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리의 새”

무엇이든 되어도 괜찮다—
모든 형태, 모든 모습.
하늘의 창조성은
부서지지 않고
변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평화를 향해 걷는 하나의 몸,
스스로의 힘을 써버리는 파도처럼,
하나의 중심 없이 솟아오르는
교향곡처럼.
형평을 향해 기울어지는 세계—
강함은 절제를 배우고,
약함은 들어 올려지며,
함께 균형을 찾는 음악.

일상의 양심이
깨어난다,
늘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아보며—
평범한 시간 속에
조용히 접혀 있던 위대함을.

우리는 한 이름을 기억한다:
스펙터클 없는 악,
정중하고 효율적으로
자기 일을 해내던 악.
그러나 이제 들어라—
얼음이 깨지는 소리,
우리 안을 가로지르는 천둥,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가
굳어 있던 것을 풀어낸다.

인간의 마음 안에서도
어떤 전환이 일어난다—
반사에서 숙고로,
공포가 먼저 발화하던 자리에서
의도가 방향을 잡는 자리로—
편도체가 이끌던 반응에서
전전두엽의 의지가 수행하는
더 안정된 작업으로.

정의는 빛을 요청한다.
숨 쉬는 법을.
맥박이 있는 질서를—
눈동자 안에 숨겨진
화가의 이니셜처럼,
너무도 분명한 곳에서
인내하며 기다리는 진실들,
연석 가장자리에서
고집스럽게 피어나는 수선화처럼.

그리고—
천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하늘을 다시 써 내려가는 살아 있는 흐름,
숨결처럼 유연하고,
뛰는 심장의 가까움으로
따뜻하다.
그들은 함께 회전하고 접히며—
의도를 가진 구름이 되어—
서로를 감싸 안고,
두려움은 표적을 잃는다.

괜찮다.
삶은 세게 누르고,
길을 봉인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는 흐르고,
형태는 여전히
뚫고 나오는 법을 기억한다.

유명한 얼굴은
살짝 시선을 비켜 두고,
응시하지 않고도 본다.
차가운 공기, 몰려오는 폭풍—
그럼에도 새들은 떠오른다,
공포를 넘어,
허락을 넘어.

어둠은 그 소리를 붙잡지 못한다.
봄은 요란하게 도착한다.
탄생은 언제나 그렇다—
침묵을 깨뜨리는
사랑의 폭죽처럼.

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세계.
혀에 아직 낯선 계절.

들리는가—
완성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인간의 존엄이
함께 솟아오르는 소리?

밀라노–코르티나의
얼음과 눈 위에서,
천 마리의 새가 날아오른다—
번쩍이는 엣지,
빛을 가르는 몸,
기술과 엮인 에너지,
정밀함으로 벼려진 아름다움.

그들은 얼어붙은 땅에서 솟아오른다,
숨과 근육과 결의로부터,
중력이 한계를 강요하는 곳에서
더 높은 곳을 찾아.
각각의 도약은 압력에 응답하고,
각각의 회전은 하늘을 넓힌다.

추위에 맞서
그들은 자유를 배운다.
기대의 무게에 맞서
날개를 더 멀리 펼친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세상 한가운데서 날며.

하얀 침묵과
강철처럼 빛나는 공기 위에서,
그들은 가장 높은 곳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계 없이
널리 날아간다.

이제—
시간마저 신성한 지금,
기뻐할 순간이다.

— 윤 태헌, 2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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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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