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운동경기에 갈 때는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간다. 테니스, 야구, 축구, 풋볼 장엘 가도 비슷한 분위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오페라 공연에 갈 때는 어떠한가? 마치도 자신이 극중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화려한 의상과 장식품으로 치장한 선남선녀들이 분위기에 맞게 우아한 표정과 행동으로 나선다. 평소에 품위를 전혀 모르고 살던 부부들도 그 날, 그 시간만은 위 아래로 품위가 철철 넘친다. 캰츄리뮤직 콘서트는 어떤가? 너나 할 것 없이 청바지와 부츠, 카우보이 모자에, 목에는 가죽 목걸이를 한 청중들이 구름떼 처럼 모여 키타음악에 흥을 돋구며 여흥을 즐긴다. 가수와 청중이 모양새와 분위기를 함께 하여 즐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창 인기절정 중에 있던 70년대엔, 남성들은 그가 즐겨 입던 높은 칼라의 흰 재킷과 긴 머플러를 목에 걸고 그와 함께 “Love me tender”를 부르며, 여인들에게 사랑을 구하지 않았던가?
우리 집 막내도 T.V에서 중계되는 야구 깨임을 볼 때는 양키 팀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관람한다. 그리고 손에는 야구공과 글로브가 놓여져있다. 아이는 여차하면 공을 받을 기세가 되어 글로브를 꼈다, 벗었다한다. 어느 날, 아이는 흥분하여 하마터면 T.V 화면을 깰 뻔한 일이 일어났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얘! 그렇게 차려입고 모자 쓰고 앉아서 보면, 깨임이 더 재미있니?”하고 핀잔하듯이 말하였다. 아이는 금방 장난기 어린 눈으로 “엄마가 이 모자를 쓰고 깨임을 관람해보세요!”하면서 제 머리에 쓰고있던 모자를 얼른 내 머리에 눌러 씌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모자를 쓰는 순간에 나는 야구 깨임 현장에 이미 청중들과 함께 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어느 편이 이기든지 지든지 상관 않던 내가 기왕이면, 양키 팀을 응원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였다. 깨임의 열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으며, 더 이상의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속으로 탄복을 하였다. ‘이래서들 장단을 맞추는구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일들을 흔히 체험한다. 교회에 장단을 잘 맞추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언제나 잔칫집 같다. 어린아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의 표정에 활기가 있고, 삶에 감사의 제목들이 넘친다. 교회가 교인들의 삶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영적인 질서와 체계가 잘 성립되어있다. 성도들은 신앙선배들의 믿음을 귀하게 알고 믿고 신뢰한다. 목회자의 비전과 사역의 동역을 위해 늘 기도하며 협력하는 목회지는 푸른 초장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목회자의 뒷모습이 활달하고 가벼워 보인다. 어찌 신앙생활을 한판의 멋진 깨임과, 열기로 가득한 음악 공연 장에 비교하랴!
실리주의자들인 미국인들의 운동경기나 음악회 등에 임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여러 모의 깨달음을 갖게 하듯이,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삶의 정황 중에도 이웃과 함께 장단을 잘 맞출 줄 안다. “인생은 감동을 느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너와 나의 삶이 축제의 한마당에 함께 어울려 서로를 부축이고, 신명나게 하고, 격려를 할 때, 우리의 여정은 결국 손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패배와 승리-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무슨 일을 만나든 함께 장단을 맞추며 격려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한, 우리의 이민생활은 더 높고 웅장한 승리의 개가를 부르리라!
– 윤완희, 10/28/1998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