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혁명과 부활 사이를 건너는 이야기이다—
자유를 향한 정의의 끝없는 투쟁.
그 자유는
우리 주님의 삶이었다.
이천 년 전 중동에서
예수는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십 년 전, 극동의 한국에서
젊은 목소리들이 거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건이 모두 4월에 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과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정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혁명과 부활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방향이다—
오늘의 역사 안에서
참된 미래를 가리키는 이정표다.
오늘날
전통과 권위,
교리와 의식은
종종 영혼을 질식시킨다.
구조는 남아 있으되—
화려하게 장식된 채—
그 안의 생명은 비어 있다.
고난을 피하고,
희생을 거부하며,
권력과 확장을 좇는 모습—
바벨처럼
자기를 잃어버린 시대다.
불의와 부패 앞에서
양심의 침묵,
용기의 후퇴는
일그러진 신앙의 형상을 드러낸다.
우리는 메시아를 찾지만
발견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우화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두려움과 어둠,
죽음과 침묵으로 가득 찬
봉인된 무덤 안에서
메시아를 찾아왔다.
그러나
무덤은 비어 있었다.
부활은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락방에는
백이십 명이 모였다—
애도하는 이들이 아니라,
영혼의 혁명가들로.
그들은
통제되지 않은 자아에 맞서 일어섰고,
내면의 제국에 맞서 싸웠다.
그들의 투쟁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끊임없는 혁명이었다.
오늘,
젊은이들의 심장 속에서
양심이 다시 깨어난다.
4월의 소리가 되살아난다.
그것은
역사 안에서 자유와 생명을
다시 일으키는
메시아의 목소리다.
이미 죽은 자로 여겨진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외친다.
“나사로야, 나오라.”
썩어가는 한국의 무덤 앞에
악취는 남아 있지만,
4월의 외침은
침묵을 거부한다.
골고다는 훼손되었고,
십자가는
값싼 장식품으로 팔린다.
이것이 고난과 부활의 언약인가?
이것이 용기의 증언인가?
아니다.
그것은 명령이다.
사는 방식이며,
생명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방황하는 한 민족의 영혼을 부른다.
삼천리 강산,
오천년의 시간이
이 땅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곳,
만남의 자리에서
한국의 혼돈은 일어나
하늘과 땅을 흔들며
참된 자유로 울고,
참된 평화로 울 것이다.
일어나라, 4월의 소리여!
혁명의 외침이여!
젊은 영혼의 목소리여!
아—
4월의 소리여.
– 윤 태헌, 1972년 4월 15일
[Beginning Series – Par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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