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교회 중고품 바자회에서 헌 신발 하나를 샀다. 곤색의 구두였는데, 굽도 그리 높지 않고 모양도 근사하고, 거의 새 것처럼 생겼기에 $3.00을 선뜻 투자하였다.
그런데, 나의 곁에서 신발을 고르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여집사님이 빙긋이 웃으면서 “사모님! 그것 참 잘 사셨어요. 사실은 제가 내놓은 것인데 딱 한번밖에 안 신은 것이랍니다. 지난해 한국방문 때, 친척 되시는 분이 선물로 사주기에 얼떨결에 갖고 왔는데, 저는 발가락이 아파서 도저히 신을 수가 없었어요.”하면서 나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부축였다.
오랜 목사관 생활 속에 나는, 평소에 옷이나 신발을 몸에 맞는 것을 사서 입기보다는, 아무 것이나 생기는 대로 몸과 발을 맞춰 입고 신게 되었다. 신발이 좀 크면, 앞부리 쪽에 솜을 넣어 신는다던가, 작은 신발은 발을 신발에 약간 구겨 넣고 다닌다거나, 옷이 크면 줄여서 입고, 작으면 늘려서 입고 다녀도 ‘패션 감각이 꽤 괜찮은 사모’로 알아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신발은 나의 통념을 조롱이나 하듯이, 날이 갈수록 점점 왼쪽 새끼발가락을 압박하며 양보할 기세를 전혀 보이질 않았다. 교회에서 가끔 곤색 신발이 눈에 띌 때마다 “사모님, 참 잘 어울려요!”하며, 인사하는 집사님의 미소 진 얼굴을 마주치게 되면 순간, 아픔이 사라졌다가도 아무도 보지 않으면, 발을 절뚝거리며 걸음조차도 똑바로 걸을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나는 결국 그 신발을 포기하기로 작정하게 되었다. 왜냐면, 이제는 다른 신발을 신어도 발가락이 아파 걷는데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난생처음으로 발 전문 의사를 찾게 되었다. 연세가 70이 가까이 되어 보이는 유대인 의사는 “동양인에겐 발병이 거의 없어, 이 방면엔 동양인 의사들도 거의 없다”며 보기 드문 동양인 환자를 환영했다. 나는 의사 앞에서 그 동안의 통증과 괴로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일일이 호소하였다. 의사는 나의 장황한 설명에 입맛을 ‘쩍’ 다시었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조그마한 칼을 꺼내어 새끼발가락에 생긴 콘을, 무우 베어 내듯이 ‘싹둑’ 잘라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무례한(?) 행동에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악’ 하고 비명이 터질뻔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금 전까지 만 해도 건드리면, 그토록 아팠던 새끼발가락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전혀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새끼 발가락에 칼 한번대고 반창고 하나 붙여준 덕으로 이 백불 짜리 청구서를 받았지만, 의사 사무실을 나올 때는, 가벼운 걸음걸이 속에 휘파람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삶의 현장에서, 새끼발가락에 생겼던 콘의 아픔을 내 영혼 곳곳에 갖고 살 때가 종종 있다. 평소의 내 경험과 상식을 가지고 억지로 신발에 발을 맞춰 신고 다니는 고집을 부리다가, 끝내는 영혼의 중심을 잃고 뒤뚱거린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지! 언제든지 만병의 치유 자이신 주님께 가서 고하기만 하면, 칼날 같은 의로운 치유의 광선이 내 영혼의 군더더기들을 순간에 수술해 버리고 아물게 하지 않던가? 만약 그 분이 치료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상처난 가슴은 곪아터져서 지금은 어찌 되었을까? 그러나 그 분은 그 많은 상처를 시시때때로 치유하시고, 한번도 치료비를 내라고 청구서를 내 앞에 내밀지도 않으셨다.
내가 잘나서 사는 줄 착각하고 있던 나는, 그 조그만 발가락의 아픔 때문에 걸음조차도 제대로 걷지 못하던 연약한 자가 아니였던가?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눌러보고 꼬집어 보아도 꺼떡이 없는 나의 새끼발가락. 한 몸안에 있어도 그토록 그윽한 평안함을 신발 속에서, 평생 누리고 있었음을 이제사 깨닫게되니 참으로 감사치 않을 수 없다.
— 윤 완희, 10/22/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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