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종료주일 새벽에 향년 81세가 되신 시아버님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호상이라고 서로 서로를 위로하며, 천국가신 아버님을 기쁨으로 환송하자고 하였지만, 막상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자식의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너무나 큰 무너짐이며 상실이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던 새벽, 남편은 교회서 새벽예배를 인도하고는 갑자기 심장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였었다. 나는 염려가 되어 병원응급실로 가기를 권유했으나, 남편은 좀 기다려보자며, 계속되는 아픔 때문인지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르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보니, 시아버님이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이 전화통에 남겨져 있었다. 남편의 의식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아버님과의 육신의 작별로 인해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부모와 자녀가 한 몸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경험케 되었다.
장례가 끝나자, 시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와서 중요한 것이 있는지 봐달라고 하시었다. 이젠 홀로 남아 여생을 보내실 어머님의 아파트를 들어서면서, 왠지 낯선 감이 들 정도로 서먹해졌다. 시어머님은 아버님이 그 동안 이민 오셔서 써두었던 여러 권의 노트를 우리 앞에 펴놓았다. 그 노트들은 대학노트가 아닌, 해가 지난 달력들과 광고지들의 빈 뒷면을 밥풀로 부치고 줄을 그어 만든 공책들이었는데, 거기에는 수년동안 나가시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제목과, 말씀, 교인 제적 수를 한 주도 빠짐없이 꼼꼼히 적어두셨다. 또한 아버님은 그 동안 읽으셨던 성경통독의 횟수도 하나 하나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지난해로서 39번이라는 숫자에 가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아버님의 기도가 적힌 한 권의 노트였다. 그 노트에는 한자 한자 정성껏, 아버님의 심령을 바쳐서 쓰신 기도문들이 깨알처럼 매일 적혀나가고 있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여! 주님은 나의 시야밖에 숨어 계시고, 주님은 나의 지식밖에 계시 오며, 주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다르고 주님의 길은 내 길과 다르나이다. 그래도 주님은 나의 생명에다가 주님의 영을 불어 넣으사, 나의 마음으로 주님을 찾게 하셨고 나의 심령을 기우려 주님을 사랑하게 하셨나이다… 나는 비록 만사에 주저하며 또 일에 실패한 자로되 주님의 손이 나의 생명을 안찰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이 내 처소가 되시고, 그 영원하신 팔로 나를 안으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혹 무엇을 살 때에는 아무 것도 없는 자 처럼하게 하시고, 내가 만일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때에도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하시옵소서..내가 비록 하고자 하는 선을 내힘으로 행하지 못하나 만일 내가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 하시고 또 나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로 쓰여진 기도문들은 아버님이 직접 쓰신 것인지, 아니면, 어느 누구의 기도문을 배껴쓰셨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아버님은 매일 이러한 장문의 기도문을 갖고 영적인 씨름을 하면서 남은 여생을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사실 아버님이 살아생전 어머님으로부터, 기도도 잘하지 않고 성경도 잘 읽지 않는다고 구박(?)받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어린애와 같은 맑은 심령으로, 늘 묵상가운데, 하루의 정리된 기도를 가지고, 그 분의 영혼을 늘 예리하게 관리하셨음을 자손들은 비로소 알고 감사케 되었다. 온 가족들은 아버님의 유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의논하다가, 아버님의 기도 노트는 내가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 하여, 소중하게 보관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땅을 떠나면서, 많은 유품들을 남긴다. 그리고 그 남긴 삶의 흔적들을 통해 남은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된다. 시아버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는, 나는 진정으로 그 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냐 그 분을 알 것 만 같고, 아버님이 걸으셨던 순례의 길을 나도 부끄러움 없이 걸어야겠다는 다짐이 서게된다. 시아버님이 남기신 소중한 기도문들은 내 마음의 창가에 천리 향이 되어 자꾸만 다가온다.
— 윤 완희, 6/8/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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