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릴 때

현대인의 대부분은 잠들기 전에 시계알람을 점검하고 잠자리에 드는 예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다음 날의 모든 스케줄에 지장을 주지 않키 위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이방 저방의 아이들의 방에서 울려지는 알람의 소리는 이 어느 미국인은 매일같이 알람에맞추어 일어나야 만 했던 날들을 더 이상 기억치 않으려 은퇴하던 날, 알람시계를 들고 강변에 나가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알람은 깊이 잠들어 있는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 뿐 만이 아니다. 비록 인간이 우리 모두의 안전장치를 위해, 화재예방을 위해, 토네이도 예방을 위해, 자연재해의 경고를 위해 경각심을 서로 갖고자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에 현대사회에 없어서는 아니될 문명의 도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알람은 우리의 귀를 깨우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대의 귀를 깨우며, 역사의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 들려오는 무언의 알람이 있다. 우리의 청각으로는 들을 수 없는 이 소리들은 사회와 국가, 인류사회의 역사 속에 언제나 있어왔고 들려지었던 것이었다.

요즈음 우리 이민사회에 알람이 울리고 있다. 그것은 지난 5월 1일(1999년) 로워 만하탄에서 저임금과 시간외 근무, 열악한 환경에 항의하는 히스패닉계 청과업소 종업원들의 시위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경고 싸이렌이다. 그 소리들은 어쩌면 미약하고 보잘 것 없어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는 척 해도 당장은 괜찮을 듯 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소리는 우리 한인 이민사회 전체와 후세들에게 까지도 불이익을 가져올 소지가 충분히 배제되어 있는 것임을 상기하여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잘 대처해 나가야되지 않을 까 하는 우려를 갖게한다.

지난 1997년도 U.S 인구센서스 조사에 의하며 히스패닉 인구는 미 전체의 11%이며, 아시안은 4%이다. 그러나 2050년에 가면 히스패닉은 25%가 되며, 아시안은 8%가 될 예정이다. 현재 히스패닉의 정치적인 위상이 자라나고 있는 현상은 놀랍도록 두드려져 가고 있는 반면, 우리는 다민족 사회에서의 내일을 찾기보다는 조국 속에 묻혀진 과거의 향수 속에 행여나 아직도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미국의 힘은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있지만, 그 힘이 약화되거나 분산될 때에는 누군가를 향한 혐호감이 자라나게 되며, 언제든지 인종분규의 화약고로 변화 할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종혐오 범죄는 인류의 역사 속에 유대인종 600만명 살해라는 어두운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도 코소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고슬라보의 알바니아계 인종청소는 무고한 백성들을 하룻사이에 천해고아로, 홈레스로, 이산가족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 올라오는 소수민족이나 아시안인을 향한 인종혐오 싸이트는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으며, 지난 5월 2일, 뉴저지 버겐필드 웨스트 처치 스트릿 선상에 소재한 한인교회 소속 묘지의 묘비 184개가 손상된 사건이 일어났다. 죽은자들은 말이 없건만, 그 무거운 1,000-1,500파운드나 되는 묘비를 무침히 쓰러뜨리고 망거뜨리고 말았다. 워싱톤 DC에 본부를 둔 아태법률컨소사엄이 각 주 검찰과 경찰국의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아시안 – 아메리칸 대상 증오범죄 보고서]는 전년도의 23명에 비해 70여명이라는 3배 이상이 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소수민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미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역량을 볼 때는 절대 소수민족이 되는 숫자가 아니다. 1990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약 684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약 1,450만명이 흩어져 살고있다. 그러나, 미국인 변호사의 20%인 14만명이되며, 400명의 재벌 주 23%가 유대인이다. 미의회 의원들의 10%가 유대인이며, 대학교수가 25%-35%나된다. 일류대학의 총장이나 행정책임자의 90%가 또한 차지하고 있으며, 영화, 문화, 다방면에 앞서가며 소수민족으로서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주역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우수성은 단연 교육에 있다고 한다. 그들은 교육에 많은 투자와 연구를 아끼지 않는다. 그 교육은 개인적인 삶만을 위해 잘먹고 잘살기 위함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척박한 토지를 개간하며, 가나안 정복을 향해 지금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저들의 출애굽의 역사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닌, 지금도 진행되고 정복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저들은 모세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역사의 문에 함께 서서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을 지휘하고 있음을 자손들에게 알리며, 그렇게 믿고있다. 모세와 마르틴 루터킹 목사의 인권운동은 결국 다를 수 없는 같은 차원의 것임을 늘 상기하고 있음은 놀라운 사실이다.

– 윤 완희, 5/15/1999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Essay by WanHee Yoon, faith-column.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