림
10/16/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