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꿈

새해, 새천년이라는 이 거창한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굉장한 소망을 올해의 삶의 벽에 걸어보고자 두리번 거리었다. 그런데, 새천년이라고, 특별하게 떠오르는 어떤 단어하나 없이, 문득, 유년의 꿈 만이 다시금 살아오른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졸업시즌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신상명세서를 적으며,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너는 이 다음에 무엇을 할래?” 나는 주저함 없이 선생님께 말하였다. “목동이요!” “목동?”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 여선생님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깔깔거리는 바람에, 반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 여선생님이 왜 그토록 웃었는지 이해가 지금도 되지 않지만, 나의 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목동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시절에 목동이 되고자 결심한 동기는, ‘대니보이’라는 유행가 한창 불려지던 유년시절 부터이다. 그 노래는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퍼지고…”로 불려지는데, 그 가사 속에서, 자연에의 귀로에 눈이 화들짝 뜨이게되었다. 그리고, 어린소녀의 꿈은 단숨에 산골짝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만 것이었다. 나는 이 새천년의 아침에도 목동이 되고 싶다는 그 변함없는 작은 소망 속에, 내 모습을 찾아 가고 있는 나를 만나가고 있는 것 만은 사실 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목동의 일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염소떼를 몰고 이산저산을 헤매이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 보자. 더군다나, 쌔까만 똥을 흑진주처럼 빠뜨리고 다니며,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목청을 돋구며 “매애, 매애”하며 엄살을 부리는 동물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목동의 꿈을 꾸는 것은 무엇일까? “목동“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소녀를 향한 담임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이 새천년의 아침에 들려지는

철없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웃으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노래는 애창하는 가운데, 성스러운 기쁨과 평화를 만날 수 있는 성서가 자연 속에 있음을 긴 세월 속에서 발견케 되었다.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들과 빗소리, 눈이 쌓이는 산골짝을 헤집고 떠돌아 다니는 바람과, 개울물 소리, 얼음깨지는 소리들. 봄이면 돋아오르는 새싹들의 노래가 들려지는 자연을 흠모하며, 나는 자신을 “목동”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선생님은 목동이라는 이미지 속에, 소와 말똥 냄새에 절어 살아가며, 새벽잠을 설치며, 소죽을 끌이거나, 염소떼와 파리 떼를 몰고, 다니는 가난한 소녀를 생각하며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앙생활도 자연 속에 들어 갈 때, 영혼이 끝없이 열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발견한다. 저녁노을이 붉어져 오를 때, 떠나가는 태양이 서운하여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글썽이거나, 호숫가의 오리들의 물장구 속에서 기쁨과 자유함을 발견하는 것,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다람쥐들의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성품을 만날 수밖에 없어, 웃어대던 시간들- 학교공부에 매이는 것을 가장 큰 고문으로 여겨, 공부를 그토록 싫어하던 학창시절. 모든 물체의 색깔에 예민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즐기며, 손 놀림을 좋아하여, 종이를 오리고 만지고 리본을 매는 것을 좋아하지만, 기계공학과 수학의 모든 부호엔 머리가 아파, 아예도 보기도 원치 않던 나.

– 윤완희, 1/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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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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