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한국에서 여동생 가족이 이민을 왔다. 나는 동생에게 어디서부터 이민생활을 시작시켜야 될지 몰라 한동안 궁리해야 만 했다. 대부분의 이민생활의 시작은 누가 공항에 마중 나왔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민생활의 직업과 삶의 지도가 그려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모인 언니가 마중 나왔다고, 중학교 수학선생을 남편으로 둔 여동생이 갑자기 사모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이리저리 궁리 끝에, 평소에 안면이 있는 분의 선물가게에 동생을 선뵈었더니, 당장 일자리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여동생은 익숙지 않은 언어와 이민생활을 잘 적응해 주었다. 동생을 바라보면서, 20여년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까지 하였다.
어느 날, 조금씩 영어가 귀에 익어 가는 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언니! 여기 사람들은 물건값을 치르고는 꼭 한마디씩을 하는데 왜 그러치?” “아니, 뭐라 하는데?” “… I’m crazy!” ”…아엠 크레이지? 아니 그 사람들이 뭘 샀기에?“ ”요즈음 포키문(Pokemon)이라는 카드가 한창 유행하는데, 애들 데리고 와서는 몇 개씩 사면, 일 이백불이 후딱 올라가는데, 없어서 못 팔정도야! 그것뿐이 아니야, 어른들도 비니 베이비라는 인형들을 모으느라고 열기가 대단해. 그리곤, 돈을 낼 때면 늘 ‘아엠 크레이지! 아엠 크레이지’ 하거든!“ 우리는 어이없이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가 박장대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언젠가 성탄절에 막내아들 녀석에게 수백여불이 되는 깨임 시스템을 할 수없이(?) 크레딧 카드로 사주고는 ”아엠 크레이지!“하고 씩씩거리며, 상점 문을 나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정신이 화들짝 들며 최면에서 깨어나듯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미국은 최면술의 나라이다. 무엇이든지 매스컴을 타면 유명해지고, 무가치한 것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고, 유치한 것들이 고상한 것으로 탈바꿈되어, 그 틈을 이용한 상술은 사람들의 혼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만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넘치도록 마련해줘야 만이 부모의 할 일을 한 것 같다. 모든 가치관이나 양심도 물질문명 앞에서 기를 쓰기가 힘들다. 대통령의 땅에 떨어진 윤리와 도덕을 감싸며, “우리는 성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아니다“라고 국민들은 호들갑을 부린다. 어수룩한 나라들이, IMF로 고개 숙인 가장들이 거리를 헤매 이는 동안도 이곳은 전례 없는 호황으로 부를 만끽하며 누리고 있는 중이다. 세계곳곳에 자국의 경제 유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 전쟁을 허락하고, 코소보의 난민들과 죄없는 타국의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가고, 내 자식이 히틀러의 생일을 기념하여, 죄없는 학우들을 몰살시키는 계획을 꾸미는 동안에도,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분주하기 만 하다. 하물며, 뒤늦게 이 땅에 이민 온 우리들도 잘살기 위해 이민 왔지만, 그 최면에 걸려 죽으라고 일밖에 모른다. 물질이 정녕 사람을 위한 것인데, 사람이 물질에 끌려가다 보니, 소유 후에도 “아엠 크레이지!”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고, 사람은 있어도 이웃이 없고, 교회는 많아도 성도가 드물고, 영혼이 있어도 육체만이 살아가는 시대에 진정한 너와 나의 만남이 그리워진다.
내 자신을 돌아보아도 풍요 속에 느끼는 빈곤은 참으로 심각할 정도이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더 가져야 만이 이 공복에서 헤어 날 수 있으며, 소유의 만족을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아- 아- 봄이 막 지나간 자리마다 에는 초록의 향연이 폭죽으로 터져 내리고 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피어내던 목련의 화려한 외출 후, 앞다투어 솟아오르는 잎새들의 서걱이는 소리. 귓전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 감미로운 새들의 합창. 목사관 창문을 타고 오르는 분홍빛 장미꽃의 향취. 지하의 암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차디찬 생수. 아침 햇살 속에 영롱한 오색빛 이슬들의 춤. 황혼 길에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 달과 별… 정녕 나는 예사로운 부자가 아님에, 또 다시 염치없는 음성으로 나직이 주님께 고한다. “오 주여! 나에게 온전한 시력과 온전한 정신을 잃치 않토록 붙들어 주옵소서!”
정신차리고 살아도 힘든 세상에 “아엠 크레이지!”를 되뇌며 살아온 내가 문득 한심해진다.
– 윤 완희, 5/11/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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