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것은 당신의 새 주소이니까 절대 잃어버리면 않대요! 알았지?” 약 2년전, 시큰둥하게 들은 척 만척하는 나에게 남편은 몇 번씩 다짐하면서 이상한 부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더 붙이기를 “당신의 주소로 들어 갈 때, 비밀번호를 기억하여서, 아이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해야한다”며 가장 외우기 쉽고 잊기 어려운 단어하나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본시에 비밀이라고는 간직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기에(하나님이 웃으실 것이다), 나만이 아는 비밀단어를 만든다는 것조차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나만이 아는 비밀단어를 생각나는 대로 컴퓨터에 집어넣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전혀 말도 안돼는 http://www.com등으로 시작되는 주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용조차 하지를 않다가, 막상 필요하여 찾아 들어갔다가 길을 잃어버렸음을 발견 한 것이었다. 분명히 어디다가 써 놓긴 했는데, 찾을 수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혀를 차며 또 하나의 주소를 만들어 주곤 “이 주소를 잊어버리면 당신은 21세기의 미아가 될 것이다”라는 경고(?)까지 하였다. 그리곤, 또 다시 비밀 단어를 요구하기에 나는 남편에게 비밀단어를 만들어 주고는,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내 대신 외워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리곤 처음 몇 번은 주소를 갖고도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가지 못하여, 아이들에게 “얘들아, 엄마의 비밀단어가 뭐였지?”하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엄마! 그것… 이잖아요!” 하면서 신명나게 알려주곤 하였다. 이렇게 하여서 나는 넷티즌 가족에 겨우 끼고 말았지만, 아직은 겨우 E-Mail이나 주고받을 정도며, 어떤 정보를 찾아들어 갈 때면,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내어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벌써 저희들 나름대로 각자의 홈페이지를 갖고, 아름답게 디자인한 채, 많은 정보들이 오가는 것을 볼 때면, 혼자 탄복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요근래에 또 다시 컴퓨터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받고있다. 그것은 온 가족들이 함께 하는 E- Circle이라는 가족 프로그램 때문이다. 가족이면 누구나 참여하여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서 E- Circle 안에는 가족들의 스케줄 기입과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게 되어있는 편리한 공간이 무한정으로 마련되어있다. 그런데도 나는 문명의 이기 앞에 인간적인 정과 향기를 몽땅 잃어가고 있다는 자존심(?) 때문에,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가족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나누었던 화제들 속에 나는 번번이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음을 종종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문명의 이기 앞에서 두려워 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지금의 상황이다. 나는 변화하기를 거부해도 하루가 다르게 생활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방식의 세계가 문전에 기다리고 있다. 몇 달 후면 만약에 다가올 Y2k를 위해 사람들은 식량과 물, 초, 성냥을 준비하느라고 야단법석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먼 나라의 공상세계에서의 일처럼 현실감이 전혀 들어오질 않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나는 오늘도 E- Circle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불현듯, 코스모스 꽃이 만발한 흙내음 나던 옛날, 옛적의 우리 집 앞마당이 한없이 그리워져갔다. 우리 집은 언제나 대문이 활짝 열리어 오가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렸으며, 아기를 업은 체 함지박을 이고 다니며 장사하는 아낙네들의 쉼터가 되곤 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푸짐한 부추전과, 붉은 사과, 햇밤을 먹으며 함께 하노라면, 이웃들이 하나 둘, 모여 오고, 입심이 쌔기로 소문났던 서순이 엄마의 반복되는 인생대하드라마가 눈물나게 펼쳐지곤 하였다. 그 뿐인가 그곳은 동네 아낙네들의 상담장소요, 장성한 자녀들의 중매현장이요, 동네 강아지들의 만남의 장소요, 바람결에 실려온 벌들과 잠자리 떼, 생명이 있는 모두의 축제가 이뤄지던 곳이었다. 그곳엔 비밀번호 없이도 누구나 들락이며 희로애락을 나누던 공간이 아니었던가!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 하듯이 지나간 세월의 뒷자락을 안타깝게 잡으려는 나에게 들려오는 말씀이 하나있다. 그것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전 1: 24-25) 우왕좌왕하는 시대를 붙들어주고, E-Circle의 문전에 당황하고 있는 내 영혼을 위로하는 귀를 어느새 활짝 열어주는 이 가을의 말씀이다. 아- 아-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영원한 나의 왕이시여!
— 윤 완희, 9/7/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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