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한인사회에 걸스카웃 운동을 일으키는 일로 몇 달간 기도하며 애쓰게 되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걸스카웃에 보내다보니, 스카웃운동에 대해 가까이하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거의 100여 년 간 발전된, 전인교육과 사회봉사, 자연관리, 인류화합이라는 이념에 매력을 갖게되었다. 그러다 보니, 걸스카웃에서는 누군가가 한인사회에 다리를 놓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러 가지 일에 발벗고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동기는, 한인사회에 청소년문제들로 가정문제 연구소의 상담건의 보고가 해마다 높아져 가고 있는 이 때에, 너무나도 귀한 프로그램을 특별히 돈 안들이고 접목 만하면 되는 것이기에 나로서는 신명나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좋다고 하여서 남들도 그렇게 쉽게 동참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특별히 이민사회라는 한계의 벽에 부딪쳤을 때, 나스스로 실망과 절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걸스카웃의 이념과 유익, 모두에게 얻어질 보람있는 삶으로의 방향 등을 제시할 때, 동감은 하여도 그것을 어떻게 나와 교회와 지도자로서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 와서는 “할 사람이 없다” 또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들로서 끝을 맺는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정말, 할 사람이 없을까? 아직은 때가 아닌가? 아이들은 십대임신이다 가출이다 하여 방황하는데도 때가 아닐까?”라는 자문을 수없이 해보면서, 어딘가에, 누군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소망을 붙들고 이곳 저곳을 두드리게되었다. 나의 애타는 마음으로 약 2,000여명과의 대화가운데, 단 한 분이 자원봉사자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왔다. 나는 이분의 “예”라는 대답에 큰 희망을 걸고 각 지역의 분대조직에 여념이 없게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려움 앞에 서게되었다. 분대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그 지역의 한인교회들에게 장소를 의뢰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들로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에 미국교회서 남편이 목회 할 때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는 주중 내내 커뮤니티에 오픈이 되어, 교인이 아니더라도 마을에 사는 이들의 모든 행사들이 쉴새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이들을 위한 모임이 있었으며, 술중독, 마약으로부터 치료받은 이들을 위해 계속적인 도움을 주는 그룹들이 모였으며, 동네의 시니어시티즌 오케스트라들이 모여 늘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 스카웃활동이 그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심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국사회의 교회는 동네의 공회당처럼 누구나 건전한 프로그램을 위해 활용되는 공공의 장소였으며 만남과 축제, 예배, 예식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들의 열려진 마음 때문에 한인교회들이 이민초기에 예배당을 빌려 쓸 수 있음을 우리는 모두가 체험한 바이다.

할 수 없이 미국인들의 열려진 마음에 다시 한번 기대 할 수밖에 없어, 미국인 교회의 목사님과 관리위원회에 편지를 써서 장소를 쓸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그들은 의외로 너무나 반가운 표현을 쓰면서 “예스!”하며 대환영이었다. 그리고 목사님과 관리위원회는 덧 붙여 말하기를 “한인사회가 이토록 훌륭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축하하며 대단히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저들의 태도에 오히려 어이 벙벙해지며, 비로소 오른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스스로가 내 쉴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저들의 눈이 되어 우리이민사회를 되돌이켜 보게되었다. 우리끼리는 신앙심이 대단히 깊고 골목마다 내 성전들은 늘어가고 있지만, 미국사회속에 비쳐지는 한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아직도 폐쇄된 민족처럼 성벽과 같은 자체교회를 세운 후, 사회에 문빗장을 굳게 잠가두고 있지나 않는가? 어느 사회나 단체나 종교, 개인의 열려진 마음의 교통이 이뤄져야 만이 서로배우고 건전하게 성장하고 성숙된다.

올해도 많은 십대의 소녀들이 걸스카웃의 금상을 받았다. 그들은 자체 프로젝트를 마련하여 사회봉사를 한 소녀들이었는데, 그들의 프로젝트는 교회에서 말하는 선교와 같은 것이었다. 한 소녀는 헬렌켈러 재단을 위해, 양서를 자신의 음성으로 녹음하여, 시청각장애자들을 위해 수백 개의 테입을 헌납했으며, 어느 소녀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서, 이 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한 흑인 여성들을 찾아내어 책자를 직접 만들어 공급했으며, 어느 소녀는 스페니쉬계로서 영어를 못하는 자기민족을 위해, 스페니쉬 말로 병원 응급실에 간단한 색칠용 책자를 만들어, 그곳에 부모 따라 온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일을 하였다. 또한 어느 소녀는 응급구급법을 배워서, 동네사람들에게 가르쳤으며, 어느 소녀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명절 때마다 사랑의 선물을 보내는 일에, 각 점포들을 동원하여 솔선한 일들이다. 이 소녀들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순수하게 사회를 위해 봉사했는데, 이들을 위해 대학 장학금이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성숙한 신앙인과 사회가 되는 것은, 남을 돌볼 줄 알고, 각자의 특성을 인정하고, 함께- 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설 때만이 가능하다. 오늘도, “나”만을 염두에 두는 “우리”가 되지 않고, “모두”와 함께 하는 “우리”가 되기를 염원해 보며, 스카웃을 통한 선교가 교회와 사회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윤 완희, 9/9/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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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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